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동기>님의 본 글은 <제2부>에 이어서 <제3부>로 이어진다. '천문학을 통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대로 한반도에 나타난 일식기록(日飾記錄)이 신라후대에 나타난 787년 이후의 기록에 관한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에서의 삼국은 어디인가..그 강역과 위치는 어디인가??...바로 중국 동북남쪽으로 기록되어 있고, 몽고 지방에도 나온다. 중국에 가면 많은 역사 유물이 남아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는 삼국이 없었다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샬롬!! <2015.12.13/이른새벽>

<일식현상>(日蝕現像) 그 역사와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제3부)

글/ 김동기

본글은 <박창범> 교수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p.35-56/김영사)를 정독함으로써, 지금까지 우리 민초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던 과거의 천문현상을 통하여, 우리 <대한민족>의 진실된 '민족적영역'을 되새겨 보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비록 필자는 한 가닥의 실오라기 같이 미세한 존재이지만, 본 '차원이 다른 선교' <화중광야>(花中曠野)의 막중한 사역에 한층 소망을 싣고서 본글을 전하게 된 것이다!! 샬롬!! <2015.12.12>

삼국시대 천문기록에 숨은 비밀

삼국시대 연구는 원래 <박창범> 교수의 계획에는 없었다. 이 시대의 역사는 이미 확고하게 알려졌다고 생각했으므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박창범> 교수가 갑자기 삼국시대 연구에 뛰어든 까닭은 순전히 <일식기록>(日飾記錄)에 대한 미련때문이었다. 일식기록으로 나라의 위치를 찾아내는 방법을 생각해 두고도 정작 단군조선 연구에서는 이를 적용하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던 1993년 여름, 단군조선에 관한 연구를 막 끝낸 뒤였다. <박창범> 교수는 자신의 착상을 그대로 묵혀두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록 분명한 역사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착상을 한번 검증해 불 겸, 삼국시대의 일식기록을 대상으로 일식 관측지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삼국사기를 제대로 읽어 본 것은 솔직히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1000년의 역사를 한 권 안에 실어 놓은 책이란 사실은 귀가 닳도록 들어서 읽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그 내용을 직접 읽어 본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일식기록을 추려 내고, 신라-고구려-백제별로 분류해 각 나라가 기록한 일식들을 가장 잘 볼수 있는 관측지를 각각 찾아보았다. 그러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위치가 나왔다. 애초에 삼국(三國)의 위치는 익히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 배워 왔던 대로 한반도상에 나타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확인 결과 전연 다른 위치가 튀어나왔다. 신라와 백제의 경우, 그 위치들이 한반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중국대륙 동부에 최적 관측지가 나타난 것이다. ㅡ '이런!! 예측이 이렇게 빗나갈 줄이야!!뭔가 숨어 있겠군!!' ㅡ 단지 <박창범> 교수의 검증방법을 확인해 보기 위한 테스트에 불과했던 이 계산에서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박창범> 교수는 곧바로 일식기록에 대한 자신의 위치 추정방법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해서, 삼국시대보다도 역사가 정확히 알려진 고려시대(高麗時代)를 검증해 보기로 하였다. 고려의 최적 일식 관측지 마저도 <그 역사적 사실>이 디르게 나온다면, 그때는 <박> 교수 자신의 추적방법의 신뢰성부터 의심해 봐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려의 경우엔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어 한ㆍ당ㆍ양나라와 같은 중국의 여러 나라들이 기록한 일식의 최적 관측지들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각국의 강역과 맞아떨어졌다. 삼국의 위치도 또는 삼국사기 일식기록에 대한 의심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오히려 <박> 교수에게 흥미를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분이 확인한 삼국사기의 일식관측지(日飾觀測地) 결과를 당장 어떻게 받았들여야 할지 난감하였다. 확고부동한 사실로 상식화 되어 있는 한국사의 내용과 상층하는 이 결과를, 그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일단 더 이상의 판단을 멈추고, 시간을 두고 깊게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이해 못할 문제라도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의미를 띠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잠깐만...!!] 단재 신채호 선생도 대한민족(大桓民族)의 민족정사의 핵은 대륙사의 3위 성조 시대의 <조화주, 교화주, 치화주>의 3신 신앙인 소도(수두교)신앙 곧 신교 속에 그 정수가 들어있어, 이의 핵심을 알지 못하면 대한민족사의 정수를 알 수 없다 한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경로>(兪景老/1917-1997) 선생님과 만난 자리에서 이 결과를 의논하게 되었다. 유 선생님은 한국천문학을 연구하시다가, 말년에 천문학사 연구에 정진하신 원로 천문학자이셨다.

◆[이미지] <유경로-박창범> 두 교수의 공동편찬 <한국의 천문도>(1995)이다.


<박창범>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난 유 선생님은 논문 몇 편을 그분에게 건네주셨다. 일본학자 <반도충부>(飯島忠夫/1926 )와 제등국치(薺藤國治/1985 )의 논문 등이었다. 일본학계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우리 <삼국사기>의 일식을 비롯한 여러 천문현상 기록들을 꾸준히 연구해서 많은 결과를 내놓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후 이 논문들과 서양의 과학사 논문, 국내의 과학사 책들을 보면서, 현재 학계에서는 <삼국사기>의 천문기록, 그중에서도 6세기 이전의 기록은 모두 중국 기록을 베겼거나 지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서양학자들은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을 완전히 무시한 채 <고려사>의 기록부터 비로소 인정하는 추세이다.국 내 역사학계에서도 3세기경 이전의 기록에 대해는 의심하는 분위기이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에 수록된 고구려의 일식기록에 대해 한양대 <김용운> 교수는 서기 2세기, 3세기부터 실측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한국외대 <박성래> 교수는 신라와 백제의 경우, 빨라도 서기 200년대까지는 독자적인 천문관측을 못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에 대한 이같은 견해는 일본 천문학자들의 연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삼국사기>의 천문현상 기록, 특히 일본 천문학자들의 연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삼국시대 초기 부분이 조작된 것이라는 일본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이 시기 전체의 역사기록을 불신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삼국사기>가 지닌 사서(史書)로서의 신빙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하나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고, 일본 학자들이 왜 그러한 결론을 내렸는가에 대해선 그들의 관련 논문 등을 읽어보면, 언뜻 납득할 만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거의 모든 학자들이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그같은 이유 때문인 것이란다.

한편, <박창범> 교수 또한 그들의 논문을 접한 뒤, 그분이 확인한 삼국의 최적 관측지가 왜 중국 대륙으로 나타났는지 그 까닭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본학자들의 말대로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이 중국 기록을 베낀 것이라면, 당연히 그 최적 관측지도 중국 대륙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박>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서 계산된 삼국의 <일식관측지>(日飾觀測地)들이 지역적으로 서로 매우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중국의 일식기록을 무작정 베꼈다면, 관측지가 모두 동일하게 나와야 하지 않는가?? 또 중국 것을 베껴다고 알려진 <삼국사기>의 기록이 오히려 그 표절 원문인 중국 사서의 일식기록보다도 더 정확하다는 사실에도 의구심이 들었다. 이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어떤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연구처럼, 기록들을 개별적으로 검토하는 방법이 아니라, 삼국이 남긴 일식의 성질을 나라마다 집단적으로 서로 비교해 살펴보면, 뭔가 다른 실마리를 찿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가을 <박> 교수는 다시금 새 출발선에 섰다. 밀쳐두었던 <삼국사기>에서 모든 천문현상 기록들을 발췌해서 펼쳐놓고, 이것들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삼국사기의 신빙성 문제

<단군조선시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연구에서도 <박창범> 교수는 알아낼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였다. 연구대상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수록된 모든 천문현상 기록이었다. 여기서 <박> 교수가 풀고싶은 의문점 몇 가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삼국사기>의 신빙성 문제

    삼국의 강역 문제

    과학과 문화의 시작과 수준 문제

<삼국사기>의 신빙성 문제는 앞서 말한 대로 이책 의 초기 내용이 표절 또는 창작이라고 국내외에 알려진 지금까지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사실상, <삼국사기>는 삼국이 직접 남긴 1차 사서가 아니라 고려시대에 남아있던 여러 국내외 사서(史書)를 근거로 하여 고대기록을 취사, 편집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이 당대의 원래 기록처럼 아주 자연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다. 취사, 편집과정에서 사료부족, 사로의 선택적인 취입ㆍ착오ㆍ윤색 등의 문제가 생길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경우, 그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시대를 구획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한 가지 예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왕의 이름이 주변국, 즉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 처음으로 나오는 시점을 잡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B.C.37년>에 건국되었다는 고구려는 중국문헌에 근거하여서 태조 때인 <A.D.53년>부터 세워졌고, <B.C.18년>에 세워졌다는 백제는 일본서기에 이름이 등장하는 근초고왕 때인 <A.D.346>년부터 세워졌으며, 또한 <B.C.57>년에 가장 먼저 건국되었다는 신라의 경우에는 중국문헌에 의거하여서 내물마립간 때인 <A.B.356년>부터 인정 받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삼국의 초기 역사가 짧게는 90년에서 길게는 410년까지 잘려 나가게 된다는 말이다. 그외에도 '말갈'과 같은 후대의 용어가 사용되는 시기, '오행'과 같이 후대의 중국사상이나 고전이 삽입되는 시기, 국경이 불분명한 고대국가로서 주변국과의 접촉이 너무 빈번하다고 생각되는 시기 등이 초기역사를 의심하게 만드는 근거를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논의 중에 가장 호소력을 가진 근거가 바로 <천문현상기록들>의 조작여부와 그 시기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계산적으로 진위를 따져 본 결과 <삼국사기>의 천문현상기록들은 위조되었거나 중국측으로 베낀 것이라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불신하게 만드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으리라는 것이 <박창범> 교수의 생각이다.

역사적 불신의 한 발달이 천문학적 연구에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박> 교수는 천문학자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실토한다. 일본의 여러 천문학자들이 우리 <삼국사기>의 천문기록을 연구하여 세계에 발표하는 동안, 정작 국내에서는 우리 고대 천문기록에 대한 과학적 계산과 철저한 분석을 수행하여 이 문제를 다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일면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천문기록을 발췌한 사료집마저도 나와 있지 않으니, 자국의 옛 천문기록을 총정리한 사료집을 이미 오래전에 편찬한 중국과 일본을 생각 볼 때 부끄러움마저 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2000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천문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측하여 기록을 남겨 온 천문의 나라이다. 고대의 천문기록을 역사학계가 사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의미있는 형태로 바꾸어 놓는 일은 천문학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박> 교수는 좀 미묘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가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서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삼국시대의 천문현상기록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일식 67개, 행성의 움직임 40개, 혜성의 출현 65개, 유성과 운석의 떨어짐 42개, 오로라의 출현 12개 등 240개가 넘는 많은 천문현상 기록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사서(史書)에는 동시에 관측된 기록들이 있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록도 있다.

<박창범> 교수는 먼저 <1000-2000년전>에 일어났다는 이런 기록들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시간 척도로 보면, <2000>년이란 아주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긴 시간이다. 그런데 그 아득한 옛날에 살았던 무지한 사람들이 제대로 천체의 운동과 변화를 읽어낼 수 있었을까?? 아마 <박창범> 교수가 저술하신 바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그때의 <박> 교수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릇된 선입관이었다. 천체 역학적 계산으로 확인해 본 결과, 놀랍게도 이 시기의 천체 관측기록들은 대부분 사실이었다. 또한 해와 달과 행성과 별자리들에 관련된 다양한 기록을 실제로 일어난 현상과 전체적으로 맞추어 보았을 때, 천체 현상들이 일어난 연대와 날짜, 그리고 상황까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로써 기존의 서지학적ㆍ금석학적 연구를 통해 밝혀 놓은 <삼국시대의 연대기>가 상당히 정확하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따라서 <박> 교수는 과학자로서 선입관을 기졌던 점을 부꾸럽게 생각하고, 옛 선인들의 문화에 대한 편견없는 시각을 지니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삼국의 천문 관측,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그리하여 제일 먼저 풀고자 한 문제는 <삼국사기>의 천문현상기록(天文現像記錄)이 독자적 관측에 의한 결과인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 방법으로 먼저 떠오른 것은 <삼국사기>에만 있고, 다른 다른 나라의 사서(史書)에는 없는 천문현상기록을 가려낸 다응, 독자적인 그 기록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아닌지른 검증해 보면 쉽게 판가름이 나리라는 생각이었다. 즉 어느 사서(史書)에만 있는 독자적인 기록들이 사실로 존재했었던 일이라면, 그 사서(史書)는 분명 독자적인 관찰과 기록을 남긴 국가의 역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반면에, 만약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읺았거나 그 나라에서 볼 수 없던 현상들이라면, 그 사서는 기록들을 통해 조작된 것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일 것이었다.

<삼국사기>에는 있지만 중국의 사서(史書)에는 없으면서, 계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중 주목할 만한 것은 행성과 달의 접근 기사였다. 예를 들면, <삼국사기>에는 달이 금성(金星)에 접근하였다는 <태백범월>(太白犯月) 기록이 5개가 있는데, 모두 중국 사서에는 없는 독자적인 기록이다. 그중 <신라본기>(내해 10년)와 <백제본기>(초고 40년)에 동시에 나오는 서기 205년 7월의 <태백범월> 기록을 알아보기로 한다.

달과 금성의 운동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계산하면, 이 기록에 대응하는 실제 현상을 이 시기에 찿을 수 있다. 계산상 서기 205년 9월 4일 오후 4시경 달은 금성에 2.1도 까지 가까워졌다가, 금성을 쉽게 볼 수 있게 되는 일몰 때는 2.5도 정도의 거리에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때 금성은 평소의 밝기인 <약-3.9등급>보다 <0.5등급> 밝은 <-4.4등급>이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서운관지>에는 천상을 관측하는 규정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책에 기술된 천문현상의 정의에 따르면, '범'(犯)이란 달과 별이 서로 빛을 미칠 정도로 다가감을 뜻한다. 백제와 신라가 서기 205년에 금성이 밝아진데다가 달 가까이에 접근한 현상을 보고, 금성이 달을 범(犯) 하였다고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백제와 신라가 동시에 관측했으며, 당시 후한에서는 관측하지 못한 이 천체 현상은 실제로 일어났던 것임이 증명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천문학 역사에도 중요한 사실이다. 백제와 신라가 적어도 서기 205년부터는 행성과 달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르 관측하고 있었으며, 그 관측 결과를 기록하여 남기거나 구전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기에 말이다.

앞에서 삼국시대에서 역사를 신뢰할 수 있는 때가 <삼국사기>에 나오는 왕의 이름이 주변국 사서에 등장하는 시점으로 정해지기도 한다고 말하였다.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 신라와 백제 왕의 이름이 나오는 해는 <356년>과 <346년>이므로, 서기 205년의 독자 관측 사실 하나만으로 삼국의 역사를 인정하게 되는 시점이 약150년이나 앞서게 된다는 것이다.

서기 205년의 기록 외에도 달과 행성이 접근한 기록들은 상당수가 사실이었다. 한편, 일본의 천문학자들은 행성과 달의 접근현상에 대한 <삼국사기>의 관측기록이 대부분이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왔다. 이들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결과가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힉자들의 천제 역학적 계산도 옛 기록을 확인하기에 문제가 없을 만큼 정확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과정에서 숨은 오류가 빌견된다. 그들은 달이 행성에 접근했던 때의 시각만을 계산한 뒤, 그 시점이 해가 떠 있을 때라면 모두 잘못된 기록으로 판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달과 밝은 행성은 낮에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낮에 접근한 경우를 모두 틀린 기록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행성과 달의 상대거리는 느리게 변하기 때문에 최근접이 낮에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일출(해뜨기) 전이나 일몰(해지기) 전이나 일몰 후에 달과 행성은 여전히 가까이 있게 된다. 일본 학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최근접 시점만을 근거로 기록의 진위 여부를 판단한데서 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서기 205년의 '태백범월' 기록도 그러한 경우였다. 만약 이 기록들이 <삼국사기>가 일본 사서의 기록이었다면 그들은 이러한 실수를 저질렀을까??

금성이 낮에 나타난 기록은 사실인가.

또 하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太白晝見)'는 기록이었다. 이 '태백주현' 기록은 <삼국사기>에 8개가 있는데, 그중 7개가 독자 기록이다. 그리고 8개 기록 중 7개가 시기적으로 기상 상태가 좋고 하늘이 짙푸른 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있었다.

금성이 낮에 보였다는 기록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지 금성의 등급을 계산해 알아보았다. 지구에서 보았을 때, 금성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크기가 변하고, 달처럼 위상도 달라진다. 평소에는 밝기가 <-3.9등급> 정도이다가 태양에서 가장 먼 각도로 멀어지는 동방최대이각이나 서방최대이각 근처에 <약-4.7등급>까지 밝다. <삼국사기>에 '태백주현' 기록이 있는 해에 금성의 등급을 계산해 보았다. 놀랍게도 4개가 금성이 가장 밝아진 시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백제 구수왕 11년 10월의 '태백주현' 기록은 계산상 서기 224년 겨울에 있었던 실제 상황과 그대로 맞는다. 즉 당시 금성은 <-4.67등급>으로 가장 밝아져 가는 시기여서 기록과 어김없이 일치한다. 그런데 이 현상은 중국측에도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백제 아신왕 3년(서기 394년) 7월, 고구려 양원왕 11년(서기 555년) 11월의 기록은 독자 기록이면서 계산상으로 역시 금성이 밝아진 시기와 일치해 독자적 관측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이 '태백주현' 기록만 보아도 7세기에 이르서야 삼국이 천문 관측을 독자적으로 수행했을 것이라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이 잘뭇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독자적 관측의 진위 여부와 함께 이때의 '태백주현' 관측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또 하나 있다. 낮에 금성을 관찰하는 '태백주현'의 관측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낮이 밤처럼 되어서 누구나 한눈에 알 수 있는 일식현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환한 낮에 금성을 관측하자면 오랜 기간에 걸쳐 금성의 위치 변화를 추적해 두어야 한다. 그 축적된 지식에 따라, 당일 낮에 금성이 하늘의 어디쯤에 자리할 지 대략적으로 위치를 알고, 그 위치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만 금성을 찾아낼 수 있다. 이 같은 '태백주현' 관측이 가능하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시의 천문학 수준이 어는 정도였는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 시기에 고도의 관측기술을 지닌 천문학자들이 있었으며, 장기간 관측 자료가 쌓여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삼국사기 내용에는 백제 온조왕 25년(서기 7년)에 천문관측을 담당했던 일자(日者)가 등장하고, 일관부(日官部)라는 부서가 존재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태백주현' 관측은 이러한 기록과 잘 어울리는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일식기록에 숨은 열쇠

천문현상 관측기록의 독자성을 검중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천문기록 중에 일식(日蝕)과 같이 지구상의 특정 위치에서만 관측이 가능한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식이 일어날 때 달의 그림자가 지구상의 모든 곳에 드리워 지지 않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만 식(蝕)의 진행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컴퓨터로 해와 달의 운동을 계산하면, 과거 수천 년 전에 일어난 일식도 그대로 재연 할 수 있다. 사서(史書)에 수록된 일식 기록들의 사실 여부를 검증한 다음, 나라별로 일식기록을 따로 묶는다. 그 다음 한 나라가 관측한 여러 개의 일식 모두를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지역을 찾는다.

실제로 나라에서 관측한 일식기록이라면, 일식관측이 가능한 지역들이 한곳에 모이는 정도를 보아 그 기록들이 실측자료인지 가늠 할 수 있고, 그렇게 한곳으로 모이는 지역으로 그 나라의 강역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착상은 원래 <단군조선>의 위치를 알아 내기 위해 떠올린 것이었고, <삼국시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였다.

기록을 집단적으로 분석하면서 먼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실현율(實現率)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주변국들이 이 시기에 남긴 일식기록들 중 천체 역학적 계산을 통해서 실제로 그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기록의 비율, 즉 실현율이 가장 높은 사서가 바로 <삼국사기>라는 점이다.

<삼국사기>에는 일식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총66개>가 있는데, 그중 53개가 사실로 확인되어 80%의 높은 실현율을 보였다. 특히 서기 200년까지 초기 기록은 그 실현율이 89%에 이른다. 그런데 <삼국사기>가 그 천문기록을 베꼈다던 중국 사서의 일식기록은 오히려 이보다 실현율이 떨어진다.

중국 일식기록의 실현율은 한나라 때 78%로 가장 높고, 그 이후부터 당나라 말까지 약 63-75%의 수준을 보인다. 일본에 경우는 이 보다도 훨씬 낮다. 일식이 처음으로 기록된 사서는 서기 628년부터 950년대까지의 일본의 초기 기록은 실현율이 35% 불과하다. 셋 중 두개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식기록인 것이다.

일본 사서에서 서기 950년 이전에 기록된 일식들 중 <약 3분 2>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들인데, 그나마 실제로 일어났던 나머지 일식들 마저도 지구상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지나가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직접 관측한 기록들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당대나 후대에 조작된 기록임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와 같이 일식이 집중되는 차이에서도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은 중국의 기록을 베꼈다는 기존의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삼국사기>의 일식 관측지는 한반도가 아니다

실제로 삼국이 각기 일식을 관측한 지점은 어디였을까?? 이것을 알 수 있다면, 삼국이 정말 독자적으로 천문관측을 했는지, 또 관측을 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가려낼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박창범> 교수는 먼저 자신의 일식 관측지 추정방법의 신뢰도를 확인하기 위해 고려와 한ㆍ당 양나라가 남긴 일식 기록들에 대해 최적 관측지들을 추적하고 이를 각 나라의 강역과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삼국의 최적 일식 관측지를 찾아 보았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수록된 일식 모두를 가장 잘 관측할 수 있는 지구상 위치는 발해만 유역이다. 그리고 서기 2-3세기에 나오는 고구려의 일식을 기장 잘 볼수 있는 위치는 만주와 몽고에 이르는, 백제보다 북위도의 지역이었다. 신라의 일식기록은 서기 201년 이전과 787년 이후로 양분되어 있다. 그 중 서기 201년 이전의 <상대신라>(上代新羅)의 일식 최적 관측지는 중국의 양자강 유역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서기 787년 이후에 나오는 <하대신라>(下代新羅)에선 한반도 남부가 최적 관측지로 밝혀졌다. 즉 <삼국사기>에는 신라초기에는 남쪽으로 지나가는 일식이 주로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에는 북쪽으로 지나가는 일식이, 그리고 백제에는 그 사이로 지나가는 일식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지]<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김영사, 2014, p.56>.


<제3부>를 마치면서...

지금까지 필자는 <박창범> 교수님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p.35-56)를 탐독하고 <제3부>로 나누어 전하였다. 여기에 중요한 부분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일식현상>(日蝕現像)과 그리고 <태백범월>(太白犯月) 기록이 수록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중국과 일본은 <삼국사기>는 베낀 것이라고 주장해 온 것을...실제로 나타난 것인지를 <박창범> 교수님이 직접 찾아낸다. 이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더구나 이것은 국가적으로 놀라운 발견이다. 한 개인 교수가 찾아낸 것이다. 이를테면, 무슨 이유로 해서 일본과 중국은 <삼국사기>를 불신하고 베낀 것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 의혹이 무엇일까?? 그 이유인 즉 <삼국사기> 속에 자기 나라의 역사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그런 것이다. 역사의 기록은 국가적으로 중대하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단군으로 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사실적 기록과, 동북 아시아와 북아메리칸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사서에 기록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세종지리지>와 조<선왕조실록>이다. 그 많은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천문학을 통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대로 한반도에 나타난 <일식기록>(日飾記錄)은 '후대신라'에 나타난 787년 이후의 기록에 관한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에서의 삼국(三國)은 어디인가?? 그 강역과 위치는 어디인가?? 바로 중국 동북남쪽으로 기록되어 있고, 몽고지방에도 나온다. 중국에 가면 이것을 입증해 주는 많은 역사적 유물이 남아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는 삼국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역사적 유물을 입증해주는 <그 일식기록의 그 강역의 삼국>은 바로 중국 대륙전역에 나타난다. 그리고 중국은 당나라 말까지가 75%이고, 일본은 35%가 일식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반면, 삼국에 나오는 우리의 일식 관측기록은 89%에 이른다. <삼국사기>에는 사실적 기록과 높은 실현율이다. 그리고 그 강역은 중국 대륙지방으로 나탄난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반도사관(半島史觀)으로 묻혀버리면 안될 것이다. <정재선 목회자님>이 누누이 강조해 오듯이, 저 신세계질서(뉴월드오더)의 '하수들'(Gansters)에 의해서 조작되어버린 <거짓역사>에 묻히면 안될 것이다. 천손(天孫)은 하늘에 백성이다. 이것은 하늘로 부터 전해준 <신비적 깨달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요즈음은 <국정역사교과서>를 정부에서 직접 '컨트롤'한다고들 한다. 이러한 <역사적진실>을 통해서 밝히 입증된 기본역사 조차도 정립해놓지도 않고 무엇부터 한다는 것인가?? 아울러 정부는 진정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정부는 틀림없이 정신적인 외상을 입었다!!

따라서 현재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역사는 심하게 외곡(歪曲)된 것이고, 반드시 바로 잡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진실에서 벗어나 이(異)민족이 보고 싶은대로 외곡(歪曲)시켜 후손에게 전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제3부>를 마친다. 다음 <제4부>에서는 '왜(倭)가 실제 일본인(日本人)인가??'라는 기록들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필자는 호기심이 많아 <대한국역사>(大桓國歷史)를 공부할 수록 의문투성이다. 2015년 올해 초부터 정사(正史)에 나온 <단군>과 <삼국>까지는 스스로 공부하였다. 다음은 일본(日本)의 진실을 알기 전에 <왜>(倭)를 통해 <제4부>에서 전할 것이다!! 아낌없는 기도를 당부드린다!! 샬롬!!
<2015.12.12>.


[화중광야 3대 역사관 주제풀이]
1. 성경 속에 담겨있는 <12별자리> 풀이 ㅡ 정재선
2.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와 별자리 ㅡ 김동기
3. <가림다한글>(加臨土文字) 속에 담겨진 삼태극과 별자리 ㅡ 안연숙


 

<Created/20151213> <Updated/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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