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찬송가산책] [복음의 빚진 자] ㅡ 내가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을 처음 접한 것은 신학대학 다닐 때 한국교회사 수업시간을 통해서였다. 그 책은 동아일보사에서 출판하였었는데 절판이 되다보니, 나는 할 수 없이 불법 복사하여 의료선교사 <홀> 가족의 조선 사랑을 감명 깊게 읽었었다. 나는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에는 머나먼 이국땅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져간 선교사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책이 절판되어 마음 한편이 허전했었는데, <좋은씨앗>에서 재출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나는 저자의 아버지 <윌리암 제임스 홀>이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눈물을 글썽거렸고, 저자의 여동생 이 4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저자의 어머니 <로제타 홀>이 3년 만에 남편과 딸을 빼앗아간 죽음의 땅으로 돌아와 생명의 땅으로 가꾸어갈 때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반문해 볼 때에 자신이 없었다. 선교사는 목회자(목사)보다 더 강한 소명이 필요한 모양이다. '카도쉬'(성도) 파울로(바울)은 자신은 '복음의 빚진 자'라고 고백하였다. 파울로(바울)은 빚을 갚기 위해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로마서 1:14-15). 나도 닥터 <홀>의 가족들을 보면서 복음의 빚진 자로서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복음을 전하는데 전력해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블로그/알라딘에서 인용하다!!>


<홀>(HALL) 선교사 가족과 <화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 CROSBY) 여사

정리/ 정재선 목회자 ㅡ 워딩/ 안연숙 사역자


[홀 이 가족들은 이 세상에서 함께 만나서 즐겁게 살았던 시간이 없었던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묘비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10, 한글개역)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전한다!!

◆[이미지/화중광야제공] <셔우드 홀 著, 김동열 譯, '닥터 홀의 조선회상', 동아일보사, 1984>

전통적으로 교회의 영적 성장은 교회의 위기 또는 어려움을 초래해왔는데, 이는 교회의 정체성과 본질을 상실한데서 오는 결과였다. 한국교회 또한 양적 성장의 결과 사회적 기대치에 이르지 못하고, 사회의 냉소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대안세력을 자처하는 이단 발흥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에 따라 믿음과 행함의 불일치에 주목하여 경건주의 운동을 통해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건주의운동을 드러내는 찬송으로 <찰스 웨슬레>(Charles Wesley)가 작곡한 찬송가 <천부여 의지 없어서>(구338장/신280장)가 대표적이다. 성경에 기반을 둔 구체적 가사와 음악적 소양이나 학습시간 없이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자인>(Auld Lang Syne)를 차용한 곡조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경건주의 운동은 말씀을 믿을 뿐 아니라 말씀을 행함을 지향한다. 따라서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면서 회개에 이르고, 이는 개인의 헌신으로 나타나며, 헌신의 방법으로 복음전파에 나서는 선교가 선택된 것이다. 이는 <사나 죽으나 자신은 예호슈아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의 정착지인 것이다. 이러한 헌신과 선교는 북미 대륙을 거쳐 구한말 조선에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결과로 나타났는데, 숱한 선교사들 가운데 일가족의 생명을 바친 선교 사례로서, <홀> 선교사 일가족의 헌신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족과 친분을 갖고 있던 찬송가 작사자 <화니 크로스비> 여사의 찬송 <주 예수 넓은 품에>를 통해서 헌신의 참된 신앙을 바라볼 수 있다.


[찬송으로 듣는 교회사 4 - 경건주의 운동과 선교] <기독교방송/2015.4.19 방송 일부발췌>

...가족의 가장은 '윌리암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이라고 하는 평양에서 의료선교를 하던 선교사님이었는데요. 아마 이 '홀' 가족이야기는 <한국의료선교>의 역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윌리암 제임스 홀'은 평양에서 환자들을 치료를 했고, 그 부인인 '로제타 홀'(Rosetta Hall)은 <한국특수교육>의 선구자라고 할 수도 있고, 그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과 며느리 '메리안 홀'(Marian Hall) 한국의 '결핵퇴치'를 위해서 크리스마스 씰도 만들고 노력했던 그런 선구자였고, 많은 영향력을 끼친 가족이죠.

[이미지/화중광야제작] 닥터 '윌리암 제임스 홀'은 다섯 형제중 맏이로 조선으로 떠날 당시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앞줄 왼쪽부터 동생 '클립포드'(10) 어머니 '마거리트 홀'(55) 누이동생 '릴리'(16) 아버지 '조지 홀'(64). 뒷줄 왼쪽부터 누이동생 '앨리스'(28) 본인(30), 그리고 동생 '존'(24). <셔우드 홀 지음, 김동렬 번역, '닥터 홀의 조선회상', 동아일보사, 1984>.

그런데 이 일가족 여섯 명이 이 무덤에 누워 있는데요. 제가 그곳에 가서 무덤을 보면서 이분들의 '생몰연도'를 보면서요. 그것은 뭐냐면은 '제임스 홀' 곧 '윌리암 홀'의 아들 '셔우드 홀'이 태어나고 나서, 1년 뒤에 아버지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 못하는 아들인 거죠. 그 동생 '윌리암 홀'의 딸이 있는데요. 딸은 '윌리암 홀'이 사망한 뒤 1년 후에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에 어머니는 배 안에 동생을 가졌고, 아버지가 사망하고 난 뒤에 태어난 것이죠. 그리고 이 무덤 묘역에 보면은 이 아들 '셔우드 홀'의 아들도 거기에 묻혀져 있는데요. 특별히 태어나자마자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인해서 사망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 또 남매, 또 '셔우드 홀' 며느리, 또 손자 여섯 사람이 묻혀져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몰년도'를 보면, 이 분들이...이 가족들은 이 세상에서 함께 만나서 즐겁게 살았던 시간이 없었던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그것도 자기들의 조국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이국 땅 <조선>의 강변에 이 여섯 사람이 묻혀 있거든요. 세상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자면, 지극히 불행하게 짝이 없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가? 서로 만나서 생활한 적도 없고, 어려움 속에 사망했고, 그리고 비록 지금 한 자리에 묻혀 있지만, 그걸 이렇게 보면서요, 오히려 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면...'아! 이게 크리스투교(기독교)의 본질이 아닌가? 세상 속에선 고통받고, 세상사람들의 눈으로는 불행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한국 땅 한 묘역에 함께 누워서 우리가 믿는 크리스투(그리스도)가 무엇이며, 크리스투인(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의 소망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소망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선교사님들의 기록을 보게되면은요, 그 분들이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진다는 자체가 큰 고통이고, 아픔이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로제타 홀'이 써놓은 그 글들을 다 모아서 '셔우드 홀' 선교사가 책을 만들게 되거든요. 그 책을 요렇게 보면서요. 제가 청취자 여러분께 읽어드리고 싶어 편지 내용을 몇 개 가져왔는데요. 이 부인 '로제타 홀' 선교사가 남편 '윌리암 홀' 선교사를 보내는 모습이 있어요. 남편 '윌리암 홀'이 <청일전쟁>에서 다친 그 많은 부상자들, 그 군인들을 치료하다 결국 과로로 겨우 집에 돌아온 다음에 몸져 눕게 되고, 이제 예호바(하나님) 품에 안기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이 '윌리암 홀'이 얼마 전 간날,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앞에 둔 채, 그 아내와 이제 작별을 고하려고 하는 그 모습을 '로제타 홀'이 그대로 기록을 해 놨는데요. 그 기록이 이렇습니다:

    '남편은 갓난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서 편하게 자는 듯한 그런 모습으로 죽음 앞에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1894년 11월 4일 석양이 물들 무렵, 내 남편은 예호슈아(예수)님의 품에 안겨 고요히 잠들었다. 영원한 안식날에 다시 깨어날 때까지 편하게 잠자기 위해서이다. 그가 떠나던 날 오후에 그의 눈은 계속 나에게 두 손을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예호바(하나님)의 품에 안긴 그의 두 눈을 감겼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눈이 다시는 나와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두 눈을 다시 뜨게하고,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그를 쳐다 보았다. 남편의 눈은 아직도 밝고, 너무나 맑아서 마치 살아있어서 나를 쳐다 보는 듯 하였다. 나는 내 방에 가서 우리 아이를 안고와서 예호바(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했다. 예호바(하나님)께서 나와 남편에게 베풀어 주신, 약속해 주신 바를 우리가 이 <조선>에서 이룰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아마 이 '로제타 홀'에게는...'게다가 태 안에 아이를 가지고 있었던 이 부인이 젊은 남편을 보냈을 때, 어땠을까?'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이 '로제타 홀'은요. 남편 뿐만 아니라,그의 딸도 또 예호바(하나님) 품에 보내게 됩니다. 이 '로제타 홀'이요. 남편이 죽고 너무나 힘든 나머지 아들을 데리고 미국을 가요.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생활하던 중에 남편이 순교하여 묻힌 <조선>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시 '평양'으로 돌아오지요. 그곳에서 계속 선교사역을 계속해 나가게 되는데요. 그 태어난 딸이요, '에디스 홀'이라고 해가지고, 사진을 보면 너무나 이쁘게 생긴 아이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남편을 잃은 엄마 '로제타 홀'에게도 굉장히 큰 위로를 주었다고 적혀져 있구요. 그런데 이 딸이 병에 걸려 예호바(하나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남편의 죽음을 보았던 이 '로제타 홀'이 다시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기록한 글이 있는데요:

    '5월 23일 새벽 3시 30분에 우리 아이는 다시 고통스러워 했다. '에디스'는 병이 난 후 처음으로 나에게 안아 달라고 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는 작은 얼굴을 보면서 아침에 나는 하얀 민들레 꽃을 꺾어서 우리 딸 '에디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이는 좋아서 인지, 오랫동안 꽃을 쥐고 있었다. 오후 3시가 되자, 아이의 손과 발이 찬 것을 느낀다. 얼굴과 몸은 너무 뜨거워서 섭씨 39.5도나 되었고, 열은 41도로 치솟았다. 아이의 숨이 가팠다. 나는 나의 딸 '에디스'를 팔에 안고 낮잠 잘때 해 주던 것처럼 천천히 흔들어 주었다. 아이는 훨씬 조용하게 숨을 쉬고 있다.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아이의 얼굴은 평화로왔고, 호흡의 간격도 길어졌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 '에디스'는 크게 뜬 눈으로 엄마를 보면서 이 작은 영혼은 엄마를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894년 11월 24일, 남편을 보내고 또 1898년 5월 23일에는 사랑하는 딸마져 보냈던 이 '로제타'의 이 이야기는요, 딸의 죽음으로 끝난게 아닙니다. 이 '로제타'는요, 이 딸을 딸이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던 그 아버지, 남편 '윌리암 홀'의 곁에 묻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로제타 홀'은 이 아이를 살아서 보지 못했던 아빠 옆에 묻기 위해서 서울로 운반해 갑니다. 그래가지고 그 길은 아빠 '윌리암 홀'이 선교를 위해서 자주 오가던 그 길이었데요. 그래서 약 일주일정도 걸려서 이 '윌리암 홀'이 묻혀있는 <양화진>에 도착하고, 그곳에 이 딸을 묻게 되지요. 그러면서 이 '로제타 홀'은 '예호슈아(예수)님의 재림 때에 온 가족이 다시 일어날 것이다'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필자는 이와같은 글을 정리하면서 느끼는 것인데...'어찌해서 우리 <대한민족>(大桓民族)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대치해야 하는가?'...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일까??...자칫 잘못 받아들여지면...예호바 앞에 영국적인 '위선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필자의 견해는 그렇지 않다!! <예호바의 그 바람>이 불어올 것인데...<그 날>이 머지 않음을 깨닫게 되기에...이렇게 감히 표출해 본 것이다!! 샬롬!! (2015.4.22/이른오후)


이 가족의 아픈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로제타 홀'의 아들 '셔우드 홀'은 아버지도 잃고 여동생도 잃지 않았습니까? 그가 결혼한 후에,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셨던 <조선>으로 돌아와서, <조선>의 결핵환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게 되는데요. '셔우드 홀'은 갓 태어난 아이를 태어나자 마자 잃게 됩니다. 그 어머니가 경험했던 딸을 잃었던 그것을 아들인 '셔우드 홀'도 경험하게 되지요. '셔우드 홀'도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기록을 하고 있냐면은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사망한 우리 아이를 목욕시키고 세례식때 이 아이에게 입히려고 준비해 두었던 예쁜 수가 놓인 옷을 입혔다. 우리 아들 '프랭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슬퍼하는 산모에게 보였을때도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마치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목수가 조그만 관을 짰고, 병원의 간호사들은 아름다운 <조선>의 명주천으로 아이를 감쌌다.

    관을 봉한 후에 만발하기 시작한 하얀 국화꽃을 그 위에 덮었다. 우리는 우리 아들 '프랭크'를 우리 아버지 '윌리암'과 내 누이 동생 '에디스 홀'이 묻혀있는 <양화진>에 묻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내 '메리안'은 여행을 할만큼 몸도 회복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슬퍼하는 그녀를 데리고 간다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여서 그녀를 집에 있도록 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셔우드 홀'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가 묻힌 그곳, 여동생이 묻힌 그곳, 그곳에서 자기 아들을 묻기 위해서 간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한번도 만나거나 접촉했던 적이 없는 가족들이지요. 그런데 이 가족들이 <양화진>이라고 하는 <조선>의 낯선 강변가에 묻혀 있는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도대체 이런 죽음조차도 어쩌지 못한 헌신들을 가능하게 했던 힘이 무엇인가? 이 <경건주의> 운동에 본질, 그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적인 힘이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이 '로제타 홀'이 그랬던 것처럼요. '로제타 홀'은 남편을 잃고 의료선교를 위해 헌신했거든요. 딸을 잃고 <조선>의 어린 '시각장애인'을 위해 헌신했거든요. '셔우드 홀'도요. 아들을 잃구요. 오히려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초긍정(超肯定)입니다.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요? 내 아들 '프랭크'를 잃고 나니까, 많은 <조선> 사람들이 그 당시에 쉽게 아이를 잃었는데요. <조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 사람들도 나를 이해하는 듯 보인다. 아픔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준 그 사람들, 복음을 받아들인 <조선> 사람들과 그런 아픔을 통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홀' 선교사의 가족 일곱명이요. 지금도 한강 변 <양화진>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 무덤가에 가서 이 묘비에 써 있는 성경 말씀을 보면서요. 이 가족의 헌신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 묘비에는 그 분들이 붙들었던 말씀들이 쓰여져 있는데, 이 '홀' 선교사님 가족의 무덤에는 <로마서 14:8> 즉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하는 말씀이 거기에 써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교사들에 대한 여러가지 부정적인 평가도 있지만은 이러한 순수한 헌신의 마음으로 엘로힘(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고,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하고, 그리고 그 헌신의 마음을 가지고 세계 오지로 가고 또 <조선>으로 오고, <조선>에서 단기 체류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온전한 헌신으로 사역했던 이런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 아직도 남아 있는데요. 이 선교사들의 헌신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경건주의> 운동에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행자]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분들의 엘로힘(하나님)의 대한 사랑 이웃들에 사랑 아닐까 싶습니다. 말씀대로 살기를 원했고,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그 실천이 바로 헌신으로, 그리고 바로 선교로 드러나서 이 땅에 와서 온 가족이 함께 죽음을 불사하고 일을 감당해 주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부를 찬송은 어떤 것입니까?

<주 예수 넓은 품에>라는 찬송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이 찬송은 '화니 크로스비'라는 여성에 의해서 작시된 찬송인데요. 그 분은 시각장애인이셨습니다. 이 '화니 크로스비'는 특별히 '홀' 선교사 부부, '윌리암 홀'과 '로제타 홀'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던 '찬송시'를 썼던 여성이었습니다. '크로스비'도 이 찬송을 가장 좋아했고, 그리고 이 찬송을 <조선>에 있었던 '로제타 홀'도 자신이 교육했던 '시각장애인'인 학생들에게 자주 가르쳤다고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조선>에 있었던 어린 '시각장애인' 여아들도 시각장애인 여성이 지었다하는 이 찬송을요. 굉장히 관심있게 배웠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은 '주 예수 크신 품에 나 안겨서 그 크신 사랑안에 나 편히 쉬겠네. 영광의 들을 넘고 저 푸른바다 넘어 천사의 노래소리 내 귀에 들리네.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그 크신 사랑안에 나 편히 쉬겠네.'

평온함이 없었던 불확실한 세상에서 크리스투(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평강과 위로를 이 찬송을 통해서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홀' 선교사 부부가요, 뉴욕에 있었던 시각장애인 학교에 졸업생이고 교사였던 이 '화니 크로스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홀' 선교사 부부가 한국선교사로 떠난다고 하니까 이 '화니 크로스비'는 이들을 위해서 'Who will go?', '누가 갈 것인가?' 이런 찬송을 작시해서 주기도 하고, 또 이 '홀' 선교사 부부는 한국에 오니까, 한국에서 '화니 크로스비' 여사가 썼던 찬송, 한국말로 번역된게 '인애하신 구세주여', 찬송 사본을 이 '화니 크로스비'에게도 보내게 되지요.

이 '화니 크로스비'는요, 특별히 어려서 의료사고로 인해서 눈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게되는데요. 그 '헬렌 켈러'처럼 이 '화니 크로스비' 여사도 그 어머니가 굉장히 많은 사랑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눈을 잃고 세상을 볼 수 없었지만, 어머니가 이 딸에게요, 세상의 색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의 색상에 대해가지고, 하나 하나, 아주 섬세하고 세밀하게 알려 줬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해를 뜰때에는 어떤 아름다운 색깔이 있고, 해가 질 때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고, 새는 어떻고, 꽃은 어떻고, 하늘은 어떻고, 우리가 어떻게 보면은 우리들이 보는 세상은 정해진 색만을 보지 않습니까? 이 '화니 크로스비' 여사에게 설명이 되어지는 어머니의 설명은 아마 '화니 크로스비'로 하여금 우리는 앞을 보지만 제한된 세계를 보고, '화니 크로스비'는 앞을 못보지만 그야말로 제한없는 세상의 색을 보게해 준 것 같습니다.

이 '화니 크로스비'여사의 찬송을 보게 되면은요. 얼마나 깊은 신앙적인 깊이와 세상에 대한 묘사가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이 '화니 크로스비'는요, 우리 또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죄가 무엇인 것을 알려주는 것을 통해서 구원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죄많은 우리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미 그것을 알고 있거든요.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적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우리 죄인들에게 크리스투(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것을 우리가 말을 해 줘야 한다는 이 '화니 크로스비' 여사의 찬송에 보면은요, 죄인의 정죄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 소망 담겨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그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화니 크로스비'가 작시했던 찬송들을 예를 들어서 <인애하신 구세주여>,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의 영원하신 기업>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찬송들이지 않습니까?

[진행자] 우리 찬송의 대표곡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이 '화니 크로스비'가 좋아했던 찬송은요. 죄에대한 정죄가 아닌 '의와 소망'이었던 것처럼요, 찬송들에서 보면은요, 핵심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들을 떨리게 하는 어머니, 가정, 그리고 천국, 이런것들이 이 '화니 크로스비'의 찬송시의 중요한 주제들이었지요. 그래서 우리들의 기도들이 응답되지 않은 것 처럼 보이지만, 우리들의 삶이 힘들어 보이지만, 하지만 엘로힘(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신다. 이러한 그분의 체험을 찬송시에 이렇게 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 예수 넓은 품에>라는 찬송은요, '화니 크로스비' 여사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찬송이라 이야기 할 정도로 그녀의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데, 이 찬송을 만들기 전에 어떤 곡을 작곡자로부터 받고난 뒤에 30분만에 이 찬송을 작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찬송은요, 나라와 민족과 심지어는 카톨릭교회와 개신교와 관련없이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있고, 특별히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수많은 장례식장에서 불려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화니 크로스비'의 마지막 일화로 제 이야기를 마치고 찬송을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는데요. '화니 크로스비' 여사가 평생을 시각장애인으로 살고 나이가 들고 이제 엘로힘(하나님) 품에 안기게 될 즈음이 되었을때, 한 목회자(목사)님이 그렇게 물어봤데요. 지금이라도 엘로힘(하나님)품에 안기기 전에 눈을 떠서 세상을 보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이 '화니 크로스비' 여사가요, '난 그런 걸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서 눈을 떠서 가장 처음 본 그 분이 예호슈아 크리스투(예수 그리스도) 이기를 소망한다.'라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하늘나라의 영광을 성취하고, 누구보다도 똑똑하게 바라보았던 '화니 크로스비'가 이 찬송을 짓고, 이 찬송을 통해서 한국에서 헌신했던 이 '홀' 선교사 가족이 또 그렇게 살았고, 이런 찬송에 담겨있는 신앙고백 이야기들이 '경건주의 운동'과 '선교'의 이야기 속에 그렇게 담겨있는 것을 보고, 선교사들이 어디를 가서 어떻게 살던지 간에 이 찬송시처럼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살았던 그들의 간증과 고백>을 우리가 '교회역사' 속에서 보게 됩니다. 찬송가 476장 <주 예수 넓은 품에> 찬송 함께 하시죠.

◆[BGM/10:19] <찬송가 476장/주 예수 넓은 품에>(07:14-10:19) ㅡ <찬송으로 듣는 교회사 4 - 경건주의 운동과 선교> (진행/장승철 - 게스트/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


오늘 '경건주의 운동'에 대해서 들어보고 찬송 두 곡도 들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말씀대로 살기위해 노력했던 그 분들이 세상을 섬기는 세상에 헌신하는 모습으로 선교사로 자원하고, 그 선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 한국 크리스투교(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015.4.22/안연숙 워딩하다>

[이상은 2015.4.19 방송한 기독교방송(CBS) '맛있는 교회사'에서 <찬송으로 듣는 교회사 4 - 경건주의 운동과 선교> (진행/장승철 - 게스트/임희국 교수)을 캡쳐한 것이다!! 본문을 이해하기 쉽도록 일부 수정/보정하였음을 밝힌다!!]


[별첨] 찬송가의 작시자인 <화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1820-1915)는 생후 6주만에 앞을 보지 못하는 불행을 당하였으나, 주옥같은 8천여 편에 달하는 찬송을 작시하였으며 95세까지 행복한 삶을 누린 여성이다.

화니는 생후 6주 갓난아기 때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어른들의 실수로 육신의 눈이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스투 예슈아는 그녀에게 '영의 눈'을 뜨게 하셔서 우리 모두가 슬프고 외로울 때, 병들고 지쳤을 때에 고통당하고 상한 심령을 예슈아 의지하고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소리 높여 부를 수 있는 찬송을 만들게 하셨던 것이다.

화니에게는 그녀가 일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지식인 예호바를 알도록 자상하게 보살펴 주시며 이끌어 주신 참으로 좋으신 할머니가 계셨다. 글을 읽을 수 없는 그녀에게 영적 진리를 마음 가득히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예호바를 아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임을 할머니는 그녀에게 가르쳤다.


그녀는 열두 살이 되어서야 뉴욕에 있는 맹인학교에 입학하여 정식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열린 정식적인 교육의 길은 그녀에게 전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녀에게서 많은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시에 대한 놀라운 감각과 창작력은 그녀가 갈 길을 예비하신 예슈아를 찬양하도록 그녀의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세상에 자랑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그녀에게 예호바는 역사하셔서 수 많은 심령을 예슈아에게로 인도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게 하셨던 것이다.

◆[이미지/화중광야제작] '화니 크로스비'는 '이라 D. 생키'(Ira D. Shankey)와 돈독한 우정을 간직하였다. 둘은 당대에 저명한 찬송가 작사자로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Samuel Trevena Jackson, Fanny Crosby's Story Of Ninety-Four Years, Chicago: Fleming H. Revell Company, 1915, p.82>. '생키'의 찬송 작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찬송가(구찬송가)로는 <191, 342, 349, 391, 397, 412, 478, 535> 등 모두 <8장>이 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349)와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478)는 우리가 널리 부르고 있는 찬송가이다.


<화니 제인 크로스비>가 작시한 찬송은 우리 찬송가(구찬송가/통합찬송가)에 <43, 46, 144, 163, 187, 204, 219, 231, 275, 295, 300, 321, 323, 337, 424, 434, 446, 476, 480, 492, 496, 501, 508장> 등 무려 <23장>이나 실려서 은혜롭게 불려지고 있다.

[필독관련자료] <찬송가 작사자 ㅡ 화니 제인 크로스비> <자세히보기>.

 
 
<Created/20150419> <Updated/20150423>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