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 眞理把持] 당신은 '네필림'입니까?


'네필림(NEPHILIM)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를 읽고

글/ 안연숙

시간은 흐릅니다.
물도 흐릅니다.
그리고 음악도 흐릅니다.
뭔가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에덴정원으로부터 발원된 네 개의 큰 강들이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흐르지 않으면 썩는 법...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계속 올라오기 때문이죠.

생명의 근원이시기에...
소리가 흐르지 않는 그 정막함 속에
나는 주님이 계심을 느낍니다.
나를 만드신 그 분의 손길은...
나보다 더 힘센 '네필림'보다 나를 더 높이십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님이 나를 생각하시나이까? <2008. 11. 3.>


['네필림(NEPHILIM)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를 읽고]

나는 우선 이 글을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게 신장이 크고 몸짓이 거대해서 사람들이 우러러 볼 수 밖에 없었고, 지도자로서 사람들을 지배하던 그 '네필림'(NEPHILIM)을 그 보다도 약하고 작은 사람들을 통해서 없애셨다. 지금은 그들을 볼 수 없지 않은가?(스카랴 14:21). 물론 다른 형태로 우리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들은 아끼시고, 변질되고 자신이 창조하지 않으신 '네필림'은 이 땅에서 제거하여 깨끗하게 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창세기 6:5-7). 그 성경구절을 오용하여 캐나다 인디언 원주민들을 죽인 사람들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네필림을 잘못 가르침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아 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끔하는 역사이다. 하나님은 공중 안에 나는 새의 목숨도 아끼시는 분이시다. 그 새의 목숨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더욱이 그 분이 자신의 창조물인 사람들을 아끼심이다.

<시편 8편>이 자연히 떠오르지 않는가?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시는지 말이다. 그 대적(네필림) 면전 앞에서 밥상을 차려주시고 나를 높이시는 분이시다. (시편 23편 참조):

    8:4사람(아담의 손자 에노스=창세기4:26=숙명적인 인간을 총칭)이 무엇이기에 주님은 그를 마음에 두시며, 사람(아담=남자와 여자의 총칭=아다마 즉 흙으로 지어진 존재로서 흙으로 돌아가는 에노스 이전에는 슬프고 쓸쓸한 상태임=창세기2:7; 3:19)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이 그를 돌보십니까?(은혜를 가지고/우리의 영들을 보존하시려고). (시편 8:4, 킹제임스 정재선역)

'네필림'에 대한 구체적인 풀이를 읽고나서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편>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시편 기록자들의 눈물어린 그 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무서운 자들이었을까?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때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다스리던 자들이었다.

그들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들에게 삶은 쉽지만은 않은 것이였으리라. 우리는 지금이 종말이고 무서운 종교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얽어매어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네필림'에 대한 풀이를 읽고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런 어려움과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는 그들에 대항하여 순교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종교와 경제와 정치가 있다. 이 무서운 '네필림'들이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섬기는 것에 대하여 극도로 강한 질투를 하며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예전에는 눈으로 보이는 무서운 '괴인'이었으나, 지금은 그 모습을 달리하여 곧 변질하고 변형하여,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즉 믿음으로 부터 떠나게 만든다.

하나님의 그 말씀
으로부터 멀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일으키고, 전쟁들과 대형 사고들로 인하여, 그리고 그러한 뉴스를 자주 접함으로 인해 항상 솜방망이 처럼 충격을 늘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 인해 사람의 목숨에 대한 경외심을 감소시키고,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도 그런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내적' 공포 속으로 몰아부친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들을 그렇게 괴롭히고 싫어하던 '네필림'이 이제는 양의 털을 쓴 이리같이 달콤하게 다가와서는 저항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을 힘없이 주저앉히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거대한 집단들과 싸워서 이길 수 없을 것만 같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먹고 살기도 힘들것 같다' 라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너무 힘없이 내려 앉는 경제를 보며, 힘없는 서민들은 망연자실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밖에 없는 것이다. 소수의 권력자들의 '틀'을 일반 시민들은 전혀 관여할 수도 없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기다릴 뿐이다. 왜 이러야 하는가? 저 소수 권력자들이 과연 나와 무슨 상관인대...내가 이렇게 저들의 조종에 끌려다녀야 하는가? 나도 엄연히 창조자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자녀인데...'오, 주님, 이제는 더 이상 놔두면 안되겠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간섭하셔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창세기 6:4>에서 '네필림'(Nephilim), 즉 '떨어져나간 자들'(fallen ones)(히브리원어 '나팔'(H5307/naphal/to fall/떨어지다)을 의미한다.'라고 '정재선목회자님은 ['네필림'(NEPHILIM)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의 글에서 정의를 내리신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떨어져 나감이라고 하셨다. 나는 문뜩 영어단어 'abide'(거주하다)가 생각이 났다.

이 단어가 나오는 곳은 <시편 1편>이지 않은가? 그렇다. 이 '네필림'에 대한 정의를 알지 아니하고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이 다시 읽은 <시편 1편>에서 내게 다가 왔다.

<시편 1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주함(Abiding in Jesus Christ)을 통한 '그 행복'(blessed)을 말한 것이 아니었던가! 자신의 자리...하나님이 창조하신 곧 그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그 말씀 안에 거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자 '네필림'이 되는 것이다.

<시편 1편>은 그 말씀 안에 거주하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빛과 어둠' 같이 극명히 대조를 이루고 있다:

    1:1불법한 자들의 간계 안에 계속 행하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 안에 서지 아니하며,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지(거주하지=시9:11) 아니하는 자는 더 없이 행복하다. (welfare=개인의 행복과 건강과 번영=시2:12=시편 전편에 26회 인용. 대조어는 '화'(禍=woe=전도서10:16. 누가복음 6:20, 24)

    1:2그러나 그의 즐거움이 주님의 율법 안에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율법 안에 그가 낮으로 밤으로 묵상한다.

    1:3그리고 그가 개울가에 심겨진 한 나무 같아서 때가 이르면 그의 열매를 맺을 것이요, 또한 그의 잎사귀는 마르지 아니함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무엇을 하든지 번성할 것이다.

    1:4불법한 자들은 그렇지 아니하니, 오직 바람에 몰리는 쭉정이 같다.

    1:5그러므로 불법한 자들은 심판 때에 일어서지 못할 것이요(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함=계20:5,6), 죄인들은 의인들의 회중 안에 들지 못할 것이다.

    1:6따라서 주님이 의인들의 길은 아시니(애정이나 호의를 가지고 주목함=시31:7; 37:18), 오직 불법한 자들의 길은 헛것에 이를 것이다(시2:12). (시편 1편, 킹제임스 정재선역)

이 '네필림' 곧 그 말씀으로부터 떠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항상 그 말씀을 읽고 준행하기에 분투해야 할 것이다.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상고함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그 아들 곧 '구원받은 자이다' 하며, 자만하는 것이, 자칭 의인이라 칭함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말씀 안에 거주하기 위해 '주님의 율법 안에 낮으로 밤으로 묵상한다' 하는 <시편 1편>의 그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눈 앞에 닥쳐온 많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몰입해서 좌절을 하고 있다. 경제의 몰락과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로 인하여 조바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그 말씀 안에서 네필림이었던 저 '골리앗'과 싸워 이긴 다윗처럼 믿음의 물맷돌을 준비해두고 있어야 할 것이다:

    17:47And all this assembly shall know that the LORD saveth not with sword and spear: for the battle is the LORD'S, and he will give you into our hands. (1 Samuel 17:47, King James Version)

    17:47그리고 이 모든 회중이 주님이 검과 창으로 구원하지 않으심을 알게 되리니, 이는 이 싸움이 주님의 것이므로, 그 분이 너희를 우리의 손들 안에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사무엘상 17:47, 킹제임스 정재선역)

다윗의 물맷돌이 위대할 수 있었고, 그 물맷돌이 네필림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대한 거구를 쓰러뜨릴 수 있었음은, 하나님이 그 네필림을 창조하지 않으셨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형상인 사람을 통하여 없애시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직 소년이었던 '다윗'이 네필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이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기 때문이며, 구원은 그 분으로 부터 말미암기 때문이다. 함께 그 믿음의 현장을 '하나님의 그 말씀' 안에서 들여다 보며,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안에서 떠나지 말자. 저 몰려오고 있는 '네필림'의 발 아래 굴복하지 않으기 위해서...그리고 결국은 '네필림'이 되지 않기 위해서...

    2:3Let no man deceive you by any means: for that day shall not come, except there come a falling away first, and that man of sin be revealed, the son of perdition; (2Thessalonians 2:3/ KJV)

    2:3아무도 어떤 모양이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하나의 떨어져나감 없이는, 죄의 그 사람 곧 멸망의 그 아들이 밝히 드러나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할 것임이라. (데살로니카후서 2:3, 킹제임스 정재선역)

'하나의 떨어져나감'(a falling away)이 없이는...'네필림'이 만연하지 않고서는(창세기6:1-4)...영적으로 마지막 '복음선교시대'(엔 크리스토스/In Christ)인 지금에 이르러 사도들이 전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으로부터 떠나버리는(사탄인 옛뱀의 유혹과 미혹을 받아/창세기3:6) '네필림' 곧 '배교'(背敎/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가르침과 배움을 '이단'이라 몰아세우는 바리새인 같은 종교 교인들...성경에 비추어보면 자기들이 '이단'인데도...)가 범람할 것임을 마지막으로 경고하시는 주님의 메시지(요한계시록 22:18-19)임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음 판 속에...샬롬.

<
2008.11.4/새벽>

 
 
 

<Created/20081104> <Updated/20081104><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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