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card: Galilee (엽서: 갈릴리)

Nearly 100 years after its establishment, Israel's oldest kibbutz has voted to shed its socialist principles.

설립된지 거의 100년만에, 이스라엘 국가의 가장 오래된 '키부츠'는 사회주의 원칙들을 벗어던지는 것에 대해 투표를 실시했다.

Why life on the communal farm was not all it was cracked to be by Tim Mcgirk

왜 공동농장에서의 삶은 '팀 맥거크'에 의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랑하였던 모든 것이 아니었는가

◆ 갈릴리 엽서(화중광야제공)

글/ 타임지紙 (2007.5.7) 번역/ 예미마 정

When Israel's oldest kibbutz, Degania, announced that it was giving up its socialist ideals and going private--members could own homes and earn salaries based on how hard they worked--few other than the kibbutzniks themselves were happy. For many Israelis, Degania was a symbol of rosier days, a Zionist idyll of honest work and camaraderie. But for those who called it home, the kibbutz had become an anachronism as rusty as the battered farm tools on display for tourists. Today, the younger generation of kibbutzniks pines for individualism. Tamara Gal-Sarai gazes out over the kibbutz lawn until her eyes settle on the blue-white shimmer of the Sea of Galilee. "The Israeli press blames us for killing their utopia," she says. "It was as if we'd destroyed a national treasure."

이스라엘 국가의 가장 오래된 '키부츠'(kibbutz)인 '드가니아'(Degania)는 그것의 사회주의적인 이상들을 포기하고, 구성원들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열심히 일한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도록 사유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키부츠' 사람들 외에는 거의 기뻐하지 않았다. 많은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드가니아'는 장밋빛 미래인 정직한 노동과 우정의 '시온주의'(Zionist) 이상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집으로 부르는 사람들에게, '키부츠'는 망가진 농장 공구들만큼이나 쓸모 없는, 관광객들을 위해 전시중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오늘날 '키부츠'인들의 젊은 세대는 개인주의를 갈망하고 있다. '타마라 갈-사라이'(Tamara Gal-Sarai)는 갈릴리 바다의 파랗고 하얀 희미한 빛에 자신의 두 눈이 고정될때까지 '키부츠'의 잔디밭 너머를 응시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그들의 유토피아를 죽이는 것에 대해 우리를 비난하면서 압박하고 있어요." 그녀가 이야기 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하나의 국가적 보물을 파괴했다는 것과 같았어요."

That treasure was Israel's self-image. After independence in 1948, the kibbutzniks were seen as the new breed of Israeli. They discarded Europe's deathly pallor and became bronzed, idealistic pioneers. Degania, which had been founded in 1910 by 12 Jews escaping Russian prosecution, was the ideal. Its members were beset by malaria, cattle thieves and bouts of self-doubt. Yet they greened the stony hills with citrus groves. At night in the communal dining hall they argued passionately over the grand themes of the late 20th century: the individual vs. the group, capitalism vs. socialism, religion. (It wasn't until last year that the kibbutzniks of Degania, ardent Zionists, voted to build a synagogue.)

그 보물은 이스라엘 국가의 '자화상'(self-image)였다. 1948년 독립한 이후에, 키부츠인들은 이스라엘 국가의 새로운 품종(品種)처럼 보여졌다. 그들은 유럽의 죽음 같은 창백함을 버리고, 구릿빛으로 단단해지고 이상적인 개척자들이 되어 갔다. 러시아 검찰당국을 탈출한 12명의 유태인들에 의해 1910년 세워진 '드가니아' (Degania)는 그 이상향(理想鄕)이었다. '드가니아'의 회원들에게는 말라리아와 가축 도둑들, 그리고 한차례씩 밀려오는 자의적 회의(懷疑) 등의 어려움이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투성이의 언덕을 '시트러스'(citrus/감귤류)의 작은 숲들로 푸르게 만들었다. 밤이면 공동식당에서 그들은 열정적으로 개인 대 그룹,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종교(열렬한 시온주의자들인 '드가니아'의 구성원들이 하나의 유대교 회당을 짓는것에 대해 투표하게 된 것은 작년이었다)와 같은 20세기 후반의 주요한 주제들에 대해 토론했다.

◆ 1910년 초창기의 '드가니아' 키부츠 (communa제공)

'Eli Eli' (나의 엘로힘 나의 엘로힘) (이스라엘건국 50주년기념 프리제공)

Only 1.7% of Israelis live on kibbutzim, but their influence pervades life and culture. For years, kibbutzniks were the nation's heroes. Moshe Dayan, Defense Minister during the Six-Day War, was born in Degania, and many military leaders and legislators also emerged from the kibbutzim. The kibbutz was a socialist dream. But Degania's manager, Tzali Koperstein, says, "From the start, it was never equal. It was a fake equality." Some toiled hard in Degania's diamond-cutting tool factory and in the fields; others slacked off. And as Israeli society began to value creativity and free enterprise over socialism, Degania lagged behind.

이스라엘 국민의 1.7%만이 키부츠에 산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삶과 문화에 고루 미친다. 수년동안, 키부츠 사람들은 국가적인 영웅들이었다. 6일전쟁동안 국방장관이었던 '모쉐 데이얀'(Moshe Dayan)은 '드가니아'에서 태어났고, 많은 국방 지도자들과 입법자들 또한 키부츠에서 나왔다. 키부츠는 하나의 사회주의의 꿈이었다. 그러나 드가니아의 관리자, '짤리 코퍼슈타인'(Tzali Koperstein)은 "시작부터, 그것은 전혀 평등하지 않았다. 그것은 위조된 평등이었다."라고 말했다. 일부는 '드가니아'의 다이아몬드-컷팅 도구 공장과 현장에서 열심히 악착같이 일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게을리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사회가 사회주의를 넘어 창의성과 자유로운 기업정신을 중요시하기 시작했을 때, '드가니아'는 뒤처져 있었다.

Once, everyone earned the same wage, did the jobs they were assigned, and kibbutz elders held the purse strings. Now, says Degania's manager, "We are still protecting the weak, but everyone has the responsibility of earning their own living." Some naive kibbutzniks, he says, need to be taught how to open a bank account and use an ATM card. Elders learned a lesson in capitalism that any kid with a lemonade stand could have taught them: the individual works harder for himself than for the collective. Factory output has jumped.

일단, 모든 사람들은 똑같은 임금을 받았고, 그들에게 할당된 일들을 했으며, 그리고 키부츠의 장로들이 경리를 맡아보았다. 이제, '드가니아'의 관리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여전히 약자를 보호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생활비를 벌기 위한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몇몇 순진한 키부츠사람들은, 그가 말하기를, 어떻게 은행계좌를 개설하고 ATM(현금자동입/출금기)카드를 사용하는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한다. 장로들은 레모네이드 매점에 있는 어떤 아이라도, 각 개인들은 집단을 위해서보다 자기를 위하여 더 열심히 일한다고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배웠다. 공장의 생산량은 뛰어 올랐다.

The kibbutz experiment failed for other reasons. Israeli youth felt stifled and left. "Kibbutz life is peaceful and rich," says Koperstein. "But it came at a high price. You gave up individual needs. The idea of having someone telling you what to think, what to study, what work to do--it's like having four walls closing you in." In some kibbutzim (not Degania), children were separated from parents and raised in collective dormitories. Says Gal-Sarai: "Kibbutzniks from the other places are bringing good business to Tel Aviv's shrinks." Koperstein, who was not raised at Degania, recalls the time when, at age 7, he woke from a nightmare in the dorm and ran home through the darkness to be comforted by his parents. "At 3 a.m., the wardens came knocking on the door to bring me back. I couldn't raise my kids that way," he says.

키부츠 실험은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실패했다. 이스라엘 국가의 젊은이들은 숨막혀 하며 떠났다. "키부츠 생활은 평화롭고 풍요롭습니다." 코퍼슈타인(Koperstein)은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비싼 대가를 치뤘습니다. 당신은 개인적인 요구들을 포기했습니다. 누군가 갖고 있는 생각은 당신에게 생각할 것, 공부할 것, 해야 할 것을 알려줍니다 ㅡ 그것은 마치 4개의 벽이 당신을 가둬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일부 키부츠에서는(드가니아는 아님) 아이들이 부모들로부터 떨어져 집단 기숙사에서 양육되었다. '갈 사라이'(Gal-Sarai)는 말한다. : "다른 곳으로부터 온 키부츠사람들은 '텔아비브'(Tel Aviv)의 위축에 비해 좋은 일감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드가니아'에서 자라지 않은 코퍼슈타인(Koperstein)은 그가 7살이었을 때를 회상한다. 그는 기숙사에서 악몽을 꾸며 깨어났고, 그의 부모에 의해 안정을 찾기 위해 어둠을 뚫고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새벽3시에, 기숙사 관리인이 나를 데려가기 위해 와서 문에서 노크했어요. 나는 나의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키울 수 없었어요." 그는 말한다.

Degania's elders don't consider the departure from socialism a failure. "Many Israelis see us as yet another broken symbol," says the kibbutz manager. "But we don't feel that. For us, it's an evolution. We had to change."

'드가니아'의 장로들은 사회주의로부터 떠난 것을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 "많은 이스라엘 국민들은 우리를 여전히 다른 부서진 상징들로서 보고 있습니다." 키부츠 관리인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의 진화입니다. 우리는 변해야만 했으니까요."

<Created/20090712> <Updated/20090712><201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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