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복음선교문서 컬렉션 2]

'이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해 오셨고, 우리에게 은혜를
통하여 영존하는 위로와 좋은 소망을 주셨던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가 너희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너희를 모든 선한 말씀과 일 안에 세우시니라.'

(데살로니카후서 2:16-17, KJV화중광야역)


'다빈치코드'가 이제는 잠잠한가 했더니...??? 본 자료는 2006년 5월 영화 '다빈치코드' 개봉에 즈음하여 500부 한정판으로 제작하여 배포한 것입니다. (2007.07.28)
 
[모나리자는 레오나드 다빈치의 자화상!!-더 이상 속지 말아야...]

모나리자의 눈동자 속에 실제의 '다빈치 코드'가 발견되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이 2010년 12월 13일 보도했다. <DailyMail/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1337976/Real-life-Da-Vinci-Code-Tiny-numbers-letters-discovered-Mona-Lisa.html>.

500년 역사의 이 르네상스 최고 명화는 실제 모델의 정체성을 놓고 지금까지도 끊임 없는 논란을 일으켜왔다.

실바노 빈체티(Silvano Vinceti) 이탈리아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모나리자 눈 속의 미세한 글자들이 모델 파악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빈첸티는 '표면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통해 보면 오른쪽 눈동자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니셜인 LV가 보인다,'며, '왼쪽 눈동자의 글자는 CE 또는 B가 미세하게 보이나 정확히 식별할 수 없다'고 밝혔다.

빈체티는 또한 모나리자 배경에 그려진 아치형 다리에도 '72' 또는 'L2'로 보이는 글자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단서는 한 골동품상에서 발견한 50년 된 명화책 속에서 찾았다고 전했다. (2010.12.17)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의 베일을 벗긴다!!



[1] 성경혼돈의 대명사 '다빈치 코드'의 베일을 벗긴다!!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이시오, 구원자이시오, 이 땅에 오고계시는 왕이시다. 이것이 사실인가 아니면 우화인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외쳐 대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진솔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 어찌해서 그 분이 오셨으며, 그 분이 무엇을 이루어 놓으셨으며, 지금은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머지 않은 미래에 그 분이 행하시려는 계획을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잃어버렸던 사실들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성경 기록들이 신뢰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전문가 들은 그 이유에 관해서 복음서의 기록자들, 곧 마태, 마가, 누가와 요한이 예수님의 생활과 활동들, 특히 그 분이 베푸신 기적들을 과장되게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진실로 아이러닉한 것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서 일부 동일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성경(the Holy Bible)의 '정경'(正經)/cannonized books)을 거부하고, 다만 '도마복음' '빌립복음'과 '마리아복음'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유다복음' 같은 공상적인 위경(僞經)을 받아들인다. 당신은 이러한 복음서에 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영지주의(靈智主義)복음으로 알려진 것 가운데, '도마복음'은 그리스도가 힌두교와 불교의 교리를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빌립복음'은 막달라 마리아를 성적 파트너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동반자' (companion)로서 일치시킨다. '마리아복음'은 막달라 마리아가 12사도들에게 수석 사도로서 나온다. 어찌하여 지식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영적인 넌센스를 찾아다니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하는가?

현대 기독교계는 두 가지 가장 성스런 절기 가운데 한 절기를 기념하려고 있다. 항상 그래 왔듯이, 예수님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인가? 금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죽음과 부활에 관해서 많은 토론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거친 논쟁이 충만할 것이다.

댄 브라운의 가장 인기있고 논쟁거리인 소설 '다빈치 코드'가 5월에는 영화 스크린을 강타할 전망이다. 이 책은 역사적 연구, 이론적 토론들을 재구성 하였고,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논의들을 가열시켜 놓았다. 이 책은 또한 종교 단체들로부터 심한 불꽃을 끌어냈다.


1. 로맨틱 스릴러로 가면을 쓴 신성모독

브라운의 베스트셀링 소설은 영지주의 복음서들과 중세의 민담을 함께 짜맞춘 것이니,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혼인을 해서 딸 한 아이를 낳았는데, 이 딸이 훗날에 프랑크왕국의 메로빙거(Merovingian)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브라운에 따르면,<성배>(聖盃/Holy Grail)의 전설은, 예수의 마지막 만찬 때의 <그 포도주잔> (chalice)이 아니라, 바로 마리아의 자궁에 관한 것이다. 브라운의 인기 스릴러가 현재 시작되었다. '오푸스데이'(Opus Dei)라고 불리는 로마 카톨릭의 분파가 그리스도와 마리아에 관한 비밀을 침묵시키려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의 후손들을 알게 되면, 로마 카톨릭교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빈치를 그리스도의 아이의 혈통을 입증하는 문헌들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시온수도원'(Priory of Sion)이라고 하는 비밀 교단의 지난 과거의 수장(首長)으로 만든다. 그 음모가 깊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이끌어가는 여성적인 성격이 막달라 마리아의 자궁의 위치와 오늘날 지구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후손들의 일체성을 입증하는 '그 코드'를 깨는데, 하나의 주요한 수수께끼 열쇠가 된다.

이 책은 출판산업의 불황을 구해준 것으로 인식된다. 문자적으로, 이책은 베스트셀러 가운데 베스트라는 혹독한 비평을 받아 왔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본래의 진실을 재인식 시키는 하나의 시도로서 믿기 때문에 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반대로 실랄하게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상, 이 책은 로맨틱 미스테리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신성모독'(blasphimy)을 방조한다.


2. 격양된 카톨릭교인들

로마 카톨릭교인들은 이 책의 자기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에 대하여 격양되었다. 비록 이 책이 하나의 소설에 불과하지만, 일부 역사적 사실에다 전설과 허구(픽션)을 혼합시키고 있다. 모든 역사가들은 브라운의 과거에 대한 해석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브라운은 콘스탄틴 황제가 예전의 '진실된'(true)복음서 기록들을 파괴시켰고, 그대신 오늘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약의 복음서들로 대치했다고 진술한다. 브라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자신의 그림들 속에다 분명하게 집어넣은 멋부리기에 대한 저자 자신의 혼란을 일으킨다 그는 교황의 친위적인 비밀단체인 '템플러 기사단'(Knights Templar)이 체포되어 처형당했는지도 풀어 놓는다. 많은 역사가들은 이 책을 역사적 연구의 가치가 빈약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저자 브라운은 카톨릭 교인들이 오히려 밝히 드러내지 않았을, 다시 말해서, 카톨릭 교회의 13세기 '카타르인들'(Cathars)의 근절(몰살)이라고 하는 일부 어두운 역사를 파헤쳐 내고 있다.

카톨릭 교에 의해서 이단들이라고 찍혔던 그들은 실제로 지도상에서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남부 프랑스, 이탈리아, 불가리아, 스위스, 독일,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 학문의 중심들로서 비록 그들이 미술, 문학과 음악의 하나의 풍요로운 문화적 유산을 발전시켰을지라도, 종교재판(Inguisition) 기록들 속의 것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역사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카타르인들의 다수는 브라운이 자신의 소설 속에서 사용하고 잇는 것과 유사한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단적 견해들을 포용했던 영지주의자들(Gnostics)이었다. 그렇지만 유태인들, 비 카톨릭교인들, 그리고 '하나님의 참교회' (the true Church of God)의 지체들과 같이 영지주의 자들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카타르인 모반(謀叛)은 천인공로(天人共怒)할 '스페인 종교재판'(Spanish Inguisition)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비록 브라운이 역사를 자기 자신의 목적으로 해석했을지라도, 그것도 역사인 것이다.

브라운이 알렉산더 히슬롭의 저서 '두 바빌론'(The Two Babylons)을 참고한데 대해서 카톨릭교인들이 당황하기도 하였다. 브라운은 태양 숭배자인 콘스탄틴이 자신의 태양숭배를 기독교 개념들에다 이교적 상징들을 주입하는 하나의 새로운 신앙으로서 재포장 하였음을 확신한다.

비록 히슬롭의 저서가 수십년간 맹렬한 공격을 받아오고 있을지라도, 그 책은 카톨릭교회(Catholic Church)가 수 세대 전에 니므롯(Nimrod)과 세미라미스(Semiramis)에 의해서 세워진 '바빌론 신비종교'(Babylonian mystery religion)를 영속(永續)시키고 있음을 올바르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로마카톨릭 의식 중에서 태양 상징들은 하나의 중심적인 주제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브라운의 책이 인기가 있게 된 것은 최근에 드러난 카톨릭 사제계에서의 부패(타락)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느낀다.

브라운이 카톨릭교회만을 선발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다. 그는 총체적으로 기존 종교에 대해서도 강하게 일격을 가하고 있다. 본 책 속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 속의 모든 신앙은 날조(위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Every faith in the world is based upon Fabrication.)


3. 종교 혼돈의 세계

비록 영적인 진리는 아니지만, 브라운의 책은 밝히 드러내고 있다. 그 책 속에는 영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책은 우리에게 현대 종교의 슬픈 모습(자화상)을 보여준다. 기존 종교는 우리에게 실패를 가져다 주었다. 만일 현대 종교가 진실로 우리에게 만족을 주었다면, 아무도 브라운의 책을 지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모든 인류는 종교적 혼돈의 위기 속에 사로잡혀 있음을 직면해야 한다. 일찍이 예수그리스도에 관하여 이렇게 많은 혼돈이 존재한 적은 없었다.

브라운의 책은 문제를 가중시킬 뿐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보지 않고, 다만 권좌를 재탈환 하려고 하는 다윗의 한 빈틈없는 후손으로만 보고있다.

어찌하여 그리스도, 하나님과 종교에 관해서 많은 혼돈이 존재하는가?

"종교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혹은 초자연적 존재에게 예배드리고, 그 존재를 섬기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인간의 창조자와 인간의 관계이다. 일부 종교들은 그 정의를 왜곡시켜 왔다. 그들은 자기들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신들을 숭배한다.".

인류는 자신의 신들과 종교제도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영적 요구들을 채워줄 자는 아무도 없다.

불행하게도, 현대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저들과 같이 동일한 일을 이루었다. 많은 교파들이 만들어졌고, 그들 나름의 예수에 관해서 가르친다. 각 교단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그리스도를 만들어 냈고, 그것을 믿는다.

교회들이 텅 비어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관해서 비꼬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절대적이고 순수한 진리는 인간 이성(human reasoning)과 사탄의 속임(미혹) 하나의 언덕 아래 묻혀져 있다:

    12:9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 (요한계시록 12:9, KJV화중광야역).


자, 이제부터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그 진실을 솔직하게 살펴보자. 그 진실에 대한 우리의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이 유일한 신뢰할 수 있는 근거이다.

브라운의 책은 '반성경' (anti-Bible)이다. 그의 책 속에서 주인공이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성경은 인간의 한 산물이요, 하나님의 것이 아니란 말이요. 성경은 구름들로부터 마술적으로 떨어지지 않았어요. 인간이 그것을 격동의 시기를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로서 지어낸거요. 그리고는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번역들, 첨가들과 개정들이 이루어져 왔소이다. 역사는 전혀 성경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버전(역본)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The Bible is a product of man, my dear. Not of God. The Bible did not fall magically from the clouds. Man created it as a historical record of tumultuous times, and it has evolved through countless translations, additions and revisions. History has never gad a definitive version of the book.


과연 우리가 브라운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이니,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라. (디모데후서 3:16, KJV화중광야역)

    3:16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_ ration of God, and is profitable for doctrine, for reproof, for correction in righteous. (2Timothy 3:16, KJV)


성경은 진리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근거이다.


4. 예수 그리스도는 혼인하였는가?

진실이 가상보다도 더 이상하다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혼인하였는가? 예수님은 독신 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져 왔다. 그러나 당신의 성경에 의하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믿든 말든, 예수님은 혼인 하였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는 혼인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설명하기로 한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혼인 하지 않았음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셨다(요한복음 8:29). 그 분은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 모두를 신실하게 순종하셨다. 분은 그것들을 완전히 이루셨다(마태복음 5:7). 그 분은 그것들을 순종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셨다(마태복음 19:17-22). 자신의 '그 나무에 달리심'에도, 그 분은 '제5계명을 철저하게 자신의 신실함을 드러내 보이셨다: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를 공경하라'(Houour thy father and thy mother...' (출애굽기 20:12).

<요한복음>에서, 성도 요한은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들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19:25-27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의 그 장대 곁에는 그 분의 어머니와 자기 어머니의 누이와,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이 자기 어머니와 사랑하신 그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셨고, 그 분이 자기 어머니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 하셨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은 그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어머니를 보라!' 하셨다. 그리고 그 시각부터 그 제자는 그 여자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요한복음 19:25-27).


죽으시기 직전에, 그리스도는 홀로되신 자기 어머니가 보호받게 되심을 확인하였다. 근본적으로, 예수님은 요한이 이제부터 어머니의 아들이 된 것을 지명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그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요한을 어머니의 아들로 삼을 것과, 요한이 어머니를 돌보는 것을 허락하도록 부탁하였다. <27절>에서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갔다는데 주목하라. 이것은 어머니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음과 자신의 절대적인 이기심이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그 분은 고통의 아픔과 고뇌로 고통을 받고 있었을지라도, 그 분은 첫 아들(맏아들)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 하였다.

예수님의 어머니의 누이와 막달라 마리아도 함께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25절). 만일 막달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아내라면, 자기 어머니는 물론 자기 아내의 뒷바라지도 챙기지 않았겠는가?

<제7계명>은 한 남자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돌보라고 요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혼인에 대한 법칙들을 숙지하였을 것이다:

    2:24 그러므로 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날 것이요, 자기 아내를 향하여 밀착할 것이다. 그리하면 그들은 한 살(flesh)이 될 것이다. (창세기 2:24, KJV화중광야역).


이 성경기록은 혼인 결속은 가족 결속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사랑하는 한 남편 같으면, 먼저 아내가 보이고, 어머니는 그 다음에 보일 것이다. 분명히 말해서, 그리스도는 자기 아내를 챙겼을 것이다. 더구나 자기 아내가 자기 아이를 밴 경우라면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 조차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니 예수님과 마리아가 혼인을 하였다고 믿기는 어처구니 없다.


5. 영적 이스라엘과 혼인하셨다 - 신비적 연합 (별도 성경주제에서 상세하게 밝혀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완전히 성실한 남편임이 진실이다. 그 분은 한 능력있는 공급자이시다. 이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당신은 예수님이 유사 이전의 역사 속에서 누구였는지 알아야 한다. 성도 요한은 예수님이 '영원으로부터 하나님과 함께 완전한 일치와 연합으로 존재하신'(in perfect harmony and unity with God from eternity) 분이라고 보여준다:

    1:1-3 시작 안에 그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바로 그 말씀이 시작 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만물(萬物)은 그 분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리고 지어진 어느 것이든 그 분이 없이 지어진 것은 없었다.' (요한복음 1:1-3, KJV화중광야역).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말씀'(The Word)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인격이시다. 영어의 '말씀'(Word)은 헬라원어 '로고스'에서 번역되었으며, '대변자'(Spokesman) 혹은 '계시적 생각'(revelatory thought)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두 절대 하나님 존재'(two supreme God Beings)를 위한 '대변자'이셨다. 사도 바울은 그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물'(all things)을 창조하셨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3:9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세상이 시작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숨겨져 왔던 그 신비의 교제가 무엇인지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려는 것이다. (에베소서 3:9, KJV화중광야역).


'그 세상'(The World)은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으로 오실 때까지 '그 아버지'(The Father)이신 하나님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우리에게 '그 아버지'를 밝히 드러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1:18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아온 사람이 없지만, 그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독자 그 분이 그 아버지를 밝히 드러내셨도다. (요한복음 1:18, KJV화중광야역).


6. 여기에 정신이 멍해지는 진리가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하나님이셨다. (Jesus Christ was the God of the Old Testament). 그분은 <출애굽기 3:13>에서 모세에게 '나는 존재한다'(I Am)고 자기 자신을 밝히 드러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날에 유태인들에게 이것을 밝히 보여주셨는데, 그들은 그분에게 돌을 던질려고 하였다:

    8:58-59 예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를 향하여 말하노니, 아브라함이 있기 이전에 나는 존재하느니라.' 하시느니라. 그러자 그들이 돌들을 집어 들어 그 분에게 던질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피하셨고, 그 성전에서 나가 그들 가운데로 가로질러 지나가셨더라. (요한복음 8:58-59, KJV화중광야역).


구약의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민족과 혼인하셨다. (Jesus Christ marred the nation of Israel). <출애굽기 19장>에서 <24장>속에 세워진 그 언약은 하나의 '혼인 언약' 이었다. <이사야>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54:5 따라서 너를(이스라엘) 지으신 창조자가 너의 남편이니, 만군(만물)의 주가 그의 이름이요, 너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 그가 그 모든 땅의 그 하나님이라 불리울 것이라. (이사야 54:5, KJV화중광야역).


그리스도는 한 불결한 노예 백성인 이스라엘의 민족을 취하셨고, 그들을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로 삼으셨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속 그 분을 거역하였다. 즉, 영적으로 그들은 창녀 노릇을 하였으며, 자기들 주변의 이방 민족들의 이교신들을 숭배하였다. 그리스도는 신실하였다. 항상 그러셨다. 그 분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들에게 간청하셨다:

    3:14 오 빗나간 자식들아, 돌아서라. 주가 말하노니, 이는 너희를 위하여 혼인하였음이라. (예레미야 3:14, KJV화중광야역).


자신의 아내에 대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은 그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모임/회중'과 혼인하시겠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한 인간으로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분은 자신의 아내인 '이스라엘'의 한 지파였던 유태인들 가운데 오셨다. 비록 그 분의 아내가 신실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분은 그리하지 않으셨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서 7:1-3>에 기록 된 바 같이, 혼인 율법들을 준수하셔야 했다:

    7:1-3 형제들아, (내가 율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율법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주관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남편이 있는 여자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법으로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그 여자는 그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와 혼인 하면, 간음한 여자라 불리지만, 그 여자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므로, 다른 남자와 혼인하더라도 간음한 여자가 아니니라. (로마서 7:1-3, KJV화중광야역)


그 분은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족도 그 당시에도 존재해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른 자와 혼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그 분이 다시 오실 때에는 영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회중'과 자유로이 혼인하게 된다!

하나님의 참다운 회중은 그리스도와 약혼한 신부이다. 이 사실은 마음을 흔들리게 만든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사실을 <로마서7:4>과 <에베소서5:30-33>에서 가르친다:

    7:4 나의 형제들아, 이런 연유로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하여 율법에는 죽었나니, 이는 너희가 다른 사람, 즉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그 분과 혼인되게 하려 하는 것이요, 그리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가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라. (로마서 7:4, KJV화중광야역).

    5:30-33 따라서 우리가 그 분의 몸에 속하고, 그 분의 살에 속하고 그 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들이라. 이런 까닭에 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날 것이요 자기 아내를 향하여 밀착할 것이요, 그들 둘이 한 살이 될 것이라. 이것은 한 큰 신비니, 오직 나는 그리스도와 그 회중에 관하여 전하노라. 그러므로 너희 각자도 자기 아내를 자신처럼 사랑하고, 그리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경외하라. (에베소서 5:30-33, KJV화중광야역)


이상의 성경 구절들을 깊이 연구하라. 이 다가오고 있는 현실(reality)이 온 세상을 현혹 시킬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하나의 엄청난 메시지를 가져 오셨다. 선지자 말라키는 그리스도를  '그 언약의 그 전달자' (the messenger of the covenant)로 묘사한다(말라키 3:1). <말라키>는 그 왕국 혹은 하나님의 가족의 다가오는 통치에 대한 복음 곧 좋은 소식을 언급하고 있다. 그 복음은 모두가 하나의 혼인언약(marriage covenant)인 <새 언약>(New Covenant)에 관한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전언이다:

    31:31-32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면, 내가 이스라엘의 그 집과 유다의 그 집과 더불어 하나의 새 언약을 맺겠으니, 주가 말하노라. 내가 애굽의 그 땅에서 손으로 그들을 취하였던 그 날에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그 언약에 다른 것이 아니니, 비록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한 남편이었지만,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도다. (예레미야 31:31-32/ KJV화중광야역).


과연 인간들이 하나님과 혼인할 수 있었겠는가? 당신의 성경은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예수그리스도와 혼인할 잠재력을 소유한다. 한번 당신의 성경을 보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와 그 회중과의 다가오는 혼인과 관련해서, <요한계시록>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9: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분에게 존귀를 돌리세. 이는 그 어린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 (요한계시록 19:7, KJV화중광야역).


'그 회중'과의 그리스도의 혼인이 모든 인간들이 소망하는 그 유토피아(utopia)안으로 안내 될것이다. 이 진실이 일부 싸구려 픽션(가상) 보다는 모든 사람을 흥분 시켜야 한다.


7. 막달라 마리아


브라운의 책은 여신 숭배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이 이교적 신비주의를 막달라 마리아에게 맞추고 있다. 브라운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가 하나의 이교적 '섹스숭배'(sex cult)속에 적극적인 참여자들이었음을 믿게끔 한다. 그것은 모두가 사납고(야만적)어둠의 악한 우화인 것이다. 브라운은 다 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으로부터 자신의 증명을 이끌어 낸다. 그는 그리스도 바로 곁에 앉은 자가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임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준다.

브라운은 그리스도가 마리아로 하여금 '그 회중'을 이끌어가기를 원했는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같은 '쇼비니스트들'(Chauvinists)이 그리스도가 죽으신 후에 이것을 방해 했다는 '영지주의적 전설들'(Gnostic legends)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전설들은 마리아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을 이루는 한 이름난 선포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브라운의 책에서의 커다란 과오는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그리스도보다 더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검이다. 이 사실로 인하여 많은 여성주의 독자가 이 책을 선호하게 만든 것이다. 과연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에 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그 진실을 찾으러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선 <누가복음> 안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8:1-3 그 후에 주님이 모든 성읍과 마을로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그 왕국에 대한 기쁜 소식들을 전파하시고 선포하셨는데, 열둘도 주님과 함께 있었더라. 그리고 악령들과 병약함으로부터 고침을 받았던 몇몇 여자들과, 일곱 마귀들이 빠져 나간 막달라인이라 불리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후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 자기들의 물질로 그 분을(주님을) 위하여 섬기던 다른 여자들이 있었더라. (누가복음 8:1-3, KJV화중광야역).


다른 복음서 기록자들은 이와 동일한 시기에 있었던 마리아를 언급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그 나무'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사건들 때에 마리아를 언급한다.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해야 할 것은 누가는(다른 복음서 기록자들도) 막달라 마리아에 관해서 우리에게 거의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가는 주님의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자신의 복음서를 잘 기록 하였다. 그는 그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다. 영지주의 작가들이 우리에게 믿게 하려는 바, 마리아가 중요한 역할자였더라면, 누가도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을 것이다.

누가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이렇다. 마리아는 디베랴의 북쪽 3.2키로 떨어진 작은 어촌 막달라 출신이었다. 그 여자의 별칭은 '막달라인(Magdalene)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모친을 포함하는 그 여자의 이름과 같은 여자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를 다른 여자들과 구별 시키기 위하여, 그 여자의 이름에다 출신 성읍이 덧붙여진 것 뿐이었다. 누가는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서 일곱 마귀들을 쫓아냈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누가복음8:2). 이것은 마리아가 육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들로 심한 고통을 받아 왔던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병마들로부터 고침을 받고 나면, 진실로 은혜가 넘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독실한 추종자가 된 것은 분명하였다.


8. 거룩한 여자들


그런데 여기 주목하라: 막달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그 여자는 그 분과 함께 여행한 유일한 여자가 아니었다. 누가는 그 여자가 '헤롯의 청지기 쿠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였다.'(누가복음 8:1). 그 일행의 수가 몇 명 이었는지에 관해서, 그러나 사람의 수가 많았다고 부인한다. 마리아는 여자들 일행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돌보았고, 복음을 선포했던 제자들의 필요를 돌보아준 유일한 자였다.

비록 이 진실이 여성주의자들에게 호소력을 주지 못할지라도, 마리아는 한 요리사 같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누가는 마리아와 그 밖의 몇몇 여자들의 이름들을 들어서 그들의 섬김의 사역을 귀하게 여겼다. 이러한 헌신적인 여자들은 '10계명'에 신실하였을 것이다. 그야 말로 '거룩한 여자들(Holy women)이었다. (베드로후서 3:5).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이 그리스도의 성적 파트너였을 리가 없다.

마리아가 거의 한 요리사였다고 말한다고 해서 초대 '모임'(회중)에서의 여자들의 역할 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그리스도는 여자들도 남자들과 함께 '그 왕국'(The Kingdom)을 입성하는 동등한 기회를 가진다고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보이셨다. 그리스도가 '사마리아의 그 여자'(The Woman Of Samaria)와 함께 이야기를 하심으로써 사도들을 놀라게 하셨다(요한복음 4:1-27). 그리스도는 자신의 친구 '나사로'(Lazarus)의 누이, 마르다(Martha)와 마리아(Mary)와 놀라우신 관계를 가지셨다.

사도 바울도 이방인들을 향하여 '그 복음'을 선포할 때 여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라고 권면 하였다 (빌립보서 4:3).


9. 사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성도 마태(Mattehew), 성도 마가(Mark)와 성도 요한(John)은 그리스도가 '고난의 그 나무'(죽음의 그 장대)의 장소에 마리아를 언급한다. (마태복음 27:56. 마가복음 15:40. 요한복음19:25).

성도 누가는 마리아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 여자가 여자의 일행 가운데 있음을 주목하라. 모든 여자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섬겨왔다고 했다. 이 여자들은 그리스도의 장사지낼 때 필요한 것들을 알고 있었다. 요한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이 도망한 사이 이 여자들은 그리스도가 가장 어려우셨던 시각에 그 분과 함께 머물면서 그분에게 충실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네 명의 복음서 기록자들은 복음서 끝부분에 마리아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예수그리스도는 안식일 직전인 '유월절 날'(Passover Day)에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그분은 서둘러서 매장되셨다. 그리고 나서 새 주일이 시작되는 안식일 후에 마리아와 여자들의 일행은 묻을 옷들에 향료를 뿌리는 장사(葬事)전례를 마무리 하고자 그 무덤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들이 주일아침 일찍 도착하였을 때 그리스도는 이미 죽음으로부터(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던 것이다.

돌무덤에서의 그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그리스도의 시신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완전하게 파악하려면, 당신은 사복음서를 조화있게 연구하고 살펴야 한다. 그 여자 일행에 제자들에게 사라진 예수님의 시신을 보고하였다. 제자들은 그 여자들의 보고를 믿지 않았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 무덤을 살피러 달려갔다. 그 무덤은 비어 있었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살아나셨음을 믿었다. 베드로는 목격한 것에 깊은 충격을 받은 채 귀가 하였다. 마리아와 여자들은 뒤에 남은 채, 울고 있었다.

성도도 마가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마가복음 16:9). 그 여자와 다른 여자들이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알렸다. (누가24:10). 그런데 그 제자들은 그 여자들의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다. 후에 그리스도가 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들의 불신(不信)에 대해 견책하셨다. 그러면 어찌해서 예수그리스도가 먼저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그 여자에게 자신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다른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나? 그 이유는 그 여자가 동반자 아니면 아내였기 때문이었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그 여자가 하나님에게와, 그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충실하였기 때문이었나? 그래, 맞다!!

브라운은 자신의 책 속에서, '로마카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가 마리아의 평판을 폄하시키고, 그 여자를 그리스도의 아내로서 손상시키기 위하여 마리아에 관하여 잘못 가르쳐 왔다고 전한다. 카톨릭 교회는 마리아가 하나의 창녀였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카톨릭 전통들은 마리아가 간음하다 붙잡힌 그 여자와 결부시켜 왔던 것이다.(요한복음 8:1-11). 성경에는 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카톨릭 전통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비싼 향료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두발을 씻겼다고 전해왔다.(요한복음11:2).

최근에 와서, 카톨릭교회는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자기네 오류들을 수정하였다. 그렇다면 브라운이 옳은 것인가? 예수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참다운 진실이 하나의 비밀스런 코드 속에 숨겨져 왔던 것인가? 거의 그렇지 않다!

브라운의 골빈 이교신학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실을 우리에게 전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겨두자.



[2]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셨나? 그 분은 왜 이 땅에 오셨나? 그 분은 무엇을 이루셨나? 여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실을 전한다.

댄 브라운의 미스테리 소설 '다빈치 코드'가 수 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놓은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다. 그렇지만 슬픈 일이지만, 모든 호기심은 진실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브라운의 책은 초대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거절당했던 이단적인 '영지주의 복음들'(Gnostic Gospels)에 근거를 둔 것이다. 겉잡을 수 없이 일어난 그 책의 인기의 비결은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성경>(The Bible)에 대해서 싫증을 느끼고 있으며, 인간들이 사실보다는 허구(픽션)을 더 선호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경고하였다:

    4:4 그리고 그들(무리들)이 그 진리로부터 자기들 두 귀를(들음으로부터) 돌릴 것이요, (그들의 마음/느낌)이 우화들(신화들)을 향하여 내려갈 것이라. (디모데후서 4:4, KJV화중광야역).

    4:4 And they shall turn away their ears from the truth, and shall be turned unto fables. (2 Timothy 4:4, KJV).


이 일이 지금 우리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 종교 학자들은 또 하나의 다른 영지주의적 복음, 곧 '유다의 복음'이 공개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브라운의 조류를 타고자,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브라운의 책이 영화 스크린에 펼쳐질 무렵에, 고대 이집트의 콥틱어 사본을 최초로 번역하였고, 이것을 2006년 4월 9일 공개하였다.

1983년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유다복음'은 밀통(密通)으로 에워싸여 왔다. 이 파손된 문서는 집요한 국제적 협의들로 인하여 시야로부터 차단되어 왔었다. 그 문서는 이집트로부터 몰래 빼내어서, 수 십년간 불법으로 거래된 것 같이 추정된다. 한 번은 이 문서는 수집가들에게 3백만에 제의되기도 하였다. 지금 학자들은 그 문서를 보았을 턴데, 과연 그것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킬 만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일부 사람들은 '유다복음'도 '당신이 예수와 유다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가 틀린다.' (everything you thought you knew about Jesus and Judas is wrong.) 하는 돈을 목적으로 한 브라운의 소설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 그 문서를 번역하는데 엄청난 값이 지불되었다. 따라서 만일 '유다복음'이 브라운의 책 같이 된다면, 엄청난 부(富)가 돌아올 수 있다.

그렇지만, 진실로 비극적인 것은 일부 사람들이 이단적 복음을 브라운의 소설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유다의 비난받아 온 배반에 관한 진실을 손상시킬 우려가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예수와 유다에 관한 하나님의 영감받은 진리를 가진 사람들의 믿음을 완전히 허물 때까지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1. 그리스도에 만족을 찾지 못하다


당신은 브라운의 책과 '유다복음'에 관한 미디어 과대선전이 사람들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놀라운 진실들을 한낱 의미없는 거짓 종교적 판타지로 바꾸어 놓으려는 하나의 운동임을 알아야 한다. 비단 학자들과 미디어만이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진리가 공격받는데 대한 비난은 전통적인 기독교도 그 책임이 있다.

어찌하여 전통적인 기독교가 과오를 범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수 많은 다른 견해들이 수 많이 갈라진 기독교 내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어 올리고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교회들'(회중과 모임과는 대조적으로 종교성 의미)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거짓말이 유포되고 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사실을 <마태복음 24:4-5>에서 입증하셨다:

    24:4-5 예수님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4-5, KJV화중광야역)


그 분은 우리의 때를 내다 보셨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속인다고 경고하셨다!!

그러면 현대 종교의 열매들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회의적이여 불만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 영적으로 굶주린 자들을 보게 된다. 미디어와 학자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전달해주고 있다. 유다가 그리스도 보다 더 주요하게 바라보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유다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진 하나의 앞잡이 곧 하나의 희생자였다고 제안하는 것도 단순히 신성모독인 것이다.

유월절 기간 중에,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그 분이 이 땅 위에 이루어 놓으신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유다에게 초점을 두지 말아야 한다! 물론 유다로부터도 배워야 할 교훈들이 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교훈은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말라'(Don’t betray Christ.)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와 '유다복음'에 관한 최근의 논제는 바로 그것이다. 이상의 작품들을 두고 진실이 내포되었다고 말하는 교육자나 목회자라면 어느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 불충(不忠)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주요 목적들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놀라운 성경 진리를 배우고 있는가? 아니면 일부 인간의 제한된 마음의 창조물인 하나의 인조(人造) (made-up) 그리스도에 관하여 배우고 있는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들을 알고 있는가? 대다수가 알지 못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매모호한 관념들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위에 계셨던 동안 이루어 놓으신 것에 관해 하나의 뚜렷한 상황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2. 예수님은 왜 오셨나?


예수 그리스도는 왜 오셨나? 예수님은 사탄이 권좌에 앉아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사탄의 세계를 구원하러 오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요, 그 때는 사탄은 버림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1,900여년 전에 왜 오셨나? 모든 민족들을 다스리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 그들을 다스리는 동안, 그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이것은 정통이 아닌 말이다. '성경의 그 진리' (The Truth Of The Bible)는 정통이 아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분은 왜 오셨나? 그리스도가 먼저 오심에 대해서는 다섯 가지 주요 목적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의 인간 모습으로 나심은 두 번째(마지막) 아담으로 오셨다.

그 분은 첫 번째 아담이 실패한 곳을 대신하러 오셨다. 이 땅의 권좌 위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가지고 다스리던 전 천사장 루시퍼를 대신하러 오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생소하다. 이것은 모든 과학의 픽션(가상/허구)의 작품 보다도 더 낯설게 보인다. 이 점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당신은 우선 전능자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1) 두 번째(마지막) 아담이셨다


성경은 인간의 창조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짐승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26 리 형상의 닮음 안에 아담을 만들자. 그리하여 그들로 그 바다의 물고기와, 그 공중의 새와 가축과, 모든 그 땅과, 그 땅 위를 기는 모든 기는 것을 다스리게 하라. (창세기 1:26, KJV화중광야역).

    1:26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the cattle,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Genesis 1:26, KJV).


이 구절을 공평한 두 눈으로 읽어라. 놀라웁다. 인간은 짐승으로부터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육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되었다!! 더욱이 하나님은 영적으로 자신의 형상 속에다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자원하는 모든 자들 속에 그 분의 의의 성품을 세우신다. 왜 그런가? 인간은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의 첫 번째 시험무대는 땅이다. 이 땅을 다스린 후에는 인간에게는 온 우주가 주어질 계획이었다. (히브리서 2:8).

이와 동일한 기회가 천사들에게도 주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된 존재들이 자신의 크신 통치와 권위 하에서 다스리게 될 것을 입증하고자 하신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수 있었던 가장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으며, 재능이 있는 천사 존재인 루시퍼는 교만과 허영에 감염되어 버렸다. 그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 땅을 다스리기를 거절하였다.(이사야 14장; 에스겔 28장). 그는 자기 방식대로 다스리기를 원했다. 그는 우주의 그 권좌로부터 하나님을 등지도록 천사들을 거역시켰다. (베드로후서 2:4; 유다서 1:6). 루시퍼가 사탄이 되었으며, 그의 천사들은 마귀가 되었다. 그들은 거역을 통하여 이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천사들에 대한 계획을 취소하셨고 사람에게는 다시 시작하셨다. 왜 그래셨는가? 천사의 대실패로 인하여,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시고 보존하시기 위하여 자신에게민 의존하실 수 밖에 없음을 아셨다. 이제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재창조하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크로노스'(χρονοζ/하나님의 주권적 시간)에 의한 <만세반석의 신비>(Mystery of the Ages)이다.

진화론과 자유주의 기독교 이론에 바탕을 둔 교육에 심취한 자들은 아담의 창조를 신화 혹은 알레고리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아담은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동일한 지능을 소유한 실제 인간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의 초절적인 목적을 충분히 풀어주셨으며, 그들에게 그것을 이루는 방법까지 가르치셨다고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그 분이 드러내 보이셨던 것에 대한 아담과 하와에 대한 순종과 충성을 시험하셨다. 어떻게? 그 분은 사탄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접근하도록 허락하셨다. (창세기 3장). 이 자신의 '처소를 떠난 천사'(fallen angel/타락한 천사라는 용어는 부적절함)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의 허영에 호소하면서,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인간은 끔찍하게 고통을 받아오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떨어져 나갔을 때,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대적(사탄)의 수중으로부터 인간을 회복시키시려고 여러 방법들을 제공하셨다. 그 분은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본보기를 통해서 진행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분은 첫 번째 아담이 실패했던 것, 곧 사탄을 이겨내셔야 했다. 예수님의 사탄과의 우주가 흔들리는 싸움은 <마태복음 4장> 안에 기록되어 있다. 이 장은 '교회들' 안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이해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 본 장을 철저하게 연구하라.

그리스도와 사탄과의 싸움은 그리스도의 승리로서 끝을 맺는다. 사탄에 대한 이 싸움에서 이겼다 함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의 권좌에 앉으실 자격이 확신하는 것이요, 이로써 그 분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그 가족'의 구성원들로서 다스릴 그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5:45-49 따라서 이와 같이 기록 되었으니,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느니라.'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느니라. 그러나 영적인 몸이 먼저가 아니요, 타고난 몸이며, 그 다음이 영적인 몸이라.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흙으로 만들어 졌으나,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신 주시라. 무릇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은 것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서 나신 분은 하늘에 있는 것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진 자기 형상을 입은 것같이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 15:45-49, KJV화중광야역)

    15:45-49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Howbeit that was not first which is spiritual, but that which is natural; and afterward that which is spiritual. The first man is of the earth, earthy: the second man is the Lord from heaven. As is the earthy, such are they also that are earthy: and as is the heavenly, such are they also that are heavenly. And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earthy, we shall also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1 Corinthians 15:45-49, KJV).


본 절은 어지러울 정도이나,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실체로서 오셨다는 점이다.


2) 하나님의 그 왕국을 선포하셨다


사탄을 패배시킨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지상 사역을 시작하셨다. <마태복음 4:17>은 "그때부터 예수께서 선포하기 시작하여, 말씀하시기를, '회개하라, 하늘의 그 왕국이 가까이 와 있느니라.'고 하시더라."(From that time Jesus began to preach, and to say,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이라고 전한다. 이 두 사건은 직접 관련이 있다. 사탄이 물러날 때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다가오는 그 왕국'(The Coming Kingdom Of God )을 선포하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의 두 번째 목적은 '미래에 하나님의 그 왕국의 건설을 선포하시고, 자신의 선택된 미래의 사도들에게 '예언적 좋은 소식들'(Prophetic Good News) 곧 복음을 가르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기 전에 수 세기 동안 한 메신저(Messenger)가 이 땅에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좋은 소식들을 전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것이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使者)를 보내겠으니, 그가 내 앞에 길을 예비할 것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고 있는 그 주(사자)가 갑자기 자기 성전에 올 것이니, 곧 그가 그 언약의 그 사자니라. 보라. 그가 올 것이니,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말라키 3:1).

하나님의 그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로 행하셨다:

    1:1-2 전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을 향하여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전하신 하나님이, 이 마지막 날들에 자기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여 전해 주셨으니, 그 분이 이 아들을 만물(회중/모임)의 상속자로 세워 놓으셨고, 또한 이 아들을 통하여 그 세상들을 지으셨도다. (히브리서 1:1-2/ KJV화중광야역).


그 분은 '만물'이 회복되리라는 한 때를 예고하셨다:

    3:21 하늘은 만물(회중/모임)이 회복될 때까지 그 분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그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 일에 관하여 그 분의 모든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오신 바니라. (사도행전 3:21, KJV화중광야역).


사탄은 이 땅으로부터 하나님의 통치를 제거시켜 버렸으며, 시간상 지금의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그 진리를 은폐시키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4:4 그들 가운데 이 세상(시대)의 신(사탄)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들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그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그들을 향하여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 (고린도후서 4:4/ KJV화중광야역).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오시면, 사탄의 모든 악행들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주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방해를 받지 않고 진행될 것이다. 인간은 그러한 놀라운 미래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맡도록 운명되어 진다.

당신에게 '하나님의 그 왕국'(The Kingdom Of God )은 어떻게 현실로 다가오는가? 현대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그 왕국'에 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하나님의 그 왕국'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수 많은 아들들(모임/회중/신부)로 구성되어 있다.(에베소서 4:13). '하나님의 그 왕국'이 하나의 세상을 다스리는 왕국이 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온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다. 그 분의 신부 곧 '하나님의 참다운 모임'(참십일조)이 바로 그 분 곁에서 다스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그 왕국'은 일종의 영적 감성(感性)이 아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하나님의 그 왕국의 진수(眞隨)에 관하여 알고 있었다. <다니엘 2:36-45>을 깊이 연구하라. 본장은 느부갓네살 시대 이후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들에 대한 놀라운 역사를 전한다. 다니엘은 사람들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네 제국 곧 바빌론, 페르샤, 그리스와 로마제국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 이제 다섯 번째 세계 제국 곧 '하나님의 그 왕국'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지금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해진 '참다운 좋은 소식'(The True Good News)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3)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세 번째 목적은 '그 고난의 나무'(십자가 용어는 가증함의 용어임) 위에서 우리의 죄들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고, 우리로 하여금 미래의 세상을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신성'(神性/하나님 되심)을 제거시켜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한낱 위대한 종교 지도자로만 인정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그 말씀'(The Word Of God)으로서 선재하심(전부터 계심)을 아는 자들이 극히 드물다.

이 놀라운 진리는 우리를 위래서 <요한복음> 안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1:1-2,14  시작(예수) 안에 그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바로 그 말씀이 시작(예수) 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그리고 그 말씀은 살이 되었고, 우리 가운데 거주하셨느니라... (요한복음 1:1-2,14/ KJV화중광야역)

    1:1-2,14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The same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 (John 1:1-2,14/ KJV).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다. 그 분은 천사들, 우주와 인간의 창조 이전에 하나님과 하나의 영원한 역사를 소유하셨다. 여기서 놀라운 진리는 '그 말씀이 살이 되었다'(The Word was made flesh)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 말씀'이 살(창세기 2:23/육신이 아님)이 되어야 했는가? 어찌하여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야 했는가? 하나님으로서 그 분은 온 인류의 창조자이셨다. <에베소서 3:9>에, '우리 모두가 믿음의 하나됨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됨에 도달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밝히 드러나 있다. 예수님이 한 인간으로 나셨을 때, 우리의 창조자로서 그 분은 생명은 온 인류의 생명들 보다 더 크셨다. 죄를 지고 죽음의 형벌에 이르게 된 것은 인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은 인간 죄에 대한 형벌로서 인간의 죽음을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우리의 창조자로서,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들에 대한 값을 죽음으로서 그 값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하신 인간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의 '그 하나님'(The God)이셨다. 그 분은 <출애굽기 3:14>에서 모세에게 'I Am'(나이다) 라고 밝히셨다. <이사야 57:15>에서, 그리스도는 '높고 우뚝 솟은 분'(High And Lofty One)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현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한 분 하나님의 그 죽음'(The Death Of One God)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그 피가 얼마나 귀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9:11-15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러한 건물이 아닌 더 크고 더 온전한 성막을 통하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황소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도 불결한 자들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켤케 함으로써 거룩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없는 자이신 하나님에게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런 연유로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니,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로 그 영원한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라. (히브리서 9:11-15, KJV화중광야역).


'그리스도의 능욕을 이집트의 보화들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음이라. 믿음으로 그는 왕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으니, 이는 그가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견디었기 때문이라.' (히브리서 9:26-27). 본 성경기록들도 깊이 연구하라.


4) 부활을 열어 놓으셨다


구원받은 자의 보상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천국 용어는 부적절함) 안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성경 속 어느 곳이든 인간이 '하늘'이 약속되어 있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후 생활은 '죽은 자들로부터의 한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예수님은 그 분의 제자들에게 알리셨다:

    11:25 내가 그 부활이요 그 생명이라. (요한복음 11:25, KJV화중광야역)


<요한복음 5:25-29>에서 예수님은 담대하게 부활을 언급하신다. 그리스도는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해서 죽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능력과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다. (요한복음 11장). 이처럼 그리스도가 첫 번째 이 땅에 오신 목적 가운데 그 네 번째는 인류를 향하여 부활을 열어 놓으시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구원은 부활을 통하여 이르게 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마스터 플랜'(인류구속계획)에 의하면, 구원을 위한 하나의 '타임 오더'(time order/시간의 순서)가 존재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풀어 준다:

    15:20-24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셔서 잠들었던 자들의 첫열매들이 되셨느니라.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같이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각자 자기의 서열대로 되리니 그리스도가 첫열매들이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때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그 후에는 끝이 오리니 주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폐하시고 그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바칠 때라. (고린도전서 15:20-24, KJV화중광야역).

    15:20-24 But now is Christ risen from the dead, and become the firstfruits of them that slept. For since by man came death, by man came also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For as in Adam all die, even so in Christ shall all be made alive. But every man in his own order: Christ the firstfruits; afterward they that are Christ’s at his coming. Then cometh the end, when he shall have delivered up the kingdom to God, even the Father … (1 Corinthians 15:20-24, KJV).


여기서 놀라운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가족의 '그 유일하신 맏아들'(The Only Firstborn Son)이시라는 점이다. (로마서 8:29):

    8:29 따라서 그 분(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위하여, 그 분이 자기 아들의 모습과 같게 하시려고 미리 정하셨으니(영원을 위해), 이는 그 분(예수 그리스도)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첫태생(죽은 자들의)으로 존재시키기 위함이니라. (로마서 8:29, KJV화중광야역)

    8:29 For whom he did foreknow, he also did predestinate to be conformed to the image of his Son, that he might be(unto His being) the firstborn among many brethren. (Romans 8:29, KJV)


구원은 부활을 통과하지 아니하고서는 이루지 못한다. 이 부활은 죽은 자들로부터의 일으켜짐이요, 하나님은 독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부활의 첫태생(첫열매)이 되게 하시려고, '미리 아신 형제들'(참십일조)을 미리 결정하신 것이다.

소위 신학에서 거론하는 '예정론'과 '택정론'은 금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미리 결정하셨다는 의미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로마서 8:29: 11:2> <사도행전 2:23> <베드로전서 1:2> 안에 언급되어 있는 이 '미리 아심'이란 말씀들은 분명 다른 성경기록 안에서 해답을 얻을 것이다.

그 한 예로서 <시편 1:6>을 인용한다:

    1:6 따라서 예호바가 의인들의 그 길을 아시니, 오직 불법한 자들의 그 길은 헛 것에 이를 것이다. (시편 1:6, KJV화중광야역)


하나님이 불법한 자의 길을 알지 아니하심은 그들의 거절에 기인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7:23; 25:12). 그러나 그들을 아신다 함은 '주님이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아심' (디모데후서 2:19)이라는 곧 그들을 '택하심'(ELECTION)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창조 보다 먼저 나신 분'(골로새서 1:15)이시지만, 본절에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골로새서 1:18)이시다. 본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마침내는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족 형상을 지닐 때까지 우리 속에 있어야 하는 점진적인 변화이니, 곧 '영광스런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부활을 통하여 그 하나님의 가족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부활하신 후, 예수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0:17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나의 아버지시요, 너희 아버지이시며,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시오, 너희 하나님을 향하여 올라간다고 말하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20:17, KJV화중광야역)

    20:17 Go to my brethren, and say unto them, I ascend unto my Father, and your Father; and to my God, and your God. (John 20:17, KJV).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아버지 하나님은 한 가족을 갖는 것에 그리도 좋아하신다.


5) 자신의 모임(회중)을 세우셨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마지막 다섯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모임('교회' 용어는 부적절)를 세워서 그 분 아래 다스리도록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분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16:18 내가 나의 모임(에클레시아)을 세우겠다. (마태복음 16:18, KJV화중광야역)


예수 그리스도는 그 분의 모임은 항상 존재한다고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의 모임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보는 모든 서로 다른 분파들(교파들)을 포함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나님은 혼돈의 주관자가 아니심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고린도전서 14:33). 그분은 동시에 한 모임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또한 그분은 그 모임은 하나의 거대한 조직은 되지 않으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12:32 적은 무리야,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그 왕국을 주시는 것이 너희 아버지의 참된 기쁨이니라. (누가복음 12:32, KJV화중광야역)


당신은 하나님의 참다운 모임을 정해야 한다. 모임의 목적은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심과 직접 연결된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자신의 다스림을 다시 세우려고 하신다. 그리스도가 모임을 세우신 것은 다시 이 땅에 오실 때 자신과 함께 다스릴 지도자들을 훈련시키시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신약에서의 모임'이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첫 열매들'이라 불리운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훈련을 받고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참다운 백성은 훈련상 왕들이요 제사장들이라고 강조한다:

    1:6 하나님 그의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신 그분께 영광과 권세가 영원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요한계시록 1:6, KJV화중광야역)

    5:10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셨음이니, 우리가 땅 위에서 통치하리이다. (요한계시록 5:10, KJV화중광야역)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역과 노력과 연구이다. 그것은 마치 흥미를 유발하고, 도전하고 그리고 보상을 받는 일이다.

바울은 히브리인들이 선생들로서 훈련을 받음에 뒤로 처진다고 비평하였다:

    5:12 그 때로 보면 너희가 마땅히 선생들이 되었어야 할 터인데 이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원리들이 무엇인지를 누군가가 너희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니, 젖이 필요한 사람들이지 단단한 음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되지 못하는도다. (히브리서 5:12, KJV화중광야역)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의 종교 생활이 다가오는 두려움의 미래를 예비하는 하나의 훈련의 근원인가? 아니면 한낱 존재 자체가 아무런 의미없는 진부하고 짜증나는 행동들인가? 당신의 종교는 의미있어야 하며, 감동이 있어야 하며, 성공을 거둬야 한다. 당신에게는 우선 첫 단계들을 확신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런 후에야 하나님이 당신의 노력들에 복을 주실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다섯 가지 목적들을 개략하였다. 이것에 만족하지 말고 더 깊이, 더 많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그 시간을 바치겠는가?

마지막으로 그 어떠한 영지주의 복음으로는 하나님이 그 분의 성경을 통해서 전하시고 하는 그 깊이를 절대 깨달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Created/20070728> <Modified/20101216> <Updated/201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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