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제임스성경 번역상의 약점] 킹제임스성경은 '완전한 번역'이 아니라 '최선의 번역'이다. 아울러 '킹제임스성경 유일론'(KJV Onlyism)을 경계하라!!

글/ 정재선 목회자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man cometh unto the Father, but by me.

내가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
나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그 아버지에게로 오지 못하니라.

<요한복음 14:6, KJV화중광야역>

제자 도마가 '주님, 우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나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아나이까?'(요한복음 14:5)라는 부정적인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자기는 그 아버지에게로 가고 있으며, 그들이 따라오는 '그 길'은 바로 자기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대답하신다. 그 이유는 자기가 바로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요, 자기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그 아버지에게로 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은 사람을 위하여 하늘로 향한 '그 길'을 열어 놓으신다. 자신의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방황하는 그 어둠과 죄악으로부터 자기를 따라오는 자들을 구원하신다. 자신의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오는 자들의 생명을 성별시켜 주시고, 그들로 다가오는 '그 생명'을 예비토록 하신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오는 자들에게 하나의 본보기가 되신 자신의 유일하고 완전한 목숨을 드렸기에, 그 분은 '그 길'의 첫 발을 디디셨고, 그들은 그 분의 발자국들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아버지에게로 통한 '그 길'이심 뿐만 아니라, 그 분은 그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한분'(One)이시요, 이차적인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고(至高)의 가장 완전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그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한분'(One)이시다. 이것이 지금까지 그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던 하나의 주제였다. 비록 3년이란 '긴 시간'을 그 제자들과 함께 계셨어도, 그들은 그 분과의 교제를 통해서 그 분과 그 아버지와의 관계성을 충분히 정확하고 완전한 생각을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참고자료] Francis Henry Dunwell, A commentary on the authorized English version of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compared with the Sinaitic, Vatican, and Alexandrine manuscripts, and also with Dean Alford's revised translation, London: J. T. Hayes, 1872, p.316).


[내가 그 길이요 -  I AM THE WAY]

<사도행전>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복음은 그리스도이시요, 그리스도 만을 위함이다. 이런 사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요한복음 14:5>에서 '어떻게 우리가 그 길을 아나이까?' 라고 도마가 물었을 때, 예수님은 '내가 그 길이요'(I am the way/ εγω ειμι η οδος)라고 대답하신다. 예수님은 '그 길'(The Way)이라고 절대적으로 말씀하신다. 이 말씀과 일치함이 <사도행전>에서 네 곳에 찾아진다:

    9:2And desired of him letters to Damascus to the synagogues, that ①if he found any of this way, whether they were men or women, he might bring them bound unto Jerusalem. (Acts 9:2, KJV)

    9:2ητησατο παρ αυτου επιστολας εις δαμασκον προς τας συναγωγας οπως εαν τινας ευρη της οδου οντας ανδρας τε και γυναικας δεδεμενους αγαγη εις ιερουσαλημ (Acts 9:2, Greek NT, Stepanos 1550)

    19:9But when ②divers were hardened, and believed not, but spake evil of that way before the multitude, he departed from them, and separated the disciples, disputing daily in the school of one Tyrannus. (Acts 19:9, KJV)

    19:9ως δε ②τινες εσκληρυνοντο και ηπειθουν κακολογουντες την οδον ενωπιον του πληθους αποστας απ αυτων αφωρισεν τους μαθητας καθ ημεραν διαλεγομενος εν τη σχολη τυραννου τινος (Acts 19:9, Greek NT, Stepanos 1550)

    19:23And the same time ③there arose no small stir about that way. (Acts 19:23, KJV)

    19:23③εγενετο δε κατα τον καιρον εκεινον ταραχος ουκ ολιγος περι της οδου (Acts 19:23, Greek NT, Stepanos 1550)

    24:22And when Felix heard these things, ④having more perfect knowledge of that way, he deferred them, and said, When Lysias the chief captain shall come down, I will know the uttermost of your matter. (Acts 24:22, KJV)

    24:22ακουσας δε ταυτα ο φηλιξ ανεβαλετο αυτους ④ακριβεστερον ειδως τα περι της οδου ειπων οταν λυσιας ο χιλιαρχος καταβη διαγνωσομαι τα καθ υμας (Acts 24:22, Greek NT, Stepanos 1550)

그러나 위 네 구절에서 보듯이, 예수님이 '그 길'이라고 하신 그 복음이 <사도행전>의 영어번역에서는 'this way''that way' 간에 다양성만을 강조하였지, 위 네 구절에서는 단 한번도 헬라원문 'την οδον''the way''그 길'이라 번역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사도행전 9:2>을 들어본다:

    and desyred of him letters to Damasco to ye synagoges: that yf he founde eny of this waye whether they were men or wemen he myght bringe them bounde vnto Ierusalem. (Tyndale Bible, 1534)

    and desyred of him letters to Damascon vnto the synagoges, that yf he foude eny of
    this waye (whether they were men or wemen) he mighte brynge the bounde vnto Ierusalem. (Coverdale Bible, 1535)

    And desired of him letters to carrye to Damascus, to the synagogues: that yf he founde any of this waye, whether they were men or women, he myght bryng them bounde vnto Hierusalem. (Bishops' Bible, 1568)

    And desired of him letters to Damascus to the Synagogues, that if he found any that were of
    that way (either men or women) hee might bring them bound vnto Hierusalem. (Geneva Bible, 1587)



따라서 이렇게 번역되어야 옳은 번역이 되는 것이다:

    ①if he found any of this way=If he found any that were of the way (만약 그가/사울이 그 길에 속한 자들 중에 누구든지 잡아내면) (사도행전 9:2, KJV화중광야역)

    ②divers were hardened, and believed not, but spake evil of that way=Divers believed not, but spake evil of the way (몇 사람이 마음이 완고하였고, 믿으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길을 비방하였다) (사도행전 19:9, KJV화중광야역)

    ③there arose no small stir about that way=There arose no small stir about the way (그 길에 관하여 작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다) (사도행전 19:23, KJV화중광야역)

    ④having more perfect knowledge of that way=Having more perfect knowledge of the way (펠렉스가 그 길에 관하여 완전히 알고 있는고로) (사도행전 24:22, KJV화중광야역)


[참고자료] The revision of the English version of the New Testament.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ers, 1873., J. B. Lightfoot, On a fresh revision of the English New Testament, p. 96.

위 성경은 <Matthew Bible 1537>이다. <사도행전 9:2>을 보니, 'that yf he found any of this way'로 번역되어 있다. 여기서도 'the way'가 아닌 'this way'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그다지 별로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 시대의 영적 상태를 반영해준다. 영국 튜더왕조의 헨리 8세 및 메어리 여왕 같은 마귀의 앞잡이들이 성경신자들을 얼마나 핍박하고 살육하였던가!! 1611년에 <킹제임스성경>이 발행되기 전 1500년대에서는 영국 성경번역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여러 종류의 성경번역들이 발행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 성경들을 비교해보면 별반 다른 점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시대에는 성경이 일반 대중성이 없이, 특정 계층에서만 허용되었던 터라, 일반 서민들에게 읽혀질 성경 곧 <킹제임스성경>이 반포되었음은 세계적인 선교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하나의 변혁의 전환점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이 있다. 1611년에 <킹제임스성경>이 발행되었어도, 1620년 청교도들이 신대륙(미국)으로 건너가서 개척할 당시 활용했던 성경은 바로 <제네바성경>이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청교도들은 성경을 믿는다 하여 영국에서 핍박을 받은 자들로서 타국으로 망명을 와서 함께 모임을 가지면서 자기들 나름의 필요한 성경을 번역, 발행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조국인 영국 안에서 발행되는 성경을 배척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틴데일의 번역은 루터번역의 영향이 지대하다. 루터는 '에클레시아'를 '교회'로 번역하지 않고 '회중'(Gemeinde)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틴데일은 'Congregation'으로 정확하게 번역하였다. (Tyndale Bible 1536).  

▲제네바성경의 특징의 하나인 여백주'(Marginal Note)이다. 히브리어 '맛소라사본'을 보면, 이와 같이 여백주로 가득차 있다. '맛소라'란 '울타리'를 의미한다. 여백주가 마치 울타리처럼 사방을 감싸고 있다. (Geneva Bible 1599).


설상가상으로 1604년 제임스왕은 성경번역을 위임하면서, 54명(후에 47명만 남음) 번역위원들에게 <제네바성경>을 참조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위 오른쪽 이미지에서 보듯이, <제네바성경>의 여백주가 너무 많아서 그 풀이들은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일축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틴데일역본>도 참고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왜 그랬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 'Church'(교회)로 번역하지 않고 'Congregation'(회중/모임)으로 번역하였다는 것이다(왼쪽 이미지). 그런데 실은 틴데일이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다. '에클레시아'는 'Congregation'(회중/모임)이어야 옳다. 'Church'(교회) 용어는 신화에 나오는 '여신'(女神)의 이름에서 차용해 온 아주 가증스럽고 비성경적인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제임스왕의 실책이요, <킹제임스성경>의 약점이면서 문제점의 하나인 것이다. 기회가 주어지면 상세하게 밝힐 것이다. 샬롬.


<Created/20090611> <Updated/200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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