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찬송가산책]

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I Know Whom I Have Believed ㅡ EL NATHAN)


작사자/ 다니엘 휘틀(Daniel W. Whittle)ㅡ작곡자/ 제임스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

 

작사자 /다니엘 휘틀
(1840-1901)

 

작곡자/ 제임스 맥그라나한
(1840-1907)


◆연주/ 정동윤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4> 주 언제 강림 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후렴>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 내 모든 형편 잘 아시는 주님 /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이 찬송은 <디모데후서 1:12>의 '내가 믿어온 그분을 아노라' 말씀을 기초로 한 것임!!

For the which cause I also suffer these things: nevertheless I am not ashamed: for I know whom I have believed, and am persuaded that he is able to keep that which I have committed unto him against that day. (2 Timothy 1:12, King James Version)

따라서 내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는 내가 믿어온 그분을 알고, 그날을 대비하여 내가 그분에게 위탁해드린 그것을 그분이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해 왔음이라. (디모데후서 1:12, 킹제임스화중광야역)


[영어 곡목 'EL NATHAN'이 작사자의 필명임이 밝혀지다!!]

'휘틀'(Whittle)이란 이름은 미국의 정치가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1840-1901)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휘틀은 1840년 11월 22일, 마세추세츠주 '치코피 폴스'(Chicopee Falls)에서 태어났다. 남북전쟁 중 21세에, 그는 일리노이스 제72 보병대에 입대하였으며, B 중대에 '소위'(Second Lieutenant)로 임관하였다. 그는 소령으로 진급하였고, 하워드(O. O. Howard) 장군의 참모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그의 여생은 '소령'(메이저) 휘틀(Major Whittle)로 알려졌다. 전쟁 중에, 그는 '셔먼'(Sherman) 장군과 함께 바다를 향하여 진군하였고, '빅스버그 전투'(Battle of Vicksburg)에서 그는 그의 오른팔을 잃었다.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복무를 마쳤다. 병원 안에서 부상으로부터 회복중일 때, 그는 읽을 거리를 찾다가 신약성경 한 권을 발견하였다. 비록 성경의 말씀들이 자신에게 공감을 주었을지라도, 그는 '크리스투'(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얼마 후, 한 병원 당번이 그를 깨우면서, 지금 죽어가는 한 환자가 자기에게 기도해줄 자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휘틀은 거절하였다. 그런데 그 당번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한 크리스투인줄 압니다. 나는 당신이 성경을 읽는 것을보았습니다.'(But I thought you were a Christian; I have seen you reading your Bible). 휘틀은 허락하였다. 그는 그 죽어가는 젊은이의 침대 곁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두 무릎을 꿇었고, 나는 그 젊은 병사의 손을 나의 손 안에 잡았다. 더듬거리는 몇 마디 말들로, 나는 나의 죄들을 고백하였고, 크리스투에게 나를 용서해주실 것을 빌었다. 그 자리에서 그분이 나를 용서해주심을 나는 믿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그 젊은 병사를 위헤 온 마음으로 기도해주었다. 그는 말이 없었고, 내가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그분의 약속들을 간구하는 동안, 그 병사는 나의 손을 꼬옥 잡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 그 소년은 이미 죽어 있었다. 한 평안의 표정이 그의 고통스러웠던 얼굴 위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이 그 병사를 통해서 나를 그 구원자에게로 인도하셨으며, 나를 이용하셔서 그 젊은 병사를 크리스투(그리스도)의 귀하신 피를 신뢰하여 용서를 빌도록 한 것임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그를 하늘 안에서 다시 만나리라 소망한다. (I dropped on my knees and held the boy's hand in mine. In a few broken words I confessed my sins and asked Christ to forgive me. I believed right there that He did forgive me. I then prayed earnestly for the boy. He became quiet and pressed my hand as I prayed and pleaded God's promises. When I arose from my knees, he was dead. A look of peace had come over his troubled face, and I cannot but believe that God who used him to bring me to the Savior, used me to lead him to trust Christ's precious blood and find pardon. I hope to meet him in heaven.)


남북전쟁이 끝난 후, 휘틀은 일리노이스주 시카고로 돌아왔고, 당대의 유명한 복음전도자 '드와잇 무디'(Dwight L. Moody)를 만났다. 무디와의 만남은 그의 생애에 대변화를 가져자 주었다. 무디의 소개로 '엘긴시계회사'(Elgin Watch Company)의 재무부장이 되었다. 그러나 거의 10년이 되자, 그는 복음현장에로 가담하였다. 휘틀은 무디 목사와 함께 많은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 찬송가가 설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여러 편의 찬송시를 지었다. 이 기간 중에 그는 작곡가 '필립 블리스'(Phillip Bliss)를 만났고, 블리스가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던 1876년까지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아까운 주님의 사역자 '필립 블리스' 부부가 1876년 오하이오주 '아쉬타부라'(Ashtabula) 철교 붕괴사고로 죽었다. '무디'는 훌륭한 찬양 동역자들을 잃은 것이다. <W.H. Daniels Ed., Moody: His Words, Work, And Workers, New York: Nelson & Phillips, 1877, p.490>.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필립 블리스'가 작곡한 <찬송가 470장> '나의 혼 평안하도다'(It Is Well With My Soul) ㅡ '나의 평생에 가는 길'이다. <Ira D. Sankey And Philip P. Bliss, Gospel Hymns No.2, Toronto: Copp, Clark & Co., 1877, p.78>. (화중광야소장)


'블리스'의 죽음 이후로, 작곡가 '제임스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이 '휘틀'의 찬양단에 가담하였고, 그와 함께 작업을 하였다. 그의 딸 '메이 휘틀 무디'(May Whittle Moody/1870-1963) 또한 그의 가사 일부를 작시하였다. 그 여자는 '무디'의 아들 윌리암 무디(William R. Moody)와 결혼하였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찾는 곳은 있는데, '메이 무디'의 사진을 입수할 수 없다. 그리하여 그의 시댁 '무디가족' 4대의 사진을 싣는다:

◆ '무디' 가족 4세대 ㅡ 왼쪽부터 시아버지 '드와잇 무디' - 남편 '윌리암 무디' - 시할머니 '베스티 홀튼 무디' - 딸 '아이린 무디'. <William R. Moody, The Life Of Dwight L. Moody, The Authorized Publishers, 1900, p.462>. (화중광야소장)


1885년 15세에 마세추세츠주 노스필드(Northfield) 소재 '드와잇 무디의 여학교'(Dwight Moody's Girl's School) 입학한 '메이'는 졸업 후, '오벌린대학'(Oberlin College/1888-1889)을 다녔다. 이 대학을 졸업한 그 여자는 런던에 있는 '왕립음악아카데미'(Royal Academy Of Music/1890-1891)를 다녔다. 천부적인 가수로서, 그 여자는 친정 아버지 '다니엘 휘틀'의 복음사역과 시아버지 '드와잇 무디'의 복음전도사역을 도왔다. 그리고 '찰스 알렉산더'와 'Northfield Hymnal No. 3'을 공동으로 편집하였다. <자세히보기>.

본 찬송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의 제목은 'I know whom I believed'로 원문대로 번역한다면 '나는 누구를 믿는지 안다'인데 우리 <찬송가 410장>에는 'I know whom I believed…'로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으로 후렴에 들어 있다.

그는 200편이 넘는 찬송시를 지었는데 곡은 친구들과 딸 '메이 휘틀'이 작곡하였다고 전한다. 그 친구중의 하나가 작곡자 '제임스 맥그라나한'인데 그의 이름이 <410장>의 오른쪽 위에 보인다. 그 위의 'EL Nathan'은 저자가 찬송가를 지을 때 쓴 세 가지 필명(El Nathan/Elias Nathan/W.W.D)중 하나이다.

그가 자신의 여생을 찬송가(복음송) 작사에 매진하게 된데는 한 계기가 있었는데, 그가 은행에서 밤 당직을 설때 밤 12시가 넘어 은행의 금고안에 들어갔었는데...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고요한 장소의 죽은 듯한 침묵 속에서 나는 나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그분이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나의 생명을을 그분에게 바치리라 결심하였다. (…went into the vault and in the dead silence of the quietest of places I gave my life to my Heavenly Father to use as He would.)

'휘틀'의 찬송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이 중에서 한국찬송가에는 그의 찬송시 네 개가 실려있다:

1. Banner of the Cross, The
2. Beloved, Now Are We
3. By Grace Are Ye Saved
4. Christ Liveth in Me
5. Church of God Is One, The
6. Come Believing!
7. Crowning Day, The
8. Glory to God the Father
9. He Is Not Here, But Is Risen!
10. Hope of the Coming of the Lord, The (휘틀의 딸 작시)
11. I Know Whom I Have Believed (찬송가 410장 ㅡ 아 하나님의 은혜로 (원곡: 나는 밝히 알도다)
12. I'll Stand by until the Morning (<시편 107:2>을 중심으로 작시)

Let the redeemed of the LORD say so, whom he hath redeemed from the hand of the enemy; (Psalm 107:2, King James Version)

주님으로부터 구속받은 자들은 그렇게 말할지니, 그분이 그 대적의 그 손으로부터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시편 107:2, 킹제임스화중광야역)

Kenneth W. Osbeck, 101 Hymn Stories, p.116.


13. I Will Pass Over You
14. Jesus Is Coming
15. Moment by Moment (휘틀의 딸 '메이 휘틀 무디' 작시/ 찬송가 465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원곡:함께 하시는 주)

◆편곡/ Tom Fettke (WorshipToday 프리제공)


16. Neither Do I Condemn Thee
17. Oh, Revive Us by Thy Word
18. Preach the Gospel
19. Redemption Ground
20. There Shall Be Showers of Blessing (찬송가 172장/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원곡:은혜의 단비)
21. They Tell Me the Story of Jesus Is Old (휘틀의 딸 '메이 휘틀 무디' 작시)
22. Thou Remainest
23. Why Not Now


'무디의 부흥회'에 함께 참여하면서 '다니엘 휘틀'은 찬양가수로서, 그리고 복음선포자로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당시 'Chicago Tribune'지는 '성공한 목회자'로서 그의 은사를 이렇게 보도하였다:

    Major Whittle has a clear, ringing voice, and, like all the evangelists of the school to which he belongs, he knows how to handle a Bible. It is a singular fact that with all our theological seminaries and learned treatises on homiletics, it should fall to the lot of laymen to teach the ministers of this generation how to 'preach the word.' The traditional sermon, with its introduction, critical examination, heads, sub-heads, illustrations, inferences, conclusions, exhortations, applications, 'finalies,' 'lastlies,' 'and suffer a few words more,' has become a theory of the past...There was a whole system of theology in Major Whittle's discourse yesterday afternoon, and he quoted Scripture enough to have served an old-fashioned theologian for half his natural life. As a specimen of his plainness and pungency take this extract from his sermon on the ' Responsibilities of Christians for each other's sins: <W.H. Daniels Ed., Moody: His Words, Work, And Workers, New York: Nelson & Phillips, 1877, p.497>.


[부록] 영어 곡목 'EL NATHAN'이 작사자 '다니엘 휘틀'의 필명임이 밝혀지다!!


한국찬송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영어곡목을 보면 'EL NATHAN'으로 되어 있다. 이 이름이 작사자 '다니엘 휘틀'(Daniel W. Whittle)의 필명(筆名)임이 밝혀졌다. <http://www.joy-bringer-ministries.org/hymns/EN.pdf>


<Created/20110310><Updated/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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