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긴급특집][역사는 살아 숨쉰다 4] 마지막 때 '속임자' <적크리스투>(Anti-Kristu/Anti-Christ)는 영국에서 출현한다??!!

For many deceivers are entered into the world, who confess not that Jesus Christ is come in the flesh. This is a deceiver and an antichrist. (2 John 1:7, King James Version)

따라서 많은 속임자들이 나와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갔으니, 이는 그 예호슈아 메시야가 살을 입고 오심을 시인하지 않는 자들이도다. 그러한 자가 한 속임자요 한 적크리스투이도다.
(요안이서 1:7, 예호슈아유언 정재선역)

[미니풀이]
'카도쉬'(성도) 요안이 본절에서 만은 헬라원어 '안티크리스토스'(Αντίχριστος)를 차용하였는데, 나머지 다른 곳에서는 '거짓 메시야'(ψευδή Μεσσία)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본절에서의 '그 세상'은 '코스모스세상' 곧 '악한 것으로 되돌려 받는 자'를 가리킴이다. <필독관련자료/그 세상의 네 가지 용례/자세히보기>.


<한국은 왜 빠졌나??> ㅡ 영국 윌리암 왕세손의 일본과 중국 방문의 속셈은??

글/ 정재선 목회자

영국의 '제임스 왕'이 1613년에 일본의 실권자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에게 친서를 보내어 친교를 청원하여, 극동지역에로의 마수의 손을 뻗친 이후...오늘에 이르도록 일본이란 나라는 영국의 유일한 <대리전 파트너>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이 <흑선>을 몰고와서 위협을 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문호를 개방하였지만...그 배후는 영국이 관여되었음을 묵과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는 <죠슈번>(長州藩)의 <5걸>(五傑)이라는 젊은 사무라이들(이토 히로부미/이노우에 가오루/엔도우킨스케/이노우에 마사루/야마우 요오조우)을 영국에로 밀항시켜서 '세뇌교육'(밀정교육)을 시켰음이...여실히 드러났지 않았던가!! 결국에는 1864년 영국이 해군을 보내어 <살영전쟁>(薩英戰争/Anglo-Satsuma War, Bombardment of Kagoshima)으로 '위협을 해옴으로써...이들을 앞세워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결행하였고...그 최종 목적은 한반도의 완전 장악이라고 하는 영국의 목표를 대행해 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판단되었다!! 그렇지만 일본의 36년간 한반도장악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자, 영국은 미국으로 하여금 원폭으로 일본을 투항시켜 버렸고, 결국에는 일본을 장악하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평화헌법>이다. 미국이 일본을 장악한지도 금년으로 70년이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사진설명] <왼쪽> 요코하마 소재 '英連邦戦死者墓地'(YOKOHAMA WAR CEMETERY)를 참배하는 왕세자 일행. <오른쪽상단> NHK 분장실에서 사무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분장을 한 왕세자. <오른쪽하단> 영국이 한국을 참탈 목적으로 런던으로 밀항시켜 세뇌시킨 5명의 밀정들 곧
<조슈오걸>(長州五傑)이 영국에 도착한 모습이다.
이들이 한일병탄의 주모자들이다!! 그들 배후에는 항상 영국이 있었고...지금도 있으며...앞으로도 있을 것임을 절대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일본을 방문한 영국 윌리암 왕세손이 <제2임진왜란>이냐 <제2한일병탄>이냐?? 하는 어떤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판단되었으니...이는 영국 <윌리암> 왕세자의 즉위 시기가 머지 않았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임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왕세자가 NHK 분장실에서 저런 '분장'(도요토미 히데요시)은 우리에게 굴욕의 역사를 재현시켜 주는 어떤 <침략코드化>(??)가 들어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무척이나 '야비하고 비굴한 행태'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2015년에 방영중인 KBS 드라마 <懲琵錄>(징비록)이나 NHK 드라마 <花燃ゆ>(꽃 타오르다)는 일맥 상통하는 <침략코드化> 곧 <전쟁과 피>가 흐르고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 영국의 왕위는 머지 않아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손자에게 양위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차세대 유력한 왕이 될 <윌리암 왕세손>(Prince William)이 2015년 2월 28일 일본을 방문하였고...그리고는 한국을 빼놓고는...3월 3일 중국을 방문한 후 돌아갔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방문의 성격을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우선, 외신들의 보도를 보면, 일본 방문의 제목에는 <TOUR>(여행)이라는 용어가 빠진데 반해, 중국의 방문은 <Tour Visiting>(여행방문)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다. (Guardian/자세히보기). 양자의 방문의 성격이 현저한 차이를 나타낸다. 게다가 일본 'Royal Family' 측에게는 그의 부친 <찰스 왕세자>(Prince Charles)의 왕위 불가론을 설명해주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방문은 단순한 여행용 방문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게다가 한국에는 방문할 수도 없잖은가?? 지금 한국 대통령이 외국(중동지역) 순방중이라서...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참으로 '묘한 일치' 곧 '코인시던스'(COINCIDENCE) 같다구나 할까?? 이토록 정치란 늘상 어떤 <코드化> 속에 움직이고 있는 법이요, 그 <코드化>는 당장에 밝혀지는 것도 있지만...깊은 것은 훗날에
<역사적진실>로 밝혀지는 것이 태반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살아 움직인다>는 말이 타당한 것이다!!

다시 19세기로 돌아가보자!! 1868년 일본의 <메이지유신> 후 한국장악에 실패한 영국은 그 마지막 카드로서 '다시 일본을 구슬리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밖에는...따라서 <역사적진실>은 영국이 한국을 위해 해준 이익이 과연 무엇일까?? 이것은 구한말 개화파(개화당)의 진실을 필적(筆跡)해가면 그 해답이 나올 것이다!! <2015.3.7/깊은밤>


[明治維信 前後 戰爭에 숨겨진 秘密코드 ㅡ 韓半島 征伐 구실]

1877년 '세이난전쟁'(西南戰爭)의 결착(결말)이 난 시점에서, 사족계층의 특권은 명백히 부정되었고, 몰락이 결정지어졌다. 전쟁으로 인한 경제 혼란은 빈부격차 확대를 초래하여 많은 농민이 몰락, 소작농이 되었다. 그 한편으로는, 일부 대지주나 재벌은 자본을 축적하여, 그 중에서 초기 자본가가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 '신분' 보다도 '돈'이 우월한 사회가 도래,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근대화가 진행 되었다. 이것은 명목상으로 기록된 역사의 전말이다.

이미 1876년에 우리 한반도는 강제로 개항하기에 이른다. 바로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이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본 배경이미지 '강화사'('江華史) 사진자료에서 인용한 것이다.  <江華文化院, '江華史', 1976>. 본 자료 입수에 도움을 준 그 손길에 고마움을 전한다!! ㅡ <운요호사건>(雲揚號事件) ㅡ 1875년 9월 20일(고종 12년 음력 8월 21일) 또는 <강화도사건>(江華島事件)은 통상조약 체결을 위해 일본 군함 운요호(雲揚號)가 불법으로 강화도에 들어와 측량을 구실로 정부 동태를 살피다 한국 수비대와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 한국식 한자음 그대로 <운양호사건>(雲揚號事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 통상조약을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 또는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이라고 부른다. 이 강화도조약의 체결과정의 시말을 기록한 <신헌의 일기> 곧 <심행일기>(沁行日記)가 번역 출간되었다!!

[관련용어] 세계정부를 꿈꾸는 이 <사바티안 마피아團>은 세계인을 혼란시킬 목적으로 자신들의 집단의 명칭을 자주 바꾸어 버린다. 다음은 2014년부터 병행시키고 있는 <사바티안 마피아團>의 새용어이다 ㅡ Zionazi Khazarian(시오나치 하자리아인)=Zionazi Mafia(시오나치 마피아團)= Zionazi Gangsters(시오나치 갱團=The Zionazi Slavery System Is The Zionazi Control(시오나치 노예제도가 바로 시오나치의 권력장악이다) ㅡ <시오나치=시온주의자+나치당>(Zionazi=Zionist+Nazi) ㅡ '나치당'(SS)은 예수회의 신부들로 이루어진 조직이기 때문에...예수회가 배후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근래에 미국의 <CIA/DHL>이 <펜타곤>의 수하로 넘어갔다(shut down)는 루머가 파다하다!! <펜타곤>은 바로 예수회가 장악하고 있으니...이는 <CIA>와 <국토안보국>(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까지도 예수회의 손아귀에 넘어갔음을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저들의 음계로 인하여 우리 한반도에도 언제 어떤 형태로 마지막 장악의 마수(魔手)가 뻗칠런지...그렇기에, 이번 영국의 윌리암 왕세손의 일본과 중국 방문에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하겠다는 판단인 것이다!!


 

◆<이미지프리제공/위키피디어>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이미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영국·프랑스·미국 등에 왕정복고를 통고하는 한편, 대마도주 무세(宗義達)를 외국사무국보(外國事務局輔)로 임명하여 한국(조선)에 대한 국교의 재개를 요청하는 국서를 보내왔으나, 조선은 서식과 직함이 다르다 하여 국서의 접수를 거부했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생겨난 사족(士族)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고, 또 구미 제국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개정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다른 나라의 문호를 개방시키려 했으며 조선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한편, 국내에서도 개화세력들에 의한 문호개방의식이 자라고 있었고, 민씨(명성태황후 척족) 정권으로서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국과의 분쟁을 피하고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청국도 조선에 미국·프랑스와의 국교수립을 권고하고 일본의 대만정벌 소식을 접하고는 조선의 대일본정책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세에 편승한 일본은 부산항에서 함포시위를 벌여 조야에 충격을 준 후, 강화도에서 '운요호사건'을 유발함으로써 마침내 1876년 2월 27일 전권대신 신헌(申櫶)과 특명전권판리대신 구로다 기요다카(黑田淸隆) 사이에 12개조로 된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자료인용/다음백과사전>

오른쪽 이미지 상단을 보라!! 앞장에서 잠시 간략하게 소개한 '국적없는 선교사' 베어벡의 사무라이들이다. <18번>이 <구로다 기요다카>(黑田淸隆)이다!! 그 아래 사진은 육군 참모총장으로서 中將의 모습이다. 이 자가 강화도조약의 실제 주범이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ㅡ 겉으로는 서구 문명의 개화를 위해서 구체제를 엎어 버리고 신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피치 못하였던 역사적 소용돌이었다고 史家들은 기록하였지만...필자는 그리 보지 않는다.

<강화도조약>에 동원된 군함 <운요호>를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 출신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가 영국에서 구입한 것으로, 이 군함을 앞세워 한국침략에 나선 것이다. (사진 하단). 이 때 일본은 '로스차일드家'(Rothchild Family)가 주문하는대로 하는 '원숭이 제자들'(??)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1854년 4월, '페리'(Perry) 미해군 제독이 일본에 도착하여, 일본인에게 경제개방을 강요한 후, 아시아의 '로스차일드'(Rothschild)의 사람인 '쟈딘 매써슨'(Jardine Matheson)은 일본에다 한 요원을 보냈다. 그의 이름은 '글로버'였고, '스코틀랜드 사무라이'(Scottish Samurai)라는 별명을 지녔다. 그의 임무는 일본에 내전을 촉발시킴으로써 무기시장을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 전쟁의 궁극적 목적은 일본의 식민지화 건설을 준비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글로버'는 전함 몇대와 무기 몇점을 팔 수 있었으나, 결국 그의 계략이 공개되면서 그는 파산상태에 처한다.

'쟈딘매써슨상회'(Jardine Matheson Holdings)의 도움으로 과연 '조슈5걸'(長州五傑)이 밀항으로 영국 런던까지 건너가서 무엇을 배워 왔겠는가? 韓半島 征伐의 主謨者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의 후견인이었던 '휴 매써슨'(Hugh Matheson)으로부터 무엇을 배워 왔겠는가!! 결과론이지만, '蘭學'(네델란드 문물)을 빌미로 해서 '국적없는 선교사 베어벡'(
Verbeck Of Japan A Citizen Of No Country)을 적극 소개해 주었을 것이며, 제국주의에로 전환하여서 속히 한국(조선), 중국 그리고 나아가서는 러시아까지 정벌하여 극동의 제국으로 군림하는데는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세뇌시키지'(??) 않았겠는가!! 그 후 수 년 후에 그대로 진행되었음이 살아있는 <歷史的眞實>이 증언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한반도가 저들의 음계대로 호락호락 넘어져 쓰러지지 않는다. 이제는 모든 징조들로 보아, 성경의 예언의 그 말씀대로 '마지막 때'에 와 있다. 작금의 세계정세는 이미 '세계3차대전'(??)에로 몰입하였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은 다르다. 갖은 계략으로 한반도를 침탈, 장악하려 하지만,
이제는 예호바 하나님이 '삼파람'(THE WHIRL WIND/東風)을 보내시리니, 이로써 '아마겟돈'은 시작될 것임이라!!
<2009.9.17/초고><2015.3.8/보정>

[본론이다!!] 지난 주(2015.3.2)에 <구한말 개화파 젊은 시절 채색사진 첫 발견> 되었다 해서 '들뜰'(??)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역사적진실>을 냉철하게 짚어봐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1884년 개화파의 정권 뒤집기는 <3일천하>로 끝났기에 다행한 일이었다!! 과연 <갑신정변>은 누가 사주하였는가?? 일본 대신 <이노우에 가오루>(伊井馨)와 <흑룡회>(黑龍會)의 검은 손들이 곧 일본의 <프리메이슨>이 아니었던가?? 이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마지막 카드로서 1895년에 <명성태황후>를 암살한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누누이 강조해오고 있듯이 <명성태황후>의 암살배후는 바로 영국 밀정 '월터 힐리어'(Walter Hillier)와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shop)이 공모하여 촬영에 성공한 <명성태황후의 어진>이 결정적인 요인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대한민족 3대 암살미해결 사건 ㅡ <명성태황후 암살단> 주모자[3]ㅡ이사벨라 비숍]/자세히보기>.

한편, 구한말 개화파 젊은 시절 채색사진을 수집한 장본인 <윌리암 E. 그리피스>(William E. Griffis)는 우리말로 번역된 <은둔의 나라>(Corea, the Hermit Nation)의 저자이다. 이 책은 '그리피스'가 1870년부터 12월에 도착, 1875년까지 일본에서 프리메이슨의 밀정으로서 암약하다가 미국 본국으로 돌아갔고, 계속 저술을 해오다가 1882년에 발행한 것이다. 그리고 1900년에는 베어벡 선교사의 전기 <국적없는 선교사>(Verbeck Of Japan A Citizen Of No Country)를 발간하였다.
이번에 '그리피스'가 수집해 놓은 개화파의 젊은 시절 채색사진들을 입수하였다고 법석였다!! 그러나 '그리피스'의 정체를 알아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배경이미지> ㅡ 한국 주재 선교사 아펜젤러의 전기 <William Elliot Griffis, A Modern Pioneer In Korea; The Life Story Of Henry G. Appenzeller, New York: Fleming H. Revell Company, p.86-87, 1912, p.86-87>. <그리피스>는 1900년에 <베어벡> 선교사의 행적을 다룬 저서를 발간하였다: <국적없는 선교사>(Verbeck Of Japan A Citizen Of No Country). 그리고 위 바탕이미지에서 보듯이, 그는 한국 주재 미국 선교사들에 관한 저술도 발행하였다. 이러한 저서들은 일종의 <밀정보고서>인 것이다!! 프리메이슨은 이처럼 '선교사/의사/교육자/사업가'를 이용한 <위장전술>을 통해서 당해 국가들의 정보를 낱낱히 훔쳐갔던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미국 '뉴브런스윅 신학교' 출신의 동양 선교사 그리피스

<윌리암 그리피스>(William Griffis/1843-1928) 선교사는 '네델란드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에서 밥팀례를 받았으며, <귀도 베어벡>(Guido Verbeck/1830-1898) 선교사와는 미국 '네델란드 개혁교회'가 세운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의 동문이다. 그리고 <호러스 언더우드>(Horave Underwood/1859-1916) 선교사도 1884년에 이 대학교(뉴브런스윅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이듬해 일본(요코하마)를 거쳐 한국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언더우드 선교사는 '네델란드 개혁교회'가 아닌 '미국북장로교회'로부터 한국 파송을 받고, 1884년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선을 타고, 다음 해 1885년 1월 25일에 일본의 요코하마(橫濱)에 도착하였다. 당시 일본 안에는 '네델란드 개혁교회'가 운영하는 '뉴브런스윅 신학교' 출신 선교사들이 많았다. 1859년에 베어벡(Guido Verbeck)을 위시해서 브라운(Samuel Robbins Brown), 시몬즈(Duane B. Simmons)와, 1861년에는 온 발라(James Hamilton Ballagh) 등의 선교사들이 와 있었다. 그러나 언더우드는 장로교로 이적하였던 관계로, 일본에 와 있던 장로교회의 선배 선교사 햅번(James Curtis Hepburn) 박사 집에 머물면서, 한국에서의 선교사역에 필요한 훈련을 받게 되었다. 1882년 한국의 '임오군란'으로 인하여 9월에 일본으로 망명와서 1883년 4월에 그리스도인이 된 '이수정'(李樹廷)으로부터 한국말을 배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수정은 요코하마 주재 미국성경공회의 총무 '루미스'(Henry Loomis) 선교사의 요청을 받고서, 한문성경을 토대로 하여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와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 그 가운데서 '마가복음'이 1885년 초 요코하마에서 1,000부를 인쇄하였으며, 이 번역본을 언더우드가 읽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요코하마에서 2개월 이상 말을 배움과 동시에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얻어 갖고, 3월 26일 '고오베'(神戶)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4월 5일 한국(제물포)에 도착하였다.
<이광린, '초대 언더우드 선교사의 생애', 서울:연세대학교출판부, 1992, p.16-19. 참조>.

비록 선교사 파송교단은 달랐지만, <베어벡> 선교사와는 나이가 무려 29년이나 차이가 나지만, <언더우드>는 '뉴브런스윅신학교' 출신의 베어벡 선교사의 후배였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까지 <베어벡>과 <언더우드> 두 선교사 간의 교제관계에 대하여는 자료를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리피스> 선배와도 어떤 교제를 나눴다는 기록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이 세 사람이 같은 <네델란드人>이라는 점과 같은 <뉴브런스윅신학교> 출신의 동문이라는 점에서...보이지 않는 배후의 손길에 의한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암행>(??)을 하였을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니...가까운 옆 나라 한국을 전혀 방문하지 않은 <베어벡>과 <그리피스>의 정체는 분명 비밀단체인 <프리메이슨>과 무관치 않음을...펼쳐본 것이다!! 특히 <그리피스>가 그리도 다작을 하였음에도...사진이 좀처럼 발견되지 않음은 중국어 성경번역자 <메드허스트> 영국 선교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필자 나름의 판단에 의함이니, 독자께서는 오해없으시길 바란다!! <2015.3.8>


[개화사상의 진원지는 북학이었다!!] 개화사상인 통상 개화론은 조선후기 북학파 실학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북학파는 19세기에 들어와 이규형, 최한기 등에 의하여 계승되고, 다시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에 의하여 통상 개화론으로 발전하였다. <별도주제에서 다룰 것이다!!>

19세기말 청의 군사중심의 근대화운동인 '양무운동'(洋務運動)도 개화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박규수는 1861년 청에 사신으로 가서 애로호 사건으로 혼란에 빠진 중국의 모습을 목격하였고, 평안도 감사로 재직할 당시에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경험하면서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다시 청에 사신으로 가서 양무 운동을 접한 박규수는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서양의 발달된 문물을 수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과의 수교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중인 출신의 역관이었던 오경석은 청을 오가며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가져, <해국도지>, <영환지략> 등의 양무서적을 접하면서 세계 정세에 대한 지식을 넓혔으며, 박규수와 함께 개항을 주장하여 <강화도조약> 체결에 영향을 주었다. 같은 중인 출신의 의관이었던 유홍기도 오경석으로부터 양무서적을 전해 받아 연구하면서 개화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개화사상의 선구자 였던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은 다수의 양반 자제들을 불러모아 세계정세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가르침을 받은 젊은 양반들은 북학파 사상과 서양의 근대문물을 익히면서 개화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 밖에 승려 이동인을 비롯하여 중인과 상민 등의 계층에서도 개화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뒤 김옥균, 박영효 등은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일본의 사상가들을 만난 후 문명개화론의 영향을 받아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하였다.

개화세력은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의 문화생들이었으나, 이 안에서도 개혁의 궁극적인 방향은 같이하면서도 실현 방법에 대해서는 차이를 보였다. 민씨(명성태황후 척족파) 정권과 타협하며, 점진적으로 힘을 키워 사대관계를 청산하자는 온건파(온건개화파)와 청나라에 대한 사대 관계를 청산하고 민씨 정권를 타도 해야 한다는 급진파(급진개화파)로 말이다. 급진파의 대표적인 인물은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홍영식 등이었다.

만일 '갑신정변'(1884.12.4)이 성공했더라면...어차피 '명성태황후' 척족파들은 축출되었을터...<고종태황제>는 모르겠지만...<명성태황후>의 목숨까지도 위태하셨을 터(?)...어차피 그때로부터 약 11년 후에(1895.10.8) <명성태황후>는 암살당하시니 말이다!! 진즉 이들의 배후세력의 공작을 간파하실 수 있을 정도의 정보입수 조직망은 무척이나 열악하였을 것이다...주로 한국에 와 있는 일부 외국 선교사들의 정보입수 정도였을 테니 말이다. 그런 선교사들 중에 일부는 '프리메이슨 회원들'이 있었다니...그들은 교육계와 의료계로 침투하였음을 입증해주는 자료들이 발굴되고 있다. 참으로 기막힌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족>(大桓民族)의 이름으로 이들의 행적들을 추적, 파헤쳐내야 할 것이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우선 고가의 이 희귀자료를 입수하는데 도움을 주신 분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본 이미지는 1876년 3월 6일에 발행된 일본'요미우리신문' 호외판이다. ㅡ 1876년 2월 27일<강화도조약>일본측/일선수호조규)을 체결한 '구로다 기요다카'와 '이노우에 가오루'가 3월 5일에 도쿄에 도착하였다. 특히 메이지유신의 일등공신들이 최고관직인 태정대신(太政大臣) 자리에 임직, '기토 타카요시'와 '이토 히로부미' 등 하급 사무라이들이 포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구로다/이노우에/기토/이토' 등 모두가 바로 프리메이슨 선교사 '기도 베어벡'으로부터 세뇌받은 하급 사무라이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후 한국에는 1882년에 <임오군란>이,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났고, 1885년에는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하였으니, 조선의 멸망의 그림자는 이렇게 드리우고 있었다. 드디어 1895년'명성태황후' 암살까지 일어났다!! 이 혼돈의 회오리 속에서 조선은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메이지 천황이 '구로다 기요다카'와 '이노우에 가오루' 두 전권대신에게 술을 권하였다는 본 호외기사는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이 겪어야만 했던 치욕의 한 <역사적진실>이다. 이런데도 일본을 믿으라고??...이런데도 영국을 믿으라고??...이런데도 미국을 믿으라고??...마지막으로 저들은 한반도 재점령을 위해서 무슨 짓거리를 노닥거리고 있는지...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세계정세의 흐름을 예히 주시해가면...저들의 음계를 간파할 수 있음이니...그러기 위해서는 '전세대란'(주택)으로부터 잠시 역사를 공부하시요!! 그러기 위해서는 '야구'로부터 잠시 역사를 공부하시요!! 그러기 위해서는 TV드라마로 부터 잠시 역사를 공부하시요!! 샬롬!! <2015.3.9/깊은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1882년에 <은둔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을 저술, 한국 선교에 관심있는 크리스투인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윌리암 그리피스>...일본 역사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데에는 한국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저술한 그리피스...그가 한국 땅을 밟지 않았다는데...그것이 아이러니요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것 한 가지만 보더라도...그 시대 미국이나 영국 선교사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할 수 없는 어떤 <덫>에 걸려있음을 능히 유추하게 만든다. 바로 <선교활동비>인 것이다!! 특히 그가 유별나게 한국관련 사진들을 500여점 이상이나 수집하였고...그 가운데서 개화파 청년들의 사진들이 채색된 것이 지난 3월 2일 공개된 것이다. 일본에 약 5년동안 체류하면서 이토록 많은 한국관련 사진들을 입수하게 된 그 배경에는 필시 어떤 '중개자'가 있었을테니 말이다.


1613년 영국의 교섭제안으로 이루어진 일본과 영국 간의 관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미국을 조종하고 있는 영국이 오늘날까지도 일본으로 하여금 <종미주의>(從美主義)를 지향케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영국의 특허물인 <밀정>(MI6)을 파견시켜서 진행한 세뇌공작에 의한 것이었다!! 다음 왕위를 승계받을 <윌리암>이 왕세손이 일본을 깜짝 방문한 것도 일종의 <밀정역할>을 부인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것도 한국을 살짝 비켜간 것도 심히 염려가 되는 대목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은 한국과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일본은 완전 외국 지향적인 근대화를 진행시킨 반면, 우리 한국은 1만년이나 흐르고 있는 <한사상>(桓思想)의 터전 위에 내적으로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진행해 온 것이다. 이로써 영국과 영국의 꼭두각시 미국은 한국이 좀처럼 다루기 힘든 곧 점령하기 힘든 민족임을 알고서는, 마지막 카드가 바로 일본을 이용한 <강제점령> 곧 <한일병탄>이었던 것이다!! 36년간 별이별 숫법들(무단공포정치)을 동원시켜 가면서 <내선일체>(內鮮一體)라고 하는 허구성 위에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황민화>(皇民化)를 실현시켜 볼려고(한국 소녀들 '위안부 정신대' 이용/별도주제에서 상세하게 다를 것이다!!) 발악했건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실패하니까,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을 둘로 갈라 놓은 것이다!! 벌써 70년이 흘러가고 있다. 과연 <역사의 주관자이신 예호바의 암미>를 바라보면서 각자가 구국의 선상에서 회개기도에 올인해야 할 때가 이른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교단중심)는 너무도 병들은 징조들이 여기 저기서 드러나고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하겠는가?? <2015.3.2/깊은밤><2015.3.9/보정>

 
 
<Created/20150302> <Updated/20150307><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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