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오늘을 생각한다 9]

내 혼아, 어떤 일이 일어나도 고요하라.
Be Still Whatever May Happen To You, My Soul.


내 혼아,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잠잠하라.
Be Silent Whatever May Happen To You, My Soul.

이는 너의 하나님 그 아버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이라.

(For That The Father Your God Is With You.)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동안교회 시온합창단(2004)
(녹음상태가 처음엔 작게 나오다가 40초 후에 소리가 정상으로 나옵니다.)


글/ Beth-dian

하나님 아버지 우리나라를 지켜주시옵소서. 제가 간구하지 않아도 언제나 그러하신 줄 믿습니다. 사람은 어차피 한번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니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이 믿음을 왜곡 되어 믿지 않게 하소서.

성경에는 많은 변질된 사람들이 나옵니다. 항상 악한 자와 선한 자로 구별되어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악한 자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한 자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의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무지 구제 불능인 사람도 하나님께로, 예수님께로 나오면 '쓰임받는 죄인들'이 되었습니다.

내가 잘 나서, 내가 훌륭해서 자신 홀로 독불장군인 사람이 잘 되었다는 내용은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습니다. 모두들 어떤 상황과 어떤 처지라도 하나님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 믿음 위에 서서 살아갔던 사람들을 쓰셨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었으면 죄를 지은대로 그 모습 그 대로 하나님께 나아갔고...물론 '그 죄'(The Sin)에 대한 벌은 받지만, 진정한 벌...하나님과의 헤어짐(분리됨)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우리의 자유로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지 못하였으나, 그래서 더 그리스도교(개신교)가 욕먹고 있으나, 하나님! 하나님과 헤어짐의 벌만은 받지 않게 우리 한민족을 지켜주시옵소서. 북에 있는 우리 민족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당신을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나이다. 너무 쉽게 당신을 믿을 수 있어서 이렇게 나태함 속에 믿음 생활하고 있나이까? 성경은 점점 왜곡되어가고, 신학은 점점 인학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사실 북한보다 남한이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어렵나이다.

우리는 솔로몬의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자와 같이 여러 가지 유사복음을 받아들이는 성문이 아니라, 오로지 당신의 말씀만을 지키는 성벽이 되어서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아버지 당신과 헤어지는(분리되는) 그런 천벌을 받지 않게 도우소서.

성경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 사상을 가르침에 있어서 많은 이방종교의 풍습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성문'이 된 것이죠. 특히 천주교(카톨릭교)는 어떤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의 풍습을 따라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이 변모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종교를 인정하여서 함께 융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천주교는 유교의 제사를 인정하여서 드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 천주교를 답습하는 그리스도교가 있기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쓰고 있는 많은 천주교식의 믿음들, 고백들...특히 사도신경을 주문처럼 외우는 것은 천주교와 무엇이 그렇게 다를까 싶을 뿐입니다.

우리가 대인관계 할 때, '그렇게 늘 똑같은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께 나아갈 때, 늘 주문처럼 외우는 신앙고백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실까 싶습니다.

우리는 성경에도 없는 그런 종교적인 '문양'들과 '풍습'들에 너무 깊이 심취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교육받은 것들의 영향이 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보다 어떤 때 보면, 종교적인 문양들과 절기들이 우위가 됨을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도 없는 그런 절기들을 지키느라 공부도 뒷전일 때가 많았었습니다. 그것이 성경과는 상관없는 것들임을 알고 난 후에는 속으로 통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다른 사람들의 기본적인 믿음까지 넘어지게 할 까봐, 그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의 목회자님들이 강력하게 지키길 권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것에 대한 성스러운 믿음이 너무나도 다들 깊어서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나쁘게'(성경적 견지에서 바르게) 말한다면 쌍심지를 켜고 반박할 것입니다.

완전한 성경번역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사본은 존재합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된 사본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본조차도 엄청나게 고치고들 있다 합니다. 그렇게 고치고들 있는 사본의 뿌리는 '소수(小數) 사본' - 알렉산드리아계열(카톨릭계열)입니다.

또 다른 사본이 있는데 이것이 믿는 자들에게 받아들여진 사본(Textus Receptus) - '다수(多數) 사본 - 안티옥계열' 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이 다수사본계열의 성경도 변질시키다 못해, 자신들의 계열의 소수사본(알렉산드리아)의 성경의 사본조차 변질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우리는 성경을 읽지 않는 다는 것이죠. 그리고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불경스럽다고 여기는 우리나라 그리스도교인들입니다. 그만큼 지금 성경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이겠지요. 저 또한 그랬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변질되었다면 무엇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알려고 해야 할텐데, 그러지 않고 그대로 있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에 가슴이 터지는 것입니다.

제 소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원문 그대로 잘 베껴쓴 사본이(Textus Receptus), 우리나라 말로 그리고 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읽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의도가 첨가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그 뜻'(The Will of God)을 받들어 번역되어진 성경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과 나중되신 것처럼' 일관되이 그 분만 드러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인류 구속계획이 정확히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가 성경이 어렵다고 함부로 우리의 편한 말로 풀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가 싫은 것이겠지요.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 수록 우리의 생각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필요 없이 휴대폰 저장장치에 다 기억이 되어있고, 컴퓨터에 다 있고 하니 말입니다. 점점 껍데기같이 그저 향락에 젖어가는 것 같습니다.

아! 잠이 많이 옵니다. 이 새벽에 이 나라를 위해 고민하고, 또한 점점 변질되어가는 하나님의 그 말씀, 성경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들이 제 마음을 어지럽게 합니다.

믿는 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만 잘 믿고 구원받으면 된다고...그런데 우리의 믿음의 기초인 하나님의 그 말씀 - 예수그리스도께서 변질되어 우리에게 읽혀진다 하는데 그것은 괜찮다고 합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 '유전자 변형 식물'(GM Food) 보다 더 큰 바이러스인 이 성경변질을 우리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의 진리를 왜곡시킨 예수님의 모습 주입이 SBS 공중파를 타고서 거침없이 휘날리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을 때, 과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느꼈을까요? 과연 아래와 같은 모습을 원하셨을까요? 아니면 그리스도인 각자 각자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변질되지 않은 성경 말씀'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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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앞에서 다큐 '신의길, 인간의 길' 방영에 항의하는 그리스도인들(2007.7.13/한기총 제공)

우리 몸은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 분리되는 두번째 죽음에로 떨어지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And I said unto him, Sir, thou knowest. And he said to me, These are they which came out of great tribulation, and have washed their robes, and made them white in the blood of the Lamb.' (Revelation 7:14/ KJV)

그리고 내가 그 분을 향하여 말씀드리기를, '주님, 주님은 아시나이다.' 하였다. 그러자 그 분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들은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이요, 자기들의 옷을 씻어 놓았고, 그것들을 그 어린양의 그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7:14/ KJV화중광야역)

우리가 이 땅 안에서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찾고자 하는 것은 '큰 환란을 찾아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학문과 가치와 다른 하나님의 그 말씀을 따라가고자 함에, 자신의 명예를 세우고자 함에 해가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고난이라는 것이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겠지요.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외부의 공격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생명이 걸린 이 광우병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정작 우리의 영적 생명줄인 '그 말씀의 변질'(The Corruption of the Word)에 대한 피끓는 호소를 우리는 왜 하지 않고 있는 걸까요? 해마다 변질된 성경이 우리나라에도 수입되는데...우리는 너무나도 하나님의 그 말씀에 대해 무관심 한가 봅니다. 샬롬...

<2008. 7. 1 / 하나님의 그 말씀에 대한 무관심한 나를 반성하며>

<Updated/200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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