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에세이는 필자가 2002년부터 준비해온 것을 2006년에 수정을 하였고, 이제 마무리해서 올립니다. Kilkenny 형제님의 글도 허락받아 인용하였음을 밝혀둡니다. 샬롬. (2009.2.13)


글/ 정재선 목회자

I am the good shepherd, and know mine, and mine know me. (John 10:14, 휘스톤역본)

나는 그 선한 목자라, 나의 양들을 알고, 나의 양들은 나를 아노라. (요한복음 10:14, 휘스톤역본 화중광야역)

[선하신 목자/ 다니엘정 연주 ]

선하신 목자 날 사랑하는 분 주 인도하는 곳 따라 가리
주의 말씀을 나 듣기 위하여 주 인도하는 곳 가려네

선하신 목자 날 사랑하는 분 주 인도하는 곳 따라 가리
주의 말씀을 나 듣기 위하여 주 인도하는 곳 가려네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내 선하신 목자 날 인도해

험한 산과 골짜기로 내가 다닐지라도
내 선하신 목자 날 인도해

[제1부에서 계속됨]

[면죄부 판매부활!!] 오늘 우연하게 '미국 카톨릭에 면죄부가 돌아왔다'라는 기사가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한 마음에 알려드립니다: '1517년 교황이 면죄부를 판매하다 마르틴 루터 등의 종교개혁운동을 촉발한 뒤 가톨릭교회는 1567년 면죄부 판매를 금지했었다. 하지만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새천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주교들에게 면죄부 발급 권한을 주었고, 베네딕토 16세 현 교황 체제가 들어서면서 전세계적으로 면죄부 발급이 보편화 되고 있다'고 2월 9일 'NewYorkTimes'가 보도했다. <자세히보기> (2009.2.13/ Tim Park).

'루터는 철두철미 경건한 수도사였으며, 교회의 남용과 싸우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원치 않았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에 반대하는 95개조 논제를 베텐베르크의 슐로스교회(Scholosskirche zu Wittenberg)의 문에 게시하고, 이로써 학문적인 관습에 따라 면죄부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는 논쟁을 전개하도록 도전장을 낸 것이다.' (파울 슈레켄바흐/프란츠 노이베르트 공저, 마르틴 루터, p.45).



마틴 루터의 시대와 생애

루터가 태어나기 바로 30년전, 요한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인 이동식 활판의 인쇄법을 발명하였다 (아래사진 중앙)

◆L.크라나흐(Cranach)가 그린 아주 희귀한 초상화이다(40세때).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루터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마틴 루터의 출생지(오른쪽 세번째)


위대한 루터 박사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 아이스레벤(Eisleben)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요한/마가렛 루터(John and Margaret Luther)였다. 그 집 안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위사진 오른쪽):

이 집 안에서 1483년 11월 10일에 마틴 루터 박사는 태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루터의 지식(교훈 혹은 전승)이다. 그것은 영원토록 거주한다. (In this house Dr. Martin Luther was born, the 10th of November 1483. God's Word is Luther's lore; which abides for evermore.)

◆아이젠나흐(Eisenach)에 있는 이 집에서 소년 루터는 자랐다.

◆린덴슈미트(Lindensch -midt) 교수가 그린 루터의 소년 시절


루터는 매우 가난하였고 젊은 마틴은(성 콜롬바/St. Columba 처럼) 하나의 위대한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실로 그는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문자 그대로 여러 차례 노래를 불러야 했다. 자비의 한 천사인 울술아 코타(Ursula Cotta) 여사가 자주 그와 함께 가정 식사를 나눴다.

◆아우구스티니안수도원
(Augustinian Monastery)

◆로마 소재 판테온(Pantheon)


루터는 번개를 맞아 거의 죽을 뻔 하였다. 그래서 그가 수도사가 된 이유였다. 세상을 저버리고 한 수도원 안에서 자신을 숨김으로써, 그 수도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는 곧 수도원의 그 두꺼운 벽들이 그의 속으로부터 일어나는 욕망들을 억제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었다(위사진 왼쪽).

루터는 1510년에 불경한 도시로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죄들을 속죄받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서
'빌라도의 계단'(Pilate's Staircase)을 오르는 동안, 그는 한 천둥이 말하는 것 같은 한 음성을 들었다(위사진 오른쪽):

'의인은 믿음으로부터 살 것이다'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킹제임성경 화중광야역>

[보충설명]
한글개역='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한글개역> 번역으로는 정확한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전달되지 못한다. 의인이 사는 것은 믿음이 그 원인임을 알게 해주는 식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본 말씀은 신약성경 안에 다음과 같이 3회 인용되어 있다:

① 로마서 1:17=The just shall live by faith
'살다'(live) 즉 '내생(future life)을 강조한다. 부활의 생명 안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생(this life)에 국한 한다면, 악인도 믿음없이 살아가기 때문에 여기서 '살다'는 내생에 언급시켜야 한다.

② 갈라디아서 3:11=The just shall live by faith
'믿음'을 강조한다.

③ 히브리서 10:38=Now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의인'을 강조한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the just by his faith) 아니라, '의인은 믿음으로부터 살게 될 것이다'(a just one, by his faith, will live)로서, '의인의 근원이, 기원이' 바로 '믿음으로부터'(εκ πιστεωζ)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믿음과 불신의 차이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냐 죽느냐' 하는 각 개인의 운명을 강조하여 바로 의인에다 초점을 두고 있다. 심도있게 상고해서 풀어야 할 귀한 구절이다. 종교의 개혁을 가져온 본문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 <성 베드로의 성당>이 신축중이었고, 돈이 엄청나게 필요했다. 이것이 소위 면죄부 사건이 발단된 것이다. 루터는 후에 자신의 로마 방문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자신이 '만일 한 지옥이 있다면, 로마가 그 위에 세워진다' 라고 사람들이 로마 길거리들 안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성베드로성당 외곽에 자리한 성베드로의 십자가탑.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붐을 일으킨 것이다. 교황은 로마 안에다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살인, 강간, 사기, 도둑질, 거짓 맹세 등등의 죄들의 사함이 한 값으로 제공되었다. 심지어 돈만 있으면 미래의 죄들까지도 사함을 받았다. 구원이 일반 시장의 상품처럼 가져와서 팔려 나갔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물이 모욕적으로 다루어짐이 루터에게는 커다란 파란을 일으키게 된 마지막 사소한 일이었다.

[광고문구] '십자가에 입맞추세요, 그리하면 당신은 또 한번 면죄부를 얻습니다.' (Kiss the crucifix, and you get another indulgence.) <eBay 사이트보기>


괼리츠(Gorlitz)의 시장 요한 헤히트(Johann Hecht)는 테첼과 그의 설교를 노골적으로 묘사했다:

    '테첼은 신체가 크고 건장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말은 능변이었고 매우 박식했으며, 그의 삶도 매우 세련되었다. 그는 죄의 용서와 죄의 보전(保全)을 위해서 하나님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말했다. 작은 돈이라도 세례반에 던져서 소리가 울리면, 자신이 거기에 넣은 영혼이 그 즉시로 하늘에 있게 된다.' (마르틴루터, p.46).

테첼의 남은 여생의 운명은 매우 비참하였다. 그는 면죄부 판매가 끝나자 다시 라이프치히로 돌아왔지만, 도처에서 조롱받고 조소를 받았으며,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속죄양으로 취급하고 수도원 감옥에 감금시켰고, 그는 감옥 안에서 분노와 고뇌와 역정 속에서 심각한 정신병을 앓았다.

루터는 이 소식을 듣고 그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오직 테첼이 회개하고 고문을 가하는 수도사도 다른 사람의 도구인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 테첼은 루터가 라이프치히에서 신학 논쟁을 벌이던 바로 그 날에 죽었다. (마르틴루터 p.414-415).

◆테첼(Tetzel)이 작성한 불경한 면죄부의 사본

◆'해골과뼈종단회'(Skull& Bones Society) 엠블럼

[보충설명] 위 면죄부 사본(왼쪽이미지) 가운데서 두 개의 열쇠가 있는 표식을 주목하자. 이것이 오늘날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를 획책하고 주도하고 있는 소위 비밀조직인 '해골과뼈종단회'(Skull & Bones Society)의 엠블럼과 너무나 흡사하다. 글쎄 우연의 일치라 하기에는...(이 협회에는 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를 비롯, 그의 아비 부시와 클린턴 등 전 미국 대통령들이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에게 분노하였고, 60일 이내로 철회하든지...아니면 한 무시무시한 죽음을 맞이하든지 로마에 출두하도록 그에게 명령하는 한 제명서를 보냈다.

불꽃들이 교황의 제명서를 태운다. 루터는 이 교황의 천둥같은 제명서를 무시하고, 1520년 12월 10일,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문들 밖에서 교황의 칙서(the Decretals of Clement VI., the Summa Angelica, the Chrysposus of Dr. Eck)를 불태워 버렸다. 이 용감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루터는 공식적으로 교황을 파문시켰다. 그 운명의 날 이후로, 하나님의 분노의 불이 바빌론 대제를 불태우는데, 결코 꺼지지 않았다.


선거제후 프레데릭의 1517년 10월 31일전 밤의 유명한 꿈 이야기

 

색소니의 선거제후(選擧諸候)이며, 현자인 프레데릭(Frederick the Wise, Elector of Saxony)은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설립자였다(사진 오른쪽). 그는 교황의 분노로부터 루터를 보호하였다. 그의 유명한 10월 31일 전날 밤 꿈 이야기이다.

루터가 캐슬처치(성교회)의 그 문에다 그의 '항의문'(Theses)을 부착시킨 그 중대한 전날 밤에 색소니의 선거제후 프레데릭이 꾸었던 한 꿈을 기술함은, 우리가 역사의 영역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순간을 맞는 것이다.

선거제후는 자신의 꿈을 그 다음 날 아침, 그의 형제 요한 공작에게 전해 주었다. 요한 공작은 비텐베르크로부터 여섯 동맹들인 슈바이니츠(Schweinitz)의 프레데릭의 궁전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 꿈은 그 당시의 모든 연대사가들에 의해서 기록된다. 우리가 아무리 그 꿈을 해석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진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그 꿈을 여기서 '항의문' 사건과 거기서 비롯된 그 운동을 일으킨 하나의 간명하고 극적인 개요임을 천명한다.

1517년 10월 31일 아침, 선거제후(選擧諸候)인 프레데릭은 요한 공작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 내가 간밤에 꾼 꿈 하나와, 내가 알아둬야 할 그 의미를 알려줘야겠네. 그 꿈이 내 마음에 너무 깊이 새겨져서, 천년을 산다 해도, 내가 결코 그것을 잊을 수 없을 걸세. 따라서 내가 그것을 세 번이나 꾸었는데, 매번 분위기가 새로웠지.'

요한 공작: '그것이 좋은 꿈이요 아니면 나쁜 꿈이요?'

선거제후: '모르겠소. 하나님만 아시는지라.'

요한 공작: 그것에 너무 불안해 하지 마오. 근데 내게 알려준다 하는 걸 보니 아주 좋은 꿈인가 보오.'

선거제후: '피곤한데다 지쳐서 간 밤에 잠자리에 들자마자, 나는 기도를 마친 후 곧 바로 잠들었지, 그리고는 2시간 반 가량 숙면하였어. 그리고는 깼거든. 한 밤 중까지 깨어 있는 중에 갖가지 생각들이 내 마음을 지나는거야.  다른 일 가운데서, 모든 성자들의 절기를 어찌 준행하는가 하는 문제였지. 나는 연옥 안에 갇힌 가련한 혼들을 위해 기도했어. 그리고는 하나님께 나와 내 백성을 진리대로 인도해주시라 간구했지.

나는 다시 잠에 들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한 수도사를 보내주신 꿈을 꾸었어. 그는 사도 바울의 한 참된 아들이었어.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질서대로 그를 데려왔지. 이는 내 앞에서 증언을 해주고, 그가 온 것은 어떤 계략을 획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함은 하나님의 그 뜻에 의함임을 선포하러 온 것이라는 거야. 성도들이 내게 묻기를, 그로 하여금 비텐베르크 성의 교회의 문 위에 뭔가를 쓰도록 그를 허락해주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나의 학장의 권한으로 허락했지.

그 후 곧 그 수도사가 교회로 갔고, 그가 내가 슈바이니츠에 있는 그 필적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커다란 글자들로 쓰기 시작하더군. 그가 사용한 펜이 대단히 커서, 그 촉이 로마까지 멀리 뻗더니만, 그 촉이 거기서 웅크리고 있는 한 사자의 귀들을 뚫었고, 교황의 머리 위에 있는 삼중관(triple crown)이 흔들리더라 말이지. 모든 추기경들과 통치자들이 급히 달려오더니 그 관이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거야. 형제여 당신과 나도 협력하고팠지. 그래서 내가 내 팔을 펼쳤는데, 근데 이 순간에 내가 공중에 손을 뻗친 채 잠에서 깨버렸다네. 그런데 그 수도사가 펜을 더 사용치 않아서 무척이나 화가 났는데, 잠시 생각해 보니까, 그것이 꿈이었더라구.

반쯤 깨어 있다가, 다시 눈들을 감았지. 그 꿈이 되돌아 온 거야. 그 펜에 찔려 아직도 고통스러워하는 그 사자가 온 힘을 다하여 포효하니까, (보충설명/베드로전서 5:8=사도 베드로는 그 우는 사자 곧 사탄이 삼킬 자를 찾는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루터의 펜은 사탄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는 힘이었다.)  로마의 온 도시와 신성제국의 모든 국가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달려와서 보는 거야. 교황은 이 수도사를 저지하도록 그들에게 명을 내렸는데, 그 수도사가 내 나라 출신이니까 특별히 나보고 처리하라는 거였어. 나는 다시 깨어나 주님의 기도를 반복하고는, 그의 신성(Holiness)을 보존하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다시 나는 잠에 들었다네.

그 때 꾼 꿈은 이렇다네. 나는 로마의 모든 통치자들과 그들 중 우리가 로마로 달려가, 그 펜을 부수기 위하여 서로 분투하였다네. 그런데 우리가 그 펜을 부수려 하면 할 수록 그것이 더욱 빳빳해져, 마치 철에서 나는 소리 같이 들리는 것이었지.

끝내 우리는 포기하였지. 그리고 나서 내가 그 수도사에게 물었어(그 수도사가 때로는 로마에 있다가, 때로는 비텐베르크에 있어서 말이지). 이 펜은 어디서 구했길래, 어째서 이리도 강하냐구 말이야. 그가 대답하는데, '그 펜은 보헤미아의 백세된 한 늙은 얼간이의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나의 늙으신 학교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얻은 것입니다. 그 펜의 힘에 관하여는, 그것의 필세(筆勢)와 활력을 못쓰게 만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저도 그것 때문에 제 자신 무척 놀랬습니다.' 하는 것이야.

갑자기 나는 한 큰 소리를 들었어. 그 수도사의 길다란 그 펜에서 많은 다른 펜들이 솟아나오는 소리였지. 세 번째 꿈이었는데, 날이 이미 밝았더라구.'


요한 공작: '학장, 그대의 견해는 뭔가? 이럴 때 하나님에게 깨움을 받은 요셉 같은 아니 다니엘 같은 해몽가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학장: '공작, 그대는 일반적인 격언을 알고 있겠지. 어린 소녀들, 학자들, 그리고 위대한 군주들의 꿈들은 어떤 숨겨진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일세. 그렇지만, 이 꿈의 의미는 당분간 우리가 알 수 없을 걸세. 그 관련된 일들이 모두 풀어질 때까지 말이야. 그러니 하나님께 맡겨 두었다가, 그 분의 손 안에서 완전히 풀릴 때까지 말일세.'

요한 공작: '나도 자네와 같은 생각일세. 괜히 우리가 그 의미를 알아내려고 괴로워 할 필요는 없지. 하나님이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걸 주관하실 걸세.'

선거제후: '신실하신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도록 바라세. 하지만 나는 이 꿈을 결코 잊을 순 없을 걸세. 사실은 나는 그 꿈에 대해 한 가지 해석을 가지고 있지만, 내 자신이 간직하고 있다네. 시간이 지나면 내가 하나의 훌륭한 해몽가임이 밝혀질 걸세.'

슈바인니츠의 궁성 안에서, 1517년 10월 31일의 아침은 이렇게 지나갔다. 비텐베르크에서의 저녁의 그 사건들은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다. 그 선거제후가 자기의 꿈을 전해주기를 마치자 마자, 그 수도사는 그 선거인의 꿈을 해석하기 위하여 망치를 들고 나오고 있다.

1521년에 그 유명한 보름즈(Worms)의 공의회가 열렸다. (오른쪽이미지). 여기서 루터는 찰스 황제와 제국 모든 고관들 앞에서 자신의 항의문을 변론하였다. 여기서 그는 만일 그의 항의문을 취소할 의향이 있는지를 질문받으면, 다음과 같이 그는 자신의 시간에 제한받지 않는 대답을 하였다:

'내가 나의 믿음을 교황에게나 회의들에게 복종할 수 없음은, 그들이 종종 오류를 행하고 서로가 모순을 일으켜 온 것이 낮과 같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록된 성경의 증거로 확신을 가지는 한, 나는 철회할 수 도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여기에 내가 서 있지만...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오니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


루터가 보름즈에 체류하는 동안, 찰스 황제의 스페인 병사들이 작은 소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그들은 특별히 루터의 저서, 곧 '교회의 바빌론 사로잡힘'(The Babylonian Captivity of the Church)의 모든 사본들을 찾아내어 없애버리는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왼쪽이미지)

네 개의 세계 제국들 중 첫 번째 통치자인 황제 찰스 5세의 홀(笏)은 세계 역사상 대제국을 휩쓸었다. 그러나 루터의 검이 그의 것 보다 날카로웠다(보충설명/히브리서 4:12='하나님의 그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어, 어떤 양날 검 보다도 예리하며,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기까지 하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심이다'). 루터는 황제에게 하나님의 개혁을 대적한다면, 그가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알렸다. 결국 그는 비참하게 패배한 한 사람으로 죽었다.

루터는 제국의 금지령으로 추방되었다. 그의 친구들이 그의 안전을 염려한 나머지 그를 납치하여 '바르트부르크 성'(Wartburg Castle)으로 데려갔다.

1521년에 한 기사로 위장한 성도 마틴은 신약을 헬라원어로부터 독일어로 탁월한 번역을 시작하였다. 사탄이 그것을 보고는 분개하였다. 이곳이 그 마귀에게 잉크병을 던진 곳으로 알려진 유명한 곳이다. 그 잉크 표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1850년경의 성도 마틴(Saint Martin)의 서재. 오른편에 잉크 얼룩과 부서진 석고벽이 보인다.

◆성도 마틴(Saint Martin)의 근래 서재. 석고벽이 기념품 채취자들에 의해서 없어졌다.

마귀들이 루터에게 낮이나 밤이나 쉼(평안)을 주지 않아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문간에서 개가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으며, 하루는 루터가 앉아서 신약을 번역중이었다. 사자 모습을 한 마귀의 발현(發顯/나타남)이 자기의 주위를 걸어다니다가, 자기 위로 펄쩍 뛰어 오르려는 기색이었다. 그의 손에 잡힌 첫 번째 무기는 잉크스탠드였다. 루터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것을 그 마귀에게 세게 던졌다. 그리고는 그 마귀와 싸울 차비를 하였고, 벽토를 부숴버렸다.

1522년, 루터는 비텐베르크로 돌아왔다. 이곳이 성경에 대한 그의 비범한 번역을 완성한 곳이다. 틴데일이 여기 루터를 방문하였고, 그가 루터로부터 많이 필사하였다. 틴데일의 성경의 '마진 노트'(notes on the margin)는 루터의 번역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루터는 거의 교육받은 스페인인들이 독일어를 말하기 때문에, 스페인어 번역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킹제임스성경>은 영국의 개혁가 윌리암 틴데일(William Tyndale)의 작품 75%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데 제임스 왕은 틴테일이 '교회'(Church)를 '회중'(Congregation)이라 번역하였다 해서, 그 성경을 참조하지 못하도록 번역규율을 정해주었으나, 47명의 번역자들이 틴데일의 번역본을 참고하지 않았을리 만무하다!!

◆루터의 아내/전직 수녀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의 신부때 모습

◆쉬놀(Schnorr)에 의한 루터의 '하나님의 그 말씀' 선포이다.

루터는 한 수녀원의 우울하고 은닉된 생활로부터 이 아름다운 꽃을 구해주었고, 그 여자는 1525년에 루터의 아내가 되었고, 종교개혁의 사역에 있어서 하나의 실제 조력자였고, 네 자녀의 기쁨이 충만한 한 어머니가 되었다.

루터는 '말씀 선포자들중의 왕자'(Prince of Preachers)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문(呪文)에 걸린 자들'(spellbound)을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의 설교 만도 모두 100권이 넘었다. 루터야 말로 '바빌론 사로잡힘'(Babylonian Captivity) 이후, 유태인 성전을 재건한 또 하나의 느헤미야(Nehemiah)였다. 양자는 서로가 거의 복사물이다. 당신은 구약 성경에서 느헤미야를 읽을 수 있다. 그는 그의 이방인 아내를 떠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얼굴에다 유태인들의 한 구멍을 낸 셈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전혀 어느 누구에다 구멍을 내지 않았다.
다만 그는 말씀 선포와 펜을 가지고 확실히 교황권을 웅크려버렸다!!

루터의 귀향(본향=하나님의 그 왕국으로 돌아감)은 1546년 2월 18일이었다. 다음은 그가 마지막 남긴 말들이다:

    루터의 무덤 위에 서면, 당신은 아이스레벤에서의 그의 죽음의 이야기를 회상한다. 그는 1546년 1월 28일 그 곳에 도착했던 것이다. 비록 아주 건강해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2월 17일까지 지속된 회의들에 참석하였다. 그는 네 차례나 말씀을 선포하였고, 만수펠트(Mansfeld) 지역에 대한 교회 규례들을 수정하였다.

    ◆비텐베르크 소재 타운 홀과 스타트교회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루터가 숨을 거둔 집

    2월 17일, 그가 심히 아픈지라, 백작들이 그에게 집을 나서지 말도록 간청하였다. 같은 날 저녁 만찬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옴을 많이 전하였다. 누군가가 다음 세상에서 서로 알아볼 수 있겠는지를 물은 질문에, 그는 우리는 만나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아주 힘드네요.' 하고 그는 설명했다. '나의 고통이 전 보다 더 심하군요. 반 시간만 잘 수만 있다면, 내게 좋겠다고 생각드는데요.' 그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1시간 반 동안 온유한 잠을 잤다. 밤 11시경에 깨자 마자, 그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뭐라구요! 당신들이 아직 거기 있다구요? 가서들 쉬지 않구요?' 그들이 남아 있겠다는 그들의 대답을 듣자마자, 그는 열변으로 소리지르기 시작하였다: ' '당신의 손들에다 내 영을 맡깁니다. 오 진리의 주 하나님, 당신은 나를 구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그대들 모두는 우리 주님의 그 복음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복음의 다스림이 널리 퍼지도록 기도하시오. 이는 '트렌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보충설명/사도신경의 근원지)와 교황이 그것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나서 루터는 약 한 시간 잠들었다.

    그가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내가 심히 아프오. 나는 여기 아이스레벤, 곧 내가 태어난 곳에 남을 거요.' 하고 말했다. 그는 그 방을 걸었다. 그리고는 누웠다. 그리고 그 위에 많은 옷들과 쿠션들이 놓였으니, 이는 땀을 내기 위함이었는데, 그것은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하였다.


    '오 나의 아버지!' 그는 기도를 계속하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하나님, 당신이여; 모든 위로의 근원이신 당신이여, 나를 위하여 내가 믿는 그 분, 곧 당신의 지극히 사랑받는 아들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그 분을 선포해 왔고, 알려 왔습니다. 나는 그 분을 사랑해 왔고, 찬양해 왔습니다. 그리고 교황과 그 핍박자들도 말입니다. 나의 혼을 당신께 맡깁니다. 오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여, 이제 난 이 지상을 떠납니다. 이 생으로부터 옮겨집니다. 허나 나는 당신과 함께 영원히 머물겁니다. '당신의 손들에다 내 영을 맡깁니다. 오 진리의 주 하나님, 당신은 나를 구속하셨습니다.'

    그의 두 눈은 감겼고, 그는 기절하였다.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 요나스가 그에게 말하되, '존경하는 아버지, 당신이 가르치셨던 그 믿음 속에 굳건히 당신은 죽습니까?' 하였다. 그는 눈들을 열었고, 똑바로 고정시켜 보더니, '예'하고 대답하였다.

    곧 이어 그의 주변에 있던 자들이 그가 계속 창백해짐을 보았다. 그는 차가워졌다. 그의 호흡은 더욱 연약해져 갔다. 드디어 깊은 한 숨을 내쉬더니, 마틴 루터는 숨을 거두었다.


이곳이(위 이미지 하단) 그 위대한 부활의 아침이 이를 때까지 성 마틴 루터가 있었던 마지막 안식처였다.


[편집자주] 루터가 남긴 이 마지막 말들은 교황권에 대한 한 가지 경고였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일치 운동'(에큐메니칼) 이라는 명목하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크로아티아, 베트남, 이라크, 러시아, 발칸반도에서 저지른 로마의 범죄들 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으니...침묵이 그 범죄들에 대한 입증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교황의 교서를 불태우는 성도 마틴 루터(이미지제공/TheTimes)


그런데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성도 마틴 루터를 복권시키려 한다. 그 이유는 마틴 루터가 그리스도교를 분열시키려함이 아니요, 다만 변질된 행위를 범하던 교회를 제거하려는 의도였을 뿐이라고 지난 3월 6일 영국의 'The Times'가 보도하였다. <TimesOnline/자세히보기>


[제1부의 연속 에세이 보기]

[PS] Thanks in advance, Tim!!


<Created/20020711><Modifieded/20061024><20081023>
<Updated/20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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