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킹제임스성경 발행 400주년 화중광야 대특집] 영국이 전하는 <킹제임스성경> 이야기

<킹제임스성경> ㅡ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읽혀지고 있는
영국의 이상(理想)의 토대가 되었으며, 영국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대변!!

글/ 정재선 목회자


'권위역'(Authorised Version/AV)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킹제임스성경>은 영국의 민족적 보물로 전해지고 있다. 본 성경은 400년 동안 영어권을 통하여 영어번역의 표준으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본 성경의 정확성과 권위로 인하여, 그 어떤 다른 성경도 대신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는 훌륭한 복음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은 전도용으로서 본 성경을 사용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그 복음의 그 빛과 진리를 통하여 수 많은 백성들에게 복을 주셨다!!

그런데 아직도 이 강토 안에는 <킹제임스성경>을 물고 늘어지는 '마귀의 영'에 사로잡힌 집단(개인 포함)이 아직도 건재한다는 것이 이상스럴 정도이다. 허기야 <킹제임스성경번역의 효시>가 되는<한글킹제임스성경> (말씀보존학회)를 '법에다 재판'을 걸어 그곳에서 발행되는 귀한 자료들을 '판금'시켜 버리는 잔인한 '교단 권력자들'이 있으니 말이다. 자기들이 잘나서(?)...똑똑해서(?)...오늘날 그만큼 대형 건물에다 수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나? 그것도 모자라서 일년에 헌금이 수 조원에 이르니, '이번엔 은행도 주소서'(자세히보기) 라고 하는 곳이 바로 오늘의 이 강토의 현실이다!! 너무도 기름이 낀 결말이다!!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선교사님이 이러한 현실을 보면 얼마나 마음 슬퍼하실까? 자기가 <킹제임스성경>을 '조선 땅'에다 전하지만 않았던들...하고 말이다.

 

◆<킹제임스성경>을 저본으로 번역한 최초의 한글성경 ㅡ <왼쪽> 1887년 존 로스(John Ross/한국명:라요한/羅約翰) 선교사님이 번역, 발행하신 최초의 한글성경 <예수셩교젼셔>이다. <오른쪽> 게일(James Scarth Gale/한국명: 기일/奇一) 선교사님이 '이원모' 성도와 번역하여 1925년에 발행하신 최초의 국·한 혼용 성경인 <新譯:新舊約全書>이다.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상세하게 밝힐 것이다!! (화중광야소장).

그리고 게일(James Scarth Gale) 선교사님도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자기가 개인적으로 번역한 성경이 바로 <킹제임스성경>이었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하지 않았던 것을...말이다. 후임자들이 잘들 알아서 선포해주겠지 하셨나? 오히려 그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막아 버린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런지...!! [가정예배가이드 19]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그 뜻] (자세히보기). 그러니 1994년에 이르러서야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최초로 발행되기 전까지 일반 신자들은 '킹제임스성경 까막눈'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그러한 넋두리 같은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한다. 피차 시간 낭비일테니 말이다. 성경이 마지막 접으면서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최후의 통첩>(안티오크 출판 발행)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1년은 <킹제임스성경>이 발행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 영국에서는 갖가지 기념 행사들이 진행중이다. 지난 1월 3일-5일까지 3일간 영국 'BBC Radio 4'는 3차에 걸쳐서 <킹제임스성경 이야기> 특별프로그램을 방송하였다. 필자는 그 방송을 소개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우리 타국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히든스토리'가 담겨져 있어서 새롭고 신선한 감정을 돋우어 줄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주변에 영어 해독이 가능하신 분의 도움을 얻어서 청취하시기 권한다. 프로그램 마다 43분의 분량이다. 샬롬. (2011.1.10/ 깊은 밤)

[들어가면서]


영국 'BBC Radio 4'에서 15년간 방송중인 진행자 제임스 노티(James Naughtie/현재 스털링대학교 총장)<사진>은 제임스 왕이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승계받은지 1년이 지나 1604년 1월에 '햄프톤궁전'(Hampton Court Palace)에서 어째서, 어떻게 새로운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심했는지, 그리고 그 새로운 성경번역의 과정과, 그 유산을 밝혀주고 있다.

영국교회(Church Of England) 자체가 비숍들을 통해서 번역한 <비숍성경>(Bishops' Bible)이 있는데도 말이다.

제임스 노티가 '햄프톤궁전'을 방문해서, 그곳의 관장 루시 월슬리(Lucy Worsley)와 함께 걸어가면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 퍽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필자는 그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아래와 같이 보완하였다!! 필자도 때가 이르면, 주님이 그곳을 방문토록 허락하시리라 굳게 믿어진다. 1998년부터 기도 중인데, 금년에는 반드시 열어주시리라...!!

[제1부] 성경번역 위임 ㅡ 제임스 왕은 무엇 때문에 성경을 다시 번역해야 했는가? <>

제임스 노티(James Naughtie) ㅡ '킹제임스성경번역자들'이 한 '민족적 서시'(national epic)를 만들어 내다.

<킹제임스역> 혹은 <권위역>이라고 불리는 성경은 지금도 영어권에서는 가장 널리 발행되는 역본이다. 본 성경은 '가장 고위한 영어 산문'(noblest monument of English prose)이라고 불리웠으며, 수 백년 동안 하나의 종교 및 문학의 고전(classic)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우선, 제임스 노티는 '햄프톤궁전'(Hampton Court Palace)의 관장 루시 월슬리(Lucy Worsley)와 함께 궁전 안을 걸어가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1603년에는 엘리자베스 튜더(Elizabeth Tudor) 여왕이 사망하고, 제임스 1세(James I)가 승계 하여 최초의 스튜어트(Stuart) 왕가가 되었다. 같은 해에 역병(Plague)이 돌았다. 역병으로부터의 피난처이기도 한 곳이다. 1604년에 이곳에서의 회의가 <킹제임스역>의 시발이 이루어진 곳이다. 1월 회의의 진지함 이전에도 가면극들과 축하연들과 세익스피어 연극이 있었던 곳이다. 1603년부터 1625년까지는 제임스 1세의 즉위 기간을 '쟈코빈 시대'(the Jacobean period)라고 부른다.

◆새로운 성경번역을 독려하는 제임스 왕(1604/햄프톤궁전). <BBC제공>.

다음은 폴린 크로프트(Pauline Croft) 교수와 함께 '채플 로열'(Chapel Royal)에서의 사건을 나눈다. 1604년에 회의를 하기 전, 제임스왕은 비숍들과 성직자보다 높은 자리인 '로열 퓨'(Royal Pew/벤치형 좌석) 안에 앉았다. 그 전에 1599년 스크틀랜드에서 제임스 왕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헨리 왕자에게 주는 가르침'이라는 부제를 가진 '바실리콘 도론'(Basilikon Doron)이라는 책을 사비(私費)로 소량 출판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은 비록 범위는 좁지만 거의가 스코틀랜드에서 찾아낸 것들이며, 신학적 내용은 별로 강하지 않다.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로, 어머니의 퇴위로 인하여 1세 때 스코틀랜드 왕에 즉위하였다. 메리는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반란으로 처형되었다. 그러나 1603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후계자 없이 서거하자, 혈연에 따라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청교도를 억압하는 동시에 가톨릭교도도 탄압하여 영국교회(英國敎會)를 절대주의의 지주로 삼았다. 그리고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주창하여, 왕은 신 이외의 것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법이 왕과 의회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국민측의 주장과 대립하였다. 그 때문에 의회는 쌍방의 정면 충돌 장소로 파란을 일으켰으며, 왕의 치세 22년 동안 4회밖에 의회를 개원하지 않았고, 형편이 곤란해지면 일방적으로 의회를 해산시키곤 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종래 잉글랜드의 적대국이던 에스파냐와 유대를 맺는 정책을 취하였으며, 30년전쟁에서 사위인 파르츠백작으로부터 원조 요청을 받고도 에스파냐를 꺼려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기 때문에 잉글랜드 국민의 불만을 사기도 하였다. 1624년에 왕권 강화를 꾀하여 사법·행정·교회 제도의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귀족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암살당하였다.

제임스 노티는 본 회의에서 주요 인물들을 소개한다: 청교도-비판자 런던의 비숍인 리차드 밴크로프트(Richard Bancroft), 저명한 설교자요 국교 순응주의자(順應主義者/conformist) 랜슬롯 앤드류스(Lancelot Andrewes/Lancelot Andrews)와, 청교도 대표자 존 레이놀즈(John Rainolds/John Raynolds).

   

◆랜슬롯 앤드류스

 

◆리차드 밴크로프트

 

◆존 레이놀즈

이 자리에서 존 레이놀즈에 의해서 성경의 새로운 번역이 제안되었다. 그는 영국교회가 인정하는 <비숍성경>(Bishops Bible)을 약화시키고, 청교도(퓨리턴)들이 선호하는 <제네바성경>(Geneva Bible)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제임스 왕이 레이놀즈의 제안을 받아들인데는, 지금까지 발행된 여러 번역본들이 나름의 '오역'이 있었음을 시인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이로써 레이놀즈에게 승리를 가졌다 주었던가? 그렇지 않다. 제임스왕이 <제네바성경>을 모든 성경 중에서 최악의 성경으로 제외시킨데는, 그 성경의 <여백주>(marginal notes)들이 논란이 되어 왔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1604년 1월 햄프톤궁전 회의 개회식

회의가 끝난 후, 밴크로프트가 '번역준칙들'을 제안하였고, 왕이 이를 승인하자, 번역자들은 6개 그룹(옥스포드, 캠브리지, 웨스트민스터)으로 나뉘어 번역에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본 번역의 규정들에 관하여는 별도의 주제에서 상술될 것이다!!

성경번역은 곧바로 착수되었다. 거의 1년이 지난 후에, '건파우더 음모'가 영국 전역을 진동시켰다.

1603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죽고, 제임스왕이 즉위하였는데, 이에 반하는 '가이 포크스'(Guy Fawkes)를 포함한 13명이 왕과 왕자와 국회의원들이 모이는 국회를 폭파하기로 결심하고 국회 밑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 36바렐의 폭약을 설치하고 거사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을 수 있는 이 무시무시한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기에 이르렀고, 주동자들은 처형이 되었고 안전하게 생명을 구하고 국회를 지킨 이 날을 기념하여 불꽃놀이를 하게 되었다고 전해 온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재임시절 가톨릭교도와 신교도를 탄압하고 성공회를 육성하는 정책을 실시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성공회의 수장은 바로 영국의 국왕이기 때문이다. 왕권을 확고히 하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은 그러나 여타 종교를 믿는 이들에겐 억압과 탄압의 시발점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사후, 스코틀랜드의 국왕인 제임스 1세가 보위를 잇자 가톨릭교도들과 비성공회 계열의 신교도들은 종교적 자유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됐다. 그러나 제임스 1세는 자유로운 종교는 허락하되, 그 예식은 성공회를 따르라는 애매한 칙령을 내려 이들을 실망시켰다. 절대적인 왕권에 대한 미련은 제임스 1세라 해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가톨릭교도였던 '가이 포크스'와 그 일당은 국왕과 지배세력에 대한 대규모 암살만이 가톨릭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국회의사당 지하에 엄청난 규모의 폭약을 터뜨려 한꺼번에 지도층을 없애고, 새로운 가톨릭파 국왕을 옹립하자는 '화약 음모'(Gunpowder Plot)를 계획한다. 영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테러 시도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음모는 성공하지 못한다. 계획이 진행되면서 지인이나 가족들을 몰래 피신시키려던 일부의 은밀한 편지가 제임스 1세에게 발각됐기 때문이다. 거사를 일으키려던 11월 5일 새벽, 의회의 지하창고에서 36개나 되는 화약통과 함께 체포된 '가이 포크스'는 동료들과 더불어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제2부] 성경번역 과정 ㅡ <킹제임스성경>은 어떻게 번역되었는가? <>

두 번째 프로그램에서 제임스 노티는 킹제임스성경이 6개 그룹으로 나뉘어서 번역된 그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필독관련자료] <킹제임스역본>은 누가 번역하였나? [1] (자세히보기)

보들리언 도서관 
뜰 안에는 제임스왕이 손에 책들을 들고 있는 동상이 서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도서관이다. 1327년에 설립되었으며,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으로 '영국도서관'(British Library) 다음가는 규모의 도서관으로 영국에서 출간된 대부분의 책의 초판본을 소장하고 있다. 1605년에 이곳 도서관을 방문한 제임스 왕은 '쇠줄이 달린 책들'(chained books) 처럼, 자신의 생애도 '쇠줄이 달리기'(chained)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참고로 중세에는 책을 만들기도 힘들었고, 책값이 무척 비쌌기 때문에, 책의 분실은 엄청난 손실을 초래하였다. '쇠줄이 달린 책들'이란 이러한 도난을 방지할 목적으로 책의 끝에다 쇠줄을 달아 그 쇠줄 한쪽 끝을 책상 모서리에다 붙여 놓았다.)

런던(웨스트민스터), 캠브리지와 옥스포드 안의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번역작업에 있어서 이전의 번역본들에 관하여 관심을 가졌다. 옥스포드대학교의 헤르트포드대학(Hertford College)의 채플 안에는 윌리암 틴데일(William Tyndale)을 새겨놓은 한 개의 스테인드글래스를 만나게 된다.

틴데일은 히브리원어와 헬라원어 성경으로부터 최초로 영어로 직접 번역하였다. 따라서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그의 번역 작업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킹제임스성경>에 관하여 생각할 때 떠오르는 많은 성경구절들은 실은 틴데일의 번역에서 차용한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틴데일역본>의 구약 50%, 신약 85%를 차용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마틴 루터의 독일어 역본(표지/1534). 틴데일 역본보다 늦게 발행됨. 루터의 번역이 틴데일에게 직접 영향을 줌.→

 

◆→틴데일역본(로마서 1장/ 1526). 헨리 8세의 핍박으로 피신중, 루터를 만나 그의 번역을 필사, 영어로 번역함.→

 

◆→킹제임스역본(창세기 1장/ 1611). 틴데일 역본의 구약50%, 신약85%를 차용할 정도로, 틴데일 역본을 의지함.

이처럼 <틴데일성경> 이외에도, 그들은 나름대로 이전에 발행된 다른 번역본들(카버데일성경, 매튜성경, 대성경, 제네바성경)을 소지하고 있었으니, 이는 제임스왕이 내려준 '번역준칙'(The Rules Of Translation/별도주제에서 상세하게 다룰 것임)에 따르면, <비숍성경> 보다도 본문이 훌륭하다는 견해가 일치할 경우에만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들 마다 아젠다(의제)가 있었으니, 예를 들면, <그레이트성경>(Great Bible 1539)의 '권두화'(卷頭畵/Frontispiece)는 '절대왕권'(Royal Supremacy)이 잘 그려져 있었으며, 그러한 절대적 왕권에 도전한 성경이 바로 청교도들(퓨리턴)이 번역, 발행한 <제네바성경>(Geneva Bible 1583/하단 이미지 오른쪽)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 '스테인드 글래스'에는 틴데일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성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왼쪽 하단에는 마틴 루터가 새겨져 있으니, 틴데일의 신약번역이 루터의 역본으로부터 직접 필사하여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왕 헨리 8세의 체포령을 피하여, 독일 봄즈(Worms)로 피신 중에, 마틴 루터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역이었다.

결국은 믿었던 친구에게서 배반을 당하여 체포되었고, 화형을 당하기 직전에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주님, 영국 왕의 두 눈을 열어주소서.' (Lorde open the Kyng of Englandes eyes.) [John Foxe, Actes and Monuments, VIII. 1570. p.1229] [정재선 목회자의 그 말씀의 에세이 3] (자세히보기).

성경번역자들 중에서 옥스포드 한 그룹이 캠브리지대학교 '코퍼스크리스티대학'(Corpus Christi College)에 있는 '타워룸'(Tower Room) 안에서 작업을 시작하였는데(위 사진), 이곳이 바로 이 대학의 학장이요 '신실한'(godly) 존 레이놀즈의 방이었다. 그는 청교도파의 대표자로서 햄프톤궁전 회의석상에서 새로운 성경의 번역을 제안하였던 장본인이었다. 그 그룹이 여기에서 만난 것은, 레이놀즈가 통풍(痛風/gout)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607년에 죽었는데, 그때까지 그의 그룹은 자기들의 몫(이사야ㅡ말라키)을 거의 번역 완료한 상태였다.

번역자들이 작업한 문서들은 다음 두 가지 양식으로 정리해서 제임스 왕에게 보여주었다:

    ① 비숍성경 1602판 ㅡ 학자들이 제시하는 번역상 바뀌어져야 할 '풀이들'(annotations)이 포함.

    ② 번역자들의 전체 그룹이 평가한 견해를 번역교정위원회가 정리한 건의서 사본 한 권.


제임스 노티는 런던에 소재한 '스테이셔너즈 홀'(Stationers Hall)로 이동한다. '서적출판업 조합사무소'로서 1911년까지 영국의 모든 출판서적은 모두 여기에 신고해야 했던 곳이다. 아울러 이곳은 번역위원회가 열린 곳이요, 최초로 번역된 <킹제임스성경>이 소리내어 읽혀진 곳이다. 제임스 왕은 <창세기>부터 들었을 때, 번역자들의 노고에 '국민적 서사시'(national epic)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전한다.

[제3부] 성경번역 유산 ㅡ <킹제임스성경>이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

세 번째 프로그램에서 호스트 제임스 노티는 영국 문화에서 <킹제임스성경>의 불변의 위치를 소개한다.

영국 안에서의 <킹제임스성경>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 상업, 영화, 소설, 음악, 그리고 일상 대화 속에서까지도 함께하는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에는 <권위역/Authorised Version)이라는 별칭 이외에도, '영어산문의 대기념'(The great monument to English Prose)이라는 타이틀이 따라 붙는다. 어떻게 해서, 그리고 왜 그러한 타이틀이 따라붙었는지 노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언어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제임스 노티는 언어학자이자 르네상스 학자 고든 캠벨(Gordon Campbell), 자마이카 시인 카이 밀러(Kei Miller), 그리고 사우스뱅크 센터(Southbank centre) 출신의 라헬 홈즈(Rachel Holmes)와의 대화를 갖는다. 'Salt of the earth'(그 땅의 소금)=아주 선하고 정직하여 신뢰할 만한 사람. 'Skin of their teeth'(그들의 이빨 같은 피부)=구사일생/벼랑끝  'Apple of his eye'(그의 눈동자 속의 사과)=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이러한 일상 용어들은 <킹제임스성경> 속의 말씀을 세익스피어가 지신의 작품 속에 인용, 널리 활용되어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는 어문학에 끼친 실용적인 유산이다.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제임스 노티는 '성바울 성당'에서 길즈 프레이저(Giles Fraser)와의 대화를 통해서, 영국 문화권 내에서 성경과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로서의 <킹제임스성경>을 논한다. <킹제임스성경>은 300여년 동안 신앙생활(교회와 가정) 가운데 유일하게 사용된 성경이었다는 것이다.밀씀 선포자들(설교자들)이 수 많은 군중을 이끌어 냈을 때, <킹제임스성경> 속에 기록된 그 말씀들이 영국 내의 모든 사람들의 혈액순환 역할을 하였다고 전한다.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ㅡ 헨델의 '메시야']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킹제임스성경>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저 유명한 음악 중에서 하나의 악보, '헨델의 메시야'(Handel's Messiah)를 통해서 일 것이다. 헨델과 메시야의 대본(리브레토/libretto/자세히보기)을 작성한 찰스 젠넨스(Charles Jennens)는 극장이라고 하는 비도덕적인 세계에다 성스런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신성모독의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본래의 장소와 목적으로부터 성경을 옮겨, 그것을 다른 모습으로 관중을 변화시킨 것이다. 오늘날 헨델은 그 어떤 아티스트가 이루어 놓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어 놓았으니, 바로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킹제임스성경>을 보존시킨 것이다. 그의 '오라토리오'(oratorios/성경중심의 악곡)는 <킹제임스성경>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전달자인 것이다.

   
◆'메시야' 대본(리브레트) 선집자 찰스 젠넨스(1700-1773)   ◆24일 만에 작곡을 펴낸 '메시야' 작곡자 헨델(1685-1759)   ◆헨델의 '메시야'를 주제로 50회 설교한 'Amzaing Grace'의 작사자 존 뉴톤(1725-1807)

1719년, 헨델은 존 헤이디저(John James Heidegger)와 함께 왕립음악원을 설립하고, 오페라와 작곡 및 공연에 온 힘을 기울였으나 경제적,육체적으로 곤궁에 빠져 요양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요양을 마친 헨델은 다시 가극에 몰두했으나, 가극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김형주, 세계명곡대전집 해설서1, 서울:예원각, 1991, p.8-9].

1741년 8월 22일, 조지 프레데릭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 )은 여기(餘技)로 생각했던 '오라토리오'라는 새로운 작곡을 위하여 앉았다. 꼬박 24일 후인 9월 14일에, 그는 전대미문의 대작 '메시야' 곡을 끝마쳤다. 그리고 그 곡은 1742년 4월 13일에 초연되었다. 심술궂게도 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는 세인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게 되었고, 그의 운명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되었다.

'메시야'(MESSIAH)는 '기름부음 받은 자'(THE ANNOINTED ONE) 곧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풀이 한 것이다. 본 대본(리브레토)는 찰스 젠넨스를 통해서 선집되었는데, 주로 <킹제임스성경>에서 인용되었으며, <그레이트성경>(The Gtrat Bible)에서는 <시편>을, 그리고 영국 성공회의 <국교 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에서도 일부 인용되었다.

   
◆<킹제임스성경 1611> <요한복음 1장> (화중광야소장). ◆<그레이트성경 1539> 속페이지 (화중광야소장). ◆영국성공회의 <국교 기도서 1588> (화중광야소장).

젠넨스는 3부로 된 하나의 오라토리오(oratorio)로 구상하였다: 제1부 ㅡ 메시야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의 예언 및 실현. 제2부 ㅡ 예수의 희생을 통하여 인류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인류의 하나님의 그 계획의 거절로 인한 인류의 치명적인 패배. 제3부 ㅡ 마지막으로 죽음을 이겨내신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기도의 찬양.



헨델의 메시야 '할렐루야'(Alleluia) 원본 일부(영국도서관 제공)과 러시아(구소련) '세계명곡 대전집'(1991) 중에서 녹음. <드미트리에프 지휘/라트비안 합창단/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화중광야 제공).

위 악보는 '메시야' 중에서 가장 유명한 '할렐루야 합창' 부분 일부이다. 이 부분은 <킹제임스성경>의 신약 <요한계시록>에서 인용하였다. 별도 기회가 주어지면, '메시야'를 상세하게 올릴 것이다:

    And I heard as it were the voice of a great multitude, and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as the voice of mighty thunderings, saying, Alleluia: for the Lord God omnipotent reigneth. (Revelation 19:6)

    And the seventh angel sounded; and there were great voices in heaven, saying, The kingdoms of this world are become the kingdoms of our Lord, and of his Christ; and he shall reign for ever and ever. (Revelation 11:15)

    And he hath on his vesture and on his thigh a name written,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Revelation 19:16)


[제국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킹제임스성경>은 영국제국의 책이었다. 제국이 뻗어나가는 곳마다, 성경도 뿌려졌으니, 그것이 바로 <킹제임스성경>이었다. '성바울 예배당'의 채플에서, 제임스 왕은 영국 제국을 통한 <킹제임스성경>의 반포를 논의한다.

이 성경은 노예무역을 옹호하고 도전하는데 사용되었다. 노예들이 읽기를 배웠을 때, 그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이 성경을 읽었다. 그들은 <출애굽기>를 읽었고, 예수님의 <산상설교>도 읽었으며, 세계가 생각하는 그 길을 바꾸어 놓았다. <킹제임스성경>은 아브라함 링컨의 '노예해방' 연설문 속에서 인용되었고, 훗날 인권운동과 아프리카-미국인 저자들의 저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핍박의 도구가 해방의 도구로 바뀐 것이다.

[개역(RV)이 발행되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접근이 용이한 성경 번역의 요구가 있었기에, 1881년에 <개역>(Revised Version) ㅡ 신약성경(1881), 구약성경(1885) ㅡ 이 발행되었다. 이 개역은 <킹제임스성경>의 전통을 많이 고수하였으며, 그다지 직접적인 위협은 되지 않았다고 자인하지만, 그러나 이 성경의 발행으로 인하여 20세기에 들어와서 '새성경번역'이라고 하는 많은 영어성경의 번역을 초래한 '원흉'이 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새국제역'(NIV), '개정표준역'(RSV), '굿뉴스성경'(GNB) 등등의 다양한 '변질된'(corrupted) 현대 영어성경의 초석을 이루어 놓은 것인데, 이 배후에는 성경을 변질시키는 '비밀집단'의 조종을 받는다는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는데, 일반 신초들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바로알기] <동일성경구절에 번역이 두 가지> (자세히보기).

이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기록 속의 언어의 우아함이 아니요, 성경기록의 이해함의 능력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성경을 원한다. 그럴진데, 오늘날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지지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놀랍게도 <킹제임스성경>의 예리한 제안자들은 바로 '세속주의자들'(secularists)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는 이유는, 영어의 아름다움 때문이요, 영국 문화권의 위치 때문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그 말씀 보다는 문학의 한 작품으로서, 일반 학교와 대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인 것이다!!

<킹제임스성경>이 알려지는 것은 점점 감소되는 추세이지만, 그것의 영국 문화권 안에서의 지위는 확고하다. 본 성경은 아직도 신앙헌신에 사용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도 광대하다. 본 성경은 도전하고 타도하는데 큰 위력을 지니고 있지만, 웃음과 재미를 가져다 주는 위력 또한 대단하다. 본 성경은 새로운 군중들과 환경들을 재발견해 가면서, 오늘날도 살아 있다!!

[관련자료]

1. The King James Bible: 400 years of potent poetry (Telegraph/자세히보기).

2. Battles of a book: The King James Bible's history of dissent and inspiration (Independent/자세히보기).


<Created/20110110> <Updated/201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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