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성경주제어풀이 ] '부활' - 진리와 종교는 결코 연합될 수 없다 [2]

갈릴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곳!!

글/ 정재선 목회자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알려라' (마태복음 28:10)



갈릴리 바다의 해오름 (랍비 야콥 싱클레어 제공/2007)


[본문] (마태복음 28:5-7)

    28:5그러자 그 천사가 그 여자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씀하시되, '너희는 두려워 말지니, 이는 너희가 나무에 달려 죽은 예수를 찾고 있음을 내가 알고 있음이다.

    28:5And the angel answered and said unto the women, Fear not ye: for I know that ye seek Jesus, which was crucified.

    28:6그는 여기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말한 대로 일으켜졌으니, '와서, 주가 누운 그 자리를 보라.'

    28:6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 as he said. Come, see the place where the Lord lay.

    28:7그러니 빨리 가서,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졌다고 그의 제자들에게 알리고, 그리고 보라, 그가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고 있으니, 거기서 너희가 그를 보게 될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알린대로다.' 하셨다.

    28:7And go quickly, and tell his disciples that he is risen from the dead; and, behold, he goeth before you into Galilee; there shall ye see him: lo, I have told you.


[아래 글은 필자가 2003.4.19에 발표한 '부활절 특별메시지' 입니다.]

우선 본문을 설교하기에 앞서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전하고자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 소위 골고다라고 하는 해골산을 가 보았을 것입니다. 그 곳은 '정원묘'(Garden Tomb)이란 곳인데, 영국인들이 관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그 나무'에 달려 죽으시고(후에 기회가 주어지면, '십자가' 대신 '그 나무'로 표현해야 성경적임을 풀어드릴 것임), 그 시신을 석굴 속에 안치 해두었는데(이 굴이 관광 코스로서 그 안에 들어가면,영어팻말 'He is not here'을 보았을 것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허락을 받아낸 후, 예수님의 시신을 다른 무덤 안에 안치했다고 하는 것이 통념이었습니다. 그 위치가 현재 성전산(Temple Mount)의 통곡의 벽으로부터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1999년 11월 26일 이 길을 밟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예수님이 '그 나무'에 달려 죽으신 곳은 성전산 동쪽에 자리한 올리브산(감람산) 남단이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2001년 2월에 6년간의 <킹제임스성경번역>을 끝내고, 마틴(Ernest L. Martin) 교수님으로부터 저서들을 구입하고나서, 교제하려는 직전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참으로 아쉬움이 남았던 때였습니다. 교육학을 전공하신 마틴 교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을 30회 답사하셨습니다!! 그 당시 성전이 얼마나 높았던지...'탑'(기드론골짜기 밑바닥으로부터 45층/130미터높이)이었다고 교수님은 증언하셨습니다. 그 중 '성전의 위치'가 아래 왼쪽 이미지에서 보이듯이 '황금돔'(Dome Of Rock)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전의 마틴 교수님과 그 분의 명저 'Secrets of Golgotha'(골고다의 비밀). 강추합니다!!

[관련자료필독] 'THE TEMPLE MOUNT'(성전산) - 자세히보기


자,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어째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안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 난 예는 없습니다. 그 증거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생불멸이라는 미명하에 윤회설(輪回說)을 만들었습니다. 죽음과 부활에 대한 외적 증거를 찾는다고 해서, 귀신(혼령, 혼백)이 등장하는 전설적인 설화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과학의 첨단시대, 정보의 첨단시대 속에서 인간의 호기심을 발로시키는 묘한 인간적 실증의 노력이 가속화되어 가고 있지만, 결국은 그 알고자 하는 죽음과 부활의 인간적 해결의 노력은 '미스테리'(MYSTERY)로 변증되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은 '신'(神)이 되고픈 '욕망의 무덤' 속에 사로잡혀, '종교'(RELIGION)이라고 하는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모든 인생의 문제를 이 종교의 카테고리 속에서 풀어보겠다고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인생을 철학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해결치 못한 철학의 한계를 느낀 나머지, 1960년 후반에 등장하여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위 '분석철학' 등 갖가지 이론만 엿가락처럼 변증하고 있는 인간의 역사가, 그것을 반증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그 종국(終局)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어둠)라고 하는 총체적 결함 때문인 듯 합니다. 따라서 이 어둠이 가리고 있는 한, '하나님의 그 말씀'(THE WORD OF GOD)은 드러날 수 없음을 하나님이 아신지라, 그 분의 독자(나의 유일한 것/시편22:20/독생자가 아님) 예수님을 '그 세상'(그 세상 4가지 용례풀이 참조)에게 보내사, '죽음과 부활'의 실증을 보이셨음은, 인간 역사상, 유일무일하고 전대미문의 증거이니, 이것이 우리에게는 한 없는 은혜요, 기쁨이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망인 것입니다.

아울러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혼탁해져 있음은, 우리의 '혼'과 '몸'을 묶어 혼돈 속에 가둬 놓은 사탄의 계략이 있음이요, 특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그 왕국'(THE KINGDOM OF GOD)을 소망하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풀어져야 할 성경의 가르침이기에, 깊이 상고(祥考)하는 자세로 임하도록 인내함이 옳은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하심 가운데, '몸의 부활'과 '갈릴리'와의 상관 관계만을 중점으로 할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몸의 부활하심'에 대한 반론들이 있었는데, 이 반론들이 진리를 가리우는 증거를 성경 속에서 반증해보겠습니다.

우선 그 반론들을 아래에 간략하게 도표로 제시하니, 그것을 반증하는 성경말씀을 여러분이 손수 성경을 찾아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기도는 많이들 하시는데, 성경은 왜 그리 읽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실증


빈무덤 제안

성경적 증거

성경구절

비고

1.예수가 기절했을 뿐 후에 소생하였다.

한 로마 병사가 예수님이 죽으셨음을 빌라도에게 보고하였다.

<마가복음15:44-45>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가심을 알고, 그 분의 두 다리를 꺽지 아니하고, 한 병사가 창으로 그 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요한복음19:32-34>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찌른 로마병사는 '롱가누스' 혹은 '카시우스' 설이 전해짐.

아리마대의 요셉과 니코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무덤 속에 안장하였다.

<요한복음19:38-40>

알로에(Aloes) 사용됨

2. 여자들이 실수해서 다른 무덤으로 갔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이 무덤 속에 안장됨을 보았다.

<마태복음27:59-61>
<마가복음15:47>
<누가복음23:55>

 

주일 아침에 베드로와 요한이 그 무덤으로 달려 갔다.

<요한복음20:3-9>

 

3. 무명의 도적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흠쳐 갔다.

그 무덤은 돌로 봉인되었고, 로마 경비병들이 지켰다.

<마태복음27:65-66>

1개조=4명(사도행전12:4)

4.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 때문에 죽기로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함은 자기들의 믿음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사도행전12:2>

헤롯왕이 사도 야고보를 검으로 죽임

5.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다가 보관하였다.

만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면 그들이 솔선해서 그 분의 부활에 대한 소문들을 막았을 것이다.

<없음>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계시의존적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누구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 죽음의 자리에서 우리 예수님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디 계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두 가지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하나는 '몸의 부활'입니다. <마태복음 28:6-7>입니다:

    28:6He is not here: for he is risen, as he said. Come, see the place where the Lord lay.

    28:6그는 여기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말한 대로, 그가 일으켜졌으니, '와서, 주가 누운 그 자리를 보라.'

    28:7And go quickly, and tell his disciples that he is risen from the dead; and, behold, he goeth before you into Galilee; there shall ye see him: lo, I have told you. <Matthew 28:6-7, KJV>

    28:7그러니 빨리 가서,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졌다고 그의 제자들에게 알리고, 그리고 보라, 그가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고 있으니, 거기서 너희가 그를 보게 될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알린대로다. <마태복음 28:6-7, KJV화중광야역)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을 헬라원어로 '아포 톤 네크론'(απο των νεκρον)이라 부릅니다. 아무리 무덤을 돌로 봉인해두고, 병사들이 지켰던들, 죽음이 예수님을 가둬 둘 수 없었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예수님을 삼킬 수 없었습니다. 다같이 킹제임스성경 <요나서 2:10>을 읽겠습니다:

    2:10And the LORD spake unto the fish, and it vomited out Jonah upon the dry land. (Jonah 2:10, KJV)

    2:10그리하여 주님이 그 고기를 향하여 전하셨고, 그 고기는 요나를 마른 땅 위로 토해 냈다. (요나 2:10, KJV화중광야역)

여기서 구원을 보여주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남은 우리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바로 앞 <9절>에 '구원은 주님에게 속합니다'(Salvation is of the LORD)라는 요나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시편 기자>가 증언합니다. <시편 3:8>입니다:

    3:8Salvation belongeth unto the LORD. (Psalms 3:8, KJV)

    3:8구원은 주님에게로 속합니다. (시편 3:8, KJV화중광야역)

다른 하나는 '영의 부활'입니다.

자, 예수님의 '몸의 부활'(아포 톤 네크론'/απο των νεκρον)을 누구에게 보여주십니까? 대제사장 가야바에게요? 총독 빌라도에게요? 유대인들에게요? 아닙니다. 바로 주님이 3년 반 동안 동고동락해오신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후에 복음의 전령들로 쓰실 사도들이 증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요, 장차 나타날 '영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헬라원어로 '에크 네크론'(εκ νεκρον)이라 부릅니다. 다같이 킹제임스성경 <디모데후서 2:8>을 읽겠습니다:

    2:8Remember that Jesus Christ of the seed of David was raised from the dead according to my gospel: (2Timothy 2:8, KJV)

    2:8나의 복음대로 다윗의 그 씨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을 기억하라. (디모데후서 2:8, KJV화중광야역)

바울이 디모데에게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예수님을 잊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 다음 절입니다:

    2:9Wherein I suffer trouble, as an evil doer, even unto bonds; but the word of God is not bound. (2Timothy 2:9, KJV)

    2:9이 복음 안에서 내가 한 행악자 처럼 매여서까지 고난을 받고 있으나, 하나님의 그 말씀은 매이지 아니한다. (디모데후서 2:9, KJV화중광야역)

'The word of God is not bound' 즉 '하나님의 그 말씀은 매이지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 곧 '호로고스'(ο λογοζ)는 누구를 지칭합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요한복음 1:1-11). 이 '매이지 아니함'은 곧 '영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여기 부활에는 두 가지 용례, 즉 'resurrection of the dead' - '죽은 자들의 부활'(데살로니가전서 4:14)와 'resurrection from the dead' -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빌립보서 3:11)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들은 <고린도전서 15장>을 중심으로 풀어야 깨달아지는, 우리가 복음시대에 갖추어야 할 소망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특히 '죽은 자들로 부터'(from the dead) 용례가 4가지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완전히 숙지한 후에야 <고린도전서 15장>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 때 풀기로 하겠습니다.

셋째로, 어찌하여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예수님 당시 지역을 살펴봅니다(아래그림 참조). 유대, 사마리아, 베뢰아, 데카볼리(바산), 그리고 갈릴리 이렇게 다섯 지역으로 구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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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갈릴리지역'에 관해 구약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 <이사야 9:1-2> 함께 읽습니다:

    9:1Nevertheless the dimness shall not be such as was in her vexation, when at the first he lightly afflicted the land of Zebulun and the land of Naphtali, and afterward did more grievously afflict her by the way of the sea, beyond Jordan, in Galilee of the nations. 9:2The people that walked in darkness have seen a great light: they that dwell in the land of the shadow of death, upon them hath the light shined. (Isaiah 9:1-2, KJV)

    9:1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스불룬의 땅과 납달리의 땅을 처음에는 가볍게 괴롭혔다가, 그 후에 요단 건너 민족들의 갈릴리 안에 있는 바다의 길에서 더욱 가혹하게 괴롭히셨을 때, 그 침침함이 괴로움을 당하던 때 만큼은 되지 않을 것이다. 9:2어둠 안에서 행하던 백성이 한 큰 빛을 보았으며, 그 빛이 죽음의 그림자의 땅 안에 거주하는 자들 위에 비추었다. (이사야 9:1-2, KJV화중광야역)

여기서 잠시 지정학적으로 보면, 갈릴리는 아열대성 기후이기 때문에, 포도와 무화과 등의 농작물이 풍부한 곳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보게 되면, 갈릴리는 예수님이,

    1) 성장하신 곳입니다. (마태복음 2:22).

    2) 제자들을 부르신 곳입니다. (마태복음 4:18-21).

    3) 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곳입니다. (마태복음 4:23-24).

바로 예수님의 전도사역의 중심지가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전도의 전초기지였으며, 예수님이 친히 갈릴리인이 되셔서 사역을 하신 곳입니다.

스불룬의 땅, 납달리의 땅으로서 '멸시의 땅'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 유태인들'(THE JEWS)로부터 이방으로 취급받았던 곳입니다. 흑암 속에 묻혀 있던 이 곳이 '큰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큰 빛'으로 바뀐 곳, 이곳이 바로 <갈릴리>의 전부입니다.

필자가 갈릴리 현지에서 느꼈던 감상을 소개합니다:

    사해 바다를 떠나 여리고를 들렀다가, 북쪽으로 올라갔다. 요단강 안쪽까지 요르단 국가와의 군사 분계선이 쳐져 있는데, 마치 우리 시골 농장에서 쳐 놓은 철조망 보다 못한 느낌이 들었고, 간헐적으로 보이는 이스라엘 군인의 초소가 있을 뿐, 도무지 아들이 복무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전선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이 메마른 광야 땅 위에, 이쪽 이스라엘은 푸르름과 물과 생기가 넘치는데, 건너편 요르단은 메마르고 물도 없고, 죽은 듯한 시든 분위기가 마침 서쪽으로 넘어가는 석양에 빛 바랜 어느 초라한 군상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운전기사 아비(Avi)에 의하면, 저 철조망에 고압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위험하고, 요단 강변에는 수 많은 지뢰들이 매설되어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것 같았는데, 그 내면에는 긴장이 깃든 곳이, 바로 오늘의 이스라엘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마침 오늘 오후 6시부터는 안식일이 시작되어서, 곳곳의 모든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디베랴(Tiberius)를 지나 에인게브(Ein-Gev) 마을에 자리잡은 기브츠 농장 내의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가 넘고 있었다. 방을 배정 받고, 정 목회자님과 식당으로 달렸다. 그토록 먹어보기를 고대했던 갈릴리의 명물, 즉 '베드로 물고기'(Peter's Fish)였다. 우리 나라 제주도에서 많이 나오는 '돔'처럼 생긴 것으로, 요리는 튀겨나왔는데 맛은 있었다.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예수님 당시 일상 식사 때 먹던 빵을 먹으니(둥글고 넓적한 우리의 누루미 같이 생겼는데, 한 쪽을 들어내어, 그 사이에다 야채를 넣고, 소스를 넣고 포개서 먹는 빵), 그 맛은 담백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갈릴리 바닷가로 달려가니, 그 물소리가 나의 귓가를 울리기 시작하면서, 온 종일 지쳐 버린 나의 피로를 말끔히 저 물 속으로 씻어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0년전 주님께서 이 곳에서 제자들을 부르셨던 그 분의 음성이 지금 메아리져, 나의 마음을 감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부서져라 부서져라 갈릴리 갈릴리야...'
    (1999.11.26)



    ◆필자가 새벽의 갈릴리 바닷가를 거닐면서 찍었다. (1999.11.27)


그래서 이처럼 갈릴리(헬라원어=갈릴라이아/Γαλιλαια)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장소로서 상징성을 지닙니다. 예루살렘은 예배의 중심지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모이는 장소요, 성전이 있는 곳인데도, 주님이 만나주시지 아니하셨습니다. 바로 여기는 유대 땅이기 때문입니다. 유대 땅은 종교 중심지요, 모든 것을 종교 하나로 묶어 놓는 곳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의미로서의 '부활'이 없는 곳입니다. 이 종교의 특성을 과감하게 무너뜨린 사건이 바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다 같이 <요한복음 11:43-44> 읽겠습니다:

    11:43And when he thus had spoken, he cried with a loud voice, Lazarus, come forth. 11:44And he that was dead came forth, bound hand and foot with graveclothes: and his face was bound about with a napkin. Jesus saith unto them, Loose him, and let him go. (John 11:43-44, KJV)

    11:43그리고 그 분이 이 말씀들을 전하시고 난 후, 그 분이 한 큰 소리로 외치시기를, '나사로야, 이리 밖으로 나오너라.' 하셨다. 11:44그러자 죽었던 그가 손과 발이 베로 동여매인 채, 밖으로 나왔고, 그리고 그의 얼굴은 한 수건으로 싸여 있었다. 예수님이 그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를 풀어주고, 그를 다니게 하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11:43-44, KJV화중광야역)

'그를 풀어주고, 그를 다니게 하라.' 얼마나 멋있고 장엄한 자유에로의 선포입니까? 부활의 참의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유대가 이처럼 율법의 미명하에서 갖은 종교를 내세워 사람들을 억압하였습니다. 유대는 '묶는 곳'입니다. 나사로 무덤 입구를 막고 있었던 돌(종교적 율법)을 벗어나, 참다운 자유를 누리게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갈릴리는,

    1) 부활한 자가 가야 할 곳이요,

    2) 부활한 자가 만나야 할 곳이요,

    3)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할 곳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마태복음 28:5-7) 다시 읽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가 그 여자들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씀하시되, '너희는 두려워 말지니, 이는 너희가 나무에 달려 죽은 예수를 찾고 있음을 내가 알고 있음이다. 그는 여기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말한 대로 일으켜졌으니, '와서, 주가 누운 그 자리를 보라.' 그러니 빨리 가서,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졌다고 그의 제자들에게 알리고, 그리고 보라, 그가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고 있으니, 거기서 너희가 그를 보게 될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알린대로다.' 하셨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예수님이 예루살렘 안에서 갈릴리로 오심은,

    1) 갈릴리는 흑암에 있었던 곳이며, 예수님을 통하여 '큰 빛'을 만난 곳입니다.

    2) 몸의 부활로부터 영의 부활에로의 전환지로서, 예수님의 본래의 하나님의 모습으로 돌아가신 곳입니다.

    3) 오늘의 우리 성경신자들의 부활, 곧 '나의' 부활을 소망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부활은 예배적 행사에 있는 것이 아니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잃었다가 다시 찾아진 참다운 십일조들/요한복음 17장)이 있는 곳, 바로 그 곳이 갈릴리입니다.

샬롬!! PEACE BE WITH YOU!!

<Creates/20030419> <Modified/20051111> <Updated/200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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