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 유리바다 이야기1]

삶의 방향전환 때에는 '하나님의 세미한 그 음성'을 들으세요!!

글/ 디안

음악은 소리입니다. 소리는 공기에 기대어 소리를 냅니다. 공기중에 떠다니며 각자의 모양을 만들어 냅니다. 바람의 움직임과도 같아서 마치 연주자는 그 바람을 타고 어떤 형상을 만들어냅니다. 자신도 모르는 그 어떤 곳을 향하여 빨려들듯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 피아노 터치 하나 하나에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을 담으려 했었습니다.

입으로 나오는 하나님의 그 말씀을 증언하는 일이나, 글로 쓰는 일도 마찬가지로 바람을 타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을 타는 것...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마치 배가 바람을 타서 가야 할 곳에 가듯이 그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고 어디로 가는 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바람을 타야합니다.

미혹의 순풍과 엄청난 광풍 뒤에 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그 성령님의 바람을 타야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유혹과 미혹과 엄청난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그 바람이 지나간 후 우리에게 임하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그 성령님의 바람을 기대하며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르빠우오-바울의 배'는 침몰직전의 위기까지 매일같이 미혹의 순풍과 파괴의 광풍에 휘말렸습니다. 정신없이 그렇게 휘말리나 우리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그 성령님의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힘을 내어 함께 가자꾸나/ 너 혼자 가는 길이 아니잖니?/ 내가 이미 앞서 달려간 길이잖니?/ 나를 따라오려므나!'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 말입니다.

우리는 호흡을 합니다. 바람. 공기와 우리는 아무 거리 없이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바람-공기를 타고 우리의 삶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그 소리를 공명되게하여 올려보내서 그 공기ㅡ바람을 타게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 바람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순풍과 광풍의 바람이 우리 인생을 늘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성령님의 그 바람ㅡ하나님의 세미한 그 음성을 기다리기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그 왕국'을 향한 항해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그 왕국'으로 가야할까요? 우리가 선택할 곳이 딱 두곳 밖에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하나님의 그 왕국'이 아니면 영원한 형벌받는 지옥일까요? 하나님과 마귀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결과는 위의 두곳으로 나뉩니다. 예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께 속하던지, 마귀와 연합되어 마귀와 함께 영원한 형벌을 받던지요.

죄로 가득한 '옛 자아'를 벗어버림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자아가 죽을 때의 고통은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마치 우리가 진짜 죽는 것처럼 엄청난 고통이 따릅니다. 사람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그 말씀을 통해서 그 과정은 이루어 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옛 자아'(옛 성품/Old Nature)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옛 자아'에 눌려 우리의 신앙은 저 지옥 끝까지 내려가는듯,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우울함에서 우리는 잠잠히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그 세미한 음성'을 말이지요. 그리고 따뜻하게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품'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연합됨-예수님으로 옷입는 것은 우리 '옛 자아'를 벗어버림입니다. 미혹의 순풍과 우리 삶을 부숴버리는 광풍은, 그런 우리의 '옛 자아'를 벗기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 후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올 때 - '하나님의 세미한 그 음성'에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예수님과 함께 먼저 달려가신 '하나님의 그 왕국'에로의 경주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그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게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

우리 삶의 방향 전환은 그래서 그렇게 중요한 가 봅니다. 가시를 두시는 곳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은 길임을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 두 눈의 시력을 잃으면서까지 사도 바울(사울)은 예수님의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누리던 그 모든 권력과 지식과 지혜와 자랑들...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I die daily/ 고린도전서 15:31)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귀중한 예수님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 이외의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그 왕국'으로의 삶을 택한 사람들은 그 이외의 것을 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누구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의 이해를 바라는 길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의 선택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길'을 선택할 때 많은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아기가 태어날 때의 고통...산모 뿐만 아니라 아기가 이제 좁은 그 자궁을 벗어나, 세상으로 새 삶으로 나가려는 그 몸부림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New Creation/ 고린도후서 5:17)가 됨은 새로운 삶으로의 방향전환이기에, 그렇게 우리에게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그럴 때 성령님의 바람을 타세요. '하나님의 세미한 그 음성'을...하나님의 기록된 '그 말씀'을ㅡ예수님 안에서 시작되어(창세기 1:1) 예수님으로 마치는(요한계시록 22:21), 그 하나님의 기록된 '그 말씀'을 의지하여, 그 성령님의 바람을 타고 우리가 어딘지 모르는 '하나님의 그 왕국'으로 빨려 올라가듯!

그 곳으로 함께 '바울의 배-르빠우오'를 타고 흘러갑니다.

<2006.3.17/ 광풍이 지나간 스산한 자리에서 쓰다>

[관련자료] [화중광야 - 바울의 로마선교] <보기>

<Created/20060317> <Updated/200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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