[하나님의 카이로스시간 - 정재선 목회자의 역사의 수레바퀴] 호박에 줄그어 냉장 시켰다고 수박 맛이 날 리 없다!!

로마인들이 예루살렘 안의 성전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The noise of a multitude in the mountains, like as of a great people; a tumultuous noise of the kingdoms of nations gathered together: the LORD of hosts mustereth the host of the battle. (Isaiah 13:4, KJV)

산들 안에 있는 한 무리의 그 소리는, 마치 한 큰 백성의 소리 같고, 함께 모인 민족들의 그 왕국들의 떠들석한 한 소리니, 이는 만군의 주님이 싸움의 무리를 모으심이라. (이사야 13:4, KJV화중광야역)


[D-Day] - 1944년 6월 6일 그 날 새벽 6시 30분 미국군, 영국군, 카나다군과 자유 프랑스군 소속의 연합군들을 태운 상륙주정은 함포 사격과 더불어 각각 유타, 오마하, 골드, 쥬노, 스워드라 이름 붙여진 노르망디(노르만디)의 해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치열한 전투 중에 유타해변(Utah Beach)에서 미군 제4보병사단 병력에게 잡힌 독일군들 중에 그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 모습이 동양인 같지 않은가? 맞다. 그는 바로...


한국인이었다...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는 일본군에 의해 징집당했다가, 1939년 외몽골 '할흐강 전투'(일명/노몬한 전투/Nomonhan Battle)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소련 적군(Red Army)로 편입되었다가, 베르마흐트(Wehrmacht)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독일군으로 복무하였는데, 노르만디 상륙작전의 날, 유타해변에서 미군에게 체포되었다. 그가 맡은 임무는 노르만디 해변가에 '대서양 방벽'(Atlantic Wall)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 기구한 한국인 병사의 신원이 밝혀졌다. 이름은 양경종(Yang Kyoung Jong), 1920년 3월 3일, 신의주에서 태어났다.
(http://forums.military.com/eve/forums/a/tpc/f/672198221/m/8530034922001)

    이름 : 양경종
    생년월일 : 1920년 3월 3일
    본적 : 신의주
    1938년 일본 관동군 징집
    1939년 일본군의 노몬한 전투 참전때 소련군 포로
    1943년 여름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독일군 포로
    1944년 6월 6일 프랑스 노르망디 유타해변에서 미군 포로
    1945년 5월 영국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1947년 미국으로 이주
    1992년 4월 7일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학 부근 거주하다 사망

    평범하게 태어나 수많은 전쟁참화를 겪은 뒤 미국으로 이주
    40년 넘는 세월을 평범한 미국시민으로 생활
    슬하에 2남 1녀 자녀 둠
    결코 가족들에게는 자신의 전쟁경험을 이야기 한적 없다고 전해짐



정말 기구하구나...!! 일본, 소련, 독일, 미국. 유라시아대륙의 동북쪽끝에서 시작해서 그 넓고 넓은 시베리아를 지나, 동유럽을 통과해서 서부유럽의 끝으로...그리고 거기서 다시 영국을 거쳐 북미대륙까지...10년간 자신과는 상관없는 전장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했던 그야 말로 '한민족의 참혹사'이구나!! 독일 나치군이 병력이 얼마나 모자랐으면, 이리도 동양인으로 충원해야 했을까? 참으로 일제의 잔혹사는 이토록 세계 곳곳에 그 족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필리핀에도 남아 있는데...기회가 주어지면 한번 알아보자!!


이렇듯 세계 전쟁사에는 그 이면에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진실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된 사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로마장군 타이터스(디도)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서 주도된 것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다. 거의 대부분이...그런데...


로마인들이 예루살렘 안의 성전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크리스천계에서 가장 예언적인 생각 중 하나가 적그리스도의 출현, 곧 그의 제국과 종교가 유럽으로부터 발생될 것이라고 믿어 온 것이다. 이것을 가르켜 유럽 및 로마 중심의 성경적인 예언이라고 부른다.

그와 같은 유럽 및 로마 중심의 성경적 예언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무엇인가? 성경의 어느 구절들이 이러한 예언을 증거해주는가? 많은 사람들이 유럽 및 로마 중심의 성경적인 예언이 한낱 빈약한 근거에 의해서 이루어진 진실을 발견하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진실을 찾아나서고자, 이미 서적들을 주문하게 되었고, 그러한 서적들이 입수되기 전에, 성경적 견지에서 서론적인 입장을 파헤쳐 보고자 이렇게 감히 필을 든 것이다.

모르면 몰라도 유럽인 적그리스도 출현의 성경적인 배경은 바로 <다니엘 9장>이다:

...and the people of the prince that shall come shall destroy the city and the sanctuary;... Daniel 9:26, KJV)

...그리고 장차 올 그 통치자의 그 백성이 그 성읍(예루살렘)과 그 성소를 파괴하리라... (다니엘 9:26, KJV화중광야)


위 본문에 대하여서는 가지 가지 해석들이 나왔으며, 대다수의 입장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특정 백성 내지 백성들이 바로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될 '그 통치자'(The Prince/The Ruler)인 적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조상들이라고 한 것이 정설(正說)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의 운명 - 예루살렘은 27차례 함락당했다/자세히보기).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은 '그 성읍(예루살렘)과 그 성소'(the city and the sanctuary)의 파괴가 바로 주후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타이터스/디도) 휘하의 로마 병사들이 예루살렘의 성읍과 그곳의 성전을 파괴한 것으로 성경의 예언은 성취되었다고 <다니엘 9:26>을 그렇게 결부시켜 왔다. 따라서 성경 예언을 연구하는 자들 대다수가 주후 70년의 로마인들이 앞으로 나타나게 될 적그리스도의 추종자들 ㅡ 일반적으로 유럽인들이요, 특별히 이탈리아인들 ㅡ의 조상들이라고 결론을 내려 버렸다.

◆ 시이저 티투스가 새겨진 로마 주화 데나리온 (위키미디어)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있다:

로마제국으로 전개되던 초기 로마공화국에서는, 로마군대인 군단(legions) 안에서 근무토록 충원된 병사들(legionnaires/소수의 기병을 포함한 4,000-6,000의 병력의 보병부대)의 대부분이 로마와 근접 지역들 출신의 이탈리아인들이었다. 그렇지만 제국이 급속도로 팽창해감에 따라서, 이탈리아 혹은 유럽의 출신들 가지고는 제국의 전선들에 파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주후 1세기 초기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로마군대를 인종으로 구성되는 극적인 변화를 개혁하였던 것이다. 이 개혁 이후로 로마군대는 이른 바 제국의 외곽 주변 지방에 살고 있는 시민들인 '지역인들'(provincials)로 알려진 자들로 구성되어 나갔다.

이처럼 로마군대의 '지역화'(provincialization)는 이 시기에 있어서 로마 군대 전체에 진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역화는 예루살렘 공격에 활용되어진 동방 군단과 관련해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이것은 고대 역사 기록들은 물론 현대 학계도 확인한 것이다.

잠시 그 실례들을 들어보자: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기록에 의한 증거]

예루살렘의 로마 공격을 언급하면서, 이 시기의 원로이자 역사 대가였던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는 예루살렘을 공격한 특별 군단과 사람들을 언급한다:



The Annals And History Of Tacitus: A New Anad Literal English Version, Book V, Oxford: D. A. Talboys, 1839, p.525.

[요약] 그는(시이저 티투스/Titus Caesar) 유대 지역 안에 세 개의 군단을 세웠으니, 제5군단, 제10군단, 그리고 제15군단이었다. 그는 베스파시안 휘하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이 세 군단에다 그는 시리아 지역 주둔의 제12군단을 가담시켰으며, 일부는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철수시킨 제3군단제22군단이였다. 그 밖에도, 그에게는 안티오쿠스로부터 온 20개의 연합군 보병대(군단/legion을 10등분한 한 부대로 300명 내지 600명)와, 8개 기병대와, 아그립파와 소헤무스 두 왕과 지원병들(파견 원군들)이 가담해주었다. 그는 또한 아랍인들로 구성된 한 무리도 있었으니, 이들은 자체가 만만치 않았고, 대개 이웃 민족들 간에 생존해가면서 유태인들을 향하여 원한을 품은 자들이었다.


그리고 로마군단에는 나름의 고유 명칭이 있었다:

    제5군단 - Aladuda (유대 지역 안에 주둔/ 예루살렘의 포위 참가)
    제10군단 - Fretensis (유대 지역 안에 주둔/ 예루살렘의 포위 참가)
    제15군단 - Apollinaris (유대 지역 안에 주둔/ 예루살렘의 포위 참가)

    제12군단 - Fulminata (시리아 지역 안에 주둔/ 예루살렘의 포위 참가)

    제22군단 - Deiottariana (이집트 지역 안에 주둔/ 예루살렘의 포위 참가)
    제3군단 - Gallica (타이터스가 예루살렘을 공격을 시작할 때 언급된 제3군단은 소아시아로 이동한 후 알렉산드리아 안에 남은 보충부대일 가능성이 높다)


    ◆Alfred John Church & William Jackson Brodribb, The History Of Tacitus Translated Into English, Cambridge: Macmillan & Co.,1864, p.303-319.


이상의 참고자료를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중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첫째, 예루살렘을 공격하는데 사용된 로마 군단들은 유대,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안에 주둔하고 있었다.

    둘째, 로마 군단들 이외도, '유태인들을 증오한 아랍인들로 조직된 하나의 막강한 파견 원정군'(strong contingent of Arabs, who hated the Jews)이 군대를 이끌고 있었다는 진실이다. 주후 1세기 이후로도 전반적으로 아랍인들이 유태인 백성을 증오한 것은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유태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한 증거]

이 시대에 또 한 사람의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증언을 살펴본다:

◆ William Whiston, The Genuine Works Of Flavious Josephus, Wars Of Jews, Book III, Boston: S. Walker, 1821, p.283)

[번역] 그리하여(시리아 위기에) 베스파시안은 네로와 함께 있었던 그의 아들 티투스(타이터스/디도)를 아가야로부터 알렉산드리아로 파견하였고, 거기서 제5군단과 제10군단을 소집시켰다. 한편, 그 자신은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넌 후 육로를 거쳐 시리아까지 왔는데, 거기서 그는 로마 병력과 함께, 인근 지역의 왕들이 보낸 상당 수의 파견 원정군을 집결시켰다. (참조/ 성서자료연구원, 유대전쟁사 I, 제3권, 서울: 도서출판 달산, 1991, p.420).


다시 한번,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공격에 이용될 로마 군단들이 시리아 안에 주둔하였음을 밝혀주고 있다. 그는 또한 시리아로부터 그리고 그 인근 지역(neighborhood)으로부터 '상당 수'(a considerable number)의 원정군들과 지원군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려고 집결하였음을 소상히 밝혀준다.

훗날에,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공격가담에 자원한 6천명이 넘는 아랍인들이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이 시기 중에 일개 군단을 구성하는 병사의 수는 약 5천명이었다. 따라서 아랍인 자원자들이 충분하였기에 완전한 로마 군단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한 증거]

처음에 이탈리아를 정복했던 로마군 이후에는 지중해를 기반으로 하는 지리적 영역으로 넓혀갔다. 로마공화국에는 단기 복무 군인으로부터 장기 복무인 직업군인들에 이르기까지,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로 구성된 군대로부터 로마를 방어하는 군대에 로마인의 수가 점점 작아짐에 따라서, 일대의 변환이 이루어졌으니, 그것이 바로 로마군이 주둔한 지역 안에서 그 지역인들로 군대를 충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대 로마 역사가 케피(Lawrence J. F. Keppie)의 논문 'Legions And Veterans: Roman Army Papers 1971-2000'에 의하면, 주후 68년 이후부터는, '로마 군단들이 거의 실제로 지역인들'(the legions … consist[ed] almost exclusively of provincials)로 구성되었다'고 밝힌다:

    ◆ 위 도표에서 파란색 부분이 바로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성전파괴를 주도한 군단이다. (Lawrence J. F. Keppie, Legions And Veterans: Roman Army Papers 1971-2000, Franz Steiner Verlag, 2000, p.388.)

로마 역사 학자들은 이런 사실의 정당성을 완전히 입증한다. 산토수오쏘(Antonio Santosuosso)는 자신의 저서 'Storming the Heavens: Soldiers, Emperors, and Civilians in the Roman Empire'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first century, approximately 49 percent of the soldiers were Italians, but by A.D. 70 that number had fallen to only 22 percent. By the end of the first century, only 1 percent of the soldiers were Italians.

1세기 첫 중반까지, 병사들의 약 49%가 이탈리아인들있으나, 주후 70년에 이르러 그 수가 겨우 22%로 떨어졌다. 1세기 말에 이르러는 병사들의 1% 만이 이탈리아인들이었다.


한편, 옥스퍼드대학교의 로마역사 교수 폴라드(Nigel Pollard)는 그의 저서 'Soldiers, Cities, and Civilians in Roman Syria'에서 '카파도기아,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안에 주둔한 군단들은 소아시아,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출신의 보충병들로 충원되었다' (Legions based in Cappadocia, Syria and Egypt were made up from of recruits from Asia Minor, Syria and Egypt.)고 말한다.

'Roman Military Service: Ideologies of Discipline in the Late Republic and Early Principate' 저자인 황(Sara Elise Phang) 박사는 오늘날 세계의 로마 학자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병사들의 대부분이 동방 지역의 보충병들이었다는데 동의한다:

That Italians were increasingly replaced in the legions during this period by provincials is in itself no longer a novelty among scholars...In the East, that is Asia Minor, Syria and Egypt, it seems clear that local recruitment was well under way under Augustus [d. A.D. 14], so that by his death only a very small number of legionaries derived from Italy or indeed any of the western provinces...Under Nero [d. A.D. 68], when the eastern legions required supplementation...it was to Cappadocia and Galatia that [Rome] looked for recruits. This was doubtless standard procedure. [The] legions of the East consisted largely of "orientals" (Middle Easterners).

이 기간 중에 군단들 안에서 이탈리안인들이 지역인들로 점점 대치되었다는 사실이, 그 자체는 병사들 속에서 아무런 신기함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동방 즉 소아시아,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의 경우, 지역별 충원은 아우구스투스 휘하에서 잘 진행되었기에, 그가 죽었을 때에는, 군단들의 극히 적은 수가 이탈리아 혹은 서방 지역들에서 차출되었다...동방 군단들이 충원이 요구되었던 네로의 휘하에서...로마가 보충을 기대한 것은 캅파도키아와 갈라티아였다. 이것은 의심여지없는 기준 절차였다. 동방의 군단들은 주로 '동방인들'(중동인들)로 구성되었다.

◆ Lawrence J. F. Keppie, Legions And Veterans: Roman Army Papers 1971-2000, Franz Steiner Verlag, 2000, p.96-98.


결국에는 고대의 증거를 비롯해서 현대 학자들의 증거를 고려해 볼 때, 로마 장군 티투스(타이터스/디도) 통솔하에 예루살렘을 공격한 병사들의 대다수가 중동지역의 지방인들이었지 유럽인들이 아니었다는 진실이다. 특히 과거 세기 동안 크리스천 커뮤니티에 관한 예언적 상상(想像)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사상의 하나는 제국과 종교가 유럽으로부터 발생하리라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적 예언에 대한 유럽 및 로마 중심의 견지(見地)인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공격했던 '로마' 군대들의 인종적 구성과 연관되어 있는 이러한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계산을 해보고자 한다:

    그리하여(시리아 위기에) 베스파시안은 네로와 함께 있었던 그의 아들 티투스(타이터스/디도)를 아가야로부터 알렉산드리아로 파견하였고, 거기서 제5군단과 제10군단을 소집시켰다. 한편, 그 자신은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넌 후 육로를 거쳐 시리아 까지 왔는데, 거기서 그는 로마 병력과 함께, 인근 지역의 왕들이 파견시킨 상당 수의 원정군을 집결시켰다.

    ◆ William Whiston, The Genuine Works Of Flavious Josephus, Wars Of Jews, Book III, Boston: S. Walker, 1821, p.283)


요세푸스의 계산에 의하면, '기병과 보병을 포함하여 인근 지역의 왕들이 파견시킨 원정군들을 포함시킨 전체 군대의 병사는 6만명에 이른다.' 일개 군단의 병사의 정족수가 대략 5천명이었다. 예루살렘의 공격에는 네 개의 정예 군단과 두 개의 파견 군단이 가담하였다. 그리하면, 군단 정규군의 수는 대략 2만 5천명이었고, 나머지 3만 5천명은 지원군이나 원정군이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원정군들은 지역인들로부터 징집한 비로마인들(non-Roman people)이었다.

요세푸스는 이 병력이 시리아, 소아시아 및 아라비아의 '인근지역'(the neighborhood)으로부터 '왕들이 파견시킨'(sent by the kings) 원정군들이라고 확인한다. 동방 대 서방 군단의 비율이 <5:1>이었다는 폴라드(Nigel Pollard)의 계산이 맞는다면, 예루살렘 침략군 전체 가운데서 서방군은 5천명 정도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나머지 5만 5천 내지 5만 6천명은 동방인들이었다는 계산이다. 이것은 폴라드의 추정에 의해 서방인들을 최대수로 계산한 것이며, 이는 중동출신 병사 11명당 서방 유럽 출신의 병사는 1명이었다는 것이다. <11:1>이다!!


[맺는말]

이상과 같이 역사적 증거가 충분함에 따라서, 우리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시킨 동방 지역들 내의 '로마' 병사들은 실제로 동방인들, 즉 소아시아, 시리아, 아라비아 및 이집트의 거주민들이었다는 진실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오늘날 중동의 거주민들의 조상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다니엘 9:26>의 예언에 기록된 '백성'이 인종적 이탈리아인들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차 올 그 통치자의 그 백성이 그 성읍(예루살렘)과 그 성소를 파괴하리라... (다니엘 9:26, KJV화중광야)


실바(Rodrigo Silva)의 글에 의하면<하단 관련자료 참조>,  로마 주둔지의 시리아인들은 인종적으로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의 일치성으로 볼 때 '앗시리아인들'(Assyrians)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역사 전반에 걸쳐 보존되어 왔고, 오늘날에는 이라크 북부 지역인 모술(Mosul)의 니느베(니느웨) 평원 안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다가오는 적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성경에서는 '앗시리아인'(Assyrian)과 '앗시리아의 그 왕'(the king of Assyria)인 것이다. (이사야 10:5,12,24; 14:25; 30:30-33; 31:8. 미카 5:5-6).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즉각 부정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 (Dave Reagan / Richard Bartholomew)도 있다.

아무튼 본 주제는 한번쯤 깊이 상고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판단되었기에, 필자는 주문해 놓은 책들이 입수되면, 참고해서 살펴 볼 것이다. 참으로 어느 것이 성경적이며 진실인지...또 하나의 혼돈이다...샬롬.


[관련자료]
The People of the Prince that Shall Come: Who Are They? by Rodrigo Silva
http://www.beastfromtheeast.org/Rodrigo_3.html

<Created/20090822> <Updated/200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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