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 - 바울의 로마순교여행 3] 이제 당신도 사도 바울처럼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글/ 정재선 목회자

[다음주제예고] 사도 바울의 복음전도여행은 과연 몇 차례 이루어졌는가요? 일반적으로 'Bible Study'에서는 3차까지 이루어진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복음전도여행이 있었음을 필자는 성경기록을 통하여 밝혀낼 것입니다!! (2009.11.7)


[제2부에서 계속됨/보기]


2.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다 (사도행전 28:1-31)


1) 바울 일행이 피신한 곳이 멜리데 섬이었다. (사도행전 28:1)

①원주민들이(the barbarous people:the Barbarians =로마서 1:14) 적지 않은 호의를 베풀다. (2절)

2) 한 가지 기적이 일어나다. (3-10절) (마가복음 16:18 참조)

①바울이 나뭇가지 한 다발을 모아, 불 위에 놓으니 그 열기로 독사 한 마리가 나와 그의 손에 달라 붙더라. (3절)

②원주민들은 바울을 살인자로 확신하다. (4절)

③바울은 그 뱀을 불 속에 떨어 버렸으나 아무런 해도 입지 아니하다. (5절) 원주민들은 그를 '신'(神)이라 말하다. (6절)

3) 바울이 멜리데 섬의 우두머리 보블리오의 아비와 병든 자들을 손을 얹어서 고치다. (7-9절)

4) 바울이 로마로 향하다(11-31절). 다시 남풍(순풍)이 불다.

①멜리데 섬에서 석달을 지낸 후, 알렉산드리아의 배 '가스도-볼룩스호'를 타고 수라구사에 도착, 3일을 머물다. (11,12절)

②레기움에 이르러 하루를 지내니, 남풍이 불므로, 그 다음날 보디올에 이르다. (13절). 여기서 7일 머물고, 로마로 향하다. (14절)

5) 로마의 형제들이 바울의 일행을 맞으러 압비오 광장과 세 여관이 (Three Taverns)있는 거리까지 나오니,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용기를 얻더라. (15절)

6) 로마에 다다르니, 백부장 율리오가 죄수들을 호위대장에게 넘겼는데, 바울에게만 자유를 허락해주다. (16절) (비교. 사도행전 27:3)

7) 바울이 그곳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을 청하여 자신의 죄가 없음을 말하면서, 부득불 가이사에게 상소하게 된 것은 유대 민족을 고소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설명하다. (17-19절)

8) 바울은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인하여' 죄인이 되었다고 한다. (20절)
(비교. 마태복음 5:10) '이스라엘이 열망하고 소망했던 그 메시야'.

9) 로마의 형제들은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여기서는 '이 파에 관하여는'이라고 자백)에 관해서 듣기를 원하다. (21,22절):

    ①바울이 온 종일 모세의 율법서와 선지서들을 인용하면서 예수님과, 하나님의 그 왕국을 증언하다. (23절)

    ②그들이 일부는 받아들이고, 다른 일부는 받아들이지 못하니 의견 대립이 생기다. (24,25절)

    여기에서 바울이 담대하게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복음이 ('그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보내졌고, 그들이 그것을 듣게 되리라는 것이라.')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그 뜻'(the Will of God)을 선포하게 된다. 이것이 로마 여행의 키포인트 이면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13:13,14>에서 하신 말씀이 바울에 의해서 다시 한번 증거되는 중요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그 예언은 과연 무엇인가? <이사야6:9-10>의 말씀이다: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들으나 깨닫지 못할 것이요, 참으로 너희가 보나 알지 못하리라. 하라. 이 백성의 마음으로 살찌게 하고, 그들의 귀로 둔해지게 하며, 그들의 눈으로 감기게 하라. 그리하여 그들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며, 돌아서지 못하게 하고, 고침 받지도 못하게 하라.'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심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신약에는 모두 7회 인용되었는데(마태복음 13:14, 마가복음 4:12, 누가복음 8:10, 요한복음 12:40, 사도행전 28:26,27, 로마서 11:8), 다음의 세가지 인용은 커다란 시대적 위기(dispensational crises)를 맞았을 때 엄숙하게 인용된 것이다:

    (1)마태복음 13:13,14=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한 음모가 있는 날, 여호와로부터 임하사, 그리스도께서 인용하신 말씀이다.

    (2)요한복음 12:40,41=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음모가 있은 후에  메시야로부터 임하사, 그리스도께서 인용하신 말씀이다.(요한복음 11:53. 비교. 12:37)

    (3)사도행전 28:25-27=
    한 동안 낮에 가르쳐도 이방인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성령님으로부터 임하사, 바울이 인용한 말씀이다.

10) 바울이 자기 셋집에서 꼬박 2년을 거주하면서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의 그 왕국을'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들을' 가르쳤다. (29-31절)


바울의 로마순교여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이 로마순교여행에 앞서 바울은 3차례 복음전도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각 복음전도여행 때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선포한 메시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1차 복음전도여행(사도행전 13:1-14:28)
에서는 바나바와 동행하였고, 밤빌리아와 갈라디아 지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도 죄들의 용서함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2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분을 통하여 너희에게 죄들의 용서함이 선포되었도다.'

2차 복음전도여행(사도행전 15:36-18:22)에서는 실라가 동행하였고,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31):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얻으리라.'

3차 복음전도여행(사도행전 18:23-21:17)에서는 밀레도 지방에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전도를 마치 경주에 비유하면서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그의 결의가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24):

    '그러나 기쁨으로 나의 달려갈 길과 내가 주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역, 곧 하나님의 그 은혜에 관한 그 복음을 증언함을 다 마칠수만 있다면, 이런 일들이 나를 개의치 못할 것이요, 나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이상은 성경연구(Bible Study)에서 통설로 인정하는 것이나, 필자는 사도 바울의 복음전도여행이 3차례 이상이었음을 다음 주제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에서 밝힐 것입니다.

이제는 바울의 로마순교여행에서의 그 주제를 살펴보고,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사도행전 19:21-26:32)은 그의 3차 복음전도여행을 마친 시점에서 사도들을 만나고, 이번에는 특히 가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빈곤한 교우들을 위한 적지 않은 구제금을 전달할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라 보이지만(로마서 15:26,27), 그러나 그의 중심에는 그의 복음전도 및 선교의 마지막 생애를 거는 크나큰 야망을 성취코자 하는 계획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가슴 속에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복음선교의 야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그의 복음선교의 종착지는 필연코 로마에서라고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이는 로마는 그 당시 세계의 중심지라는 입지조건에다 지도자에 의한 복음사상의 기반이 없이 모여드는 신자들에 의해서 조성된 자연발생적인 교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허락되면 스페인(서반아)까지 갈 생각이었습니다(로마서 15:22-24).

그는 이러한 확고한 계획 아래 고린도에서 '휘비'(Phebe=헬라어 포이베)를 통해서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로마서 16:1-2). 이른 바 <로마서>를 언급합니다. 이 편지는 네로 통치 4년째인 주후 57년에 쓰여졌는데, 3차 전도여행 중(주후 53-57년)에 에베소를 떠나(사도행전 20:2,3), 고린도 안에 머무는 동안에 기록되었으며, 그 근거는  바울이 마게도냐를 2차로 살피러 갔을 때, 그 곳의 사람들이 예루살렘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교제하기 위하여 기부한 얼마의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아가야를 거쳐 고린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또한 <로마서>는 겐그리아에 머물면서 겐그리아교회의 한 종인 자매 휘비 편에 로마에 전달한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에만 <로마서>가 휘비를 통하여 보내졌음을 명기하고 있습니다(위 사진 하단참조):

    '고린도로부터 로마인들에게 써서,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종 휘비 편에 보내다'(Written to the Romans from Corinth, and sent by Phebe servant of the church at Cenchrea)

여기서 바울은 휘비를 '보필자'(succourer)라고 소개합니다. <로마서 16:1-2>입니다:

1

내가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한 종인 우리 자매 휘비를 너희를 위하여 떠나 보내니,

I commend unto you Phebe our sister, which is a servant of the church which is at Cenchrea:

2

너희들이 성도들이 된 듯이 그 여자를 받아들이고, 그 여자가 무슨 일(말씀전도)에서든지 너희를 필요로 하면, 너희는 그 여자를 도우라. 이는 그 여자가 여러 사람들과 내 자신에게도 한 보필자가 되어 왔음이라.

That ye receive her in the Lord, as becometh saints, and that ye assist her in whatsoever business she hath need of you: for she hath been a succourer of many, and of myself also.


'휘비'에 관하여 우리에게 소개된 성경기록들은 위 두 구절 뿐이요, 그리고 바로 위에 언급한 대로, <로마서> 맨 마지막 끝에 <로마서>가 그 자매에 의해서 보내졌다는 기록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첫째로, 바울이 소개한 '휘비'는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한 종, 즉 교회의 한 지체였습니다.

아래쪽 지도를 보면, 그 당시 그리스 반도는 크게 두 곳으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북쪽은 '마게도냐'라 불리웠고, 그 안에는 '데살로니가,' '빌립보,' '베레아' 등의 성읍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은 남쪽 지역인데, '아가야' 혹은 '그리스'라 불리웠습니다. 여기에 '고린도 모임'이 있었으며, 고린도로부터 남동쪽으로 해변가에 작은 '겐그리아 성읍'이 위치하였으며, 그 곳에 '휘비'가 속해 있는 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겐그리아에 있는 이 모임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를 그의 선교 중심지로 만들었을 때 세워졌음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선교사역의 정책이었습니다. 일정한 곳에다 선교사역의 중심지를 확보한 후에, 그 곳을 거점으로해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하여 주변 지역으로 펼쳐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으면, 바울이 아시아 전지역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하기 위하여 '에베소의 성읍'에다 전력을 부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의 경우도 같습니다. 고린도는 아가야 지역의 전역에 복음을 들려주기 위한 선교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열매가 바로 고린도 안에 뿐만 아니라, 겐그리아 안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사실상, <사도행전 18:18>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안에서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겐그리아에 머물며, 그가 하나님께 서원하였던 바, 그의 머리를 깎은 일이 있었습니다.

둘째로, '휘비'는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한 지체였음은 물론, 재물이 상당한 자매였습니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바울이 '이는 그 여자가 여러 사람들과 내 자신에게도 한 보필자가 되어 왔음이라.'(로마서 16:2)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휘비'는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한 지체였지만, 그 여자는 '일'(말씀전도)이 있어 로마로 여행하였고, 사도 바울은  로마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 여자가 무슨 일(말씀전도)에서든지 너희를 필요로 하면', 그 여자를 도우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는 거의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서>는 '휘비'에 의해서 고린도로부터 로마로 전해졌다고 교회가 말해 왔음이며, 바로 <로마서 16장> 제일 하단에 기록된 노트을 보고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킹제임스성경>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고린도로부터 로마인들에게 써서,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종 휘비 편에 보내다'(Written to the Romans from Corinth, and sent by Phebe servant of the church at Cenchrea)

따라서 '휘비'는 바울이 기록해두었던 <로마서>를 전한 것이 분명합니다.

셋째로,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우리 자매'(our sister)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곧잘 형제들이요 자매들이라 불립니다. 이것은 그 '회중/모임'이 하나님의 한 가족(A Family of God)으로 구성됨을 나타냅니다. 부모들과 자녀들이 있는 우리의 땅에 속한 가족들 안에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교회 안에서 드러나는 영적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 가정 안에서는 하나님이 '그 아버지'(the Father) 이십니다. 이는 우선적으로 그 분이 택하신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자기의 아들들과 자기 딸들로 입양(adoption) 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 분이 중생(거듭남)의 역사를 감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가족에서는 그리스도가 맏형제이니, 이는 하나님의 계획하심 안에서 그리스도가 첫태생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먼저 나심은 모든 그 분의 형제들과 자매들이 따라오도록 그 길을 예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첫태생으로서, 그 분의 아버지의 모든 소유의 상속자이십니다. 첫태생으로서, 그 분은 자기 형제들의 주(the Lord)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은 형제들이요 자매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한 가족에 속합니다. 따라서 믿음의 한 가족에만 형제들과 자매들이 있게 됩니다. (PHEBE: AN EXAMPLE FOR THE CHRISTIAN WOMAN /Prof. Herman Hanko).

따라서 <로마서 16장>에서 '휘비'가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의 한 종이었다고 한 것은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렇다면 그 여자가 어떻게 해서 한 종이 되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그 사실을 자세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울은 그 여자가 한 종이었다고 말하면서, <2절>에서 '그 여자가 여러 사람들과 내 자신에게도 한 보필자가 되어 왔음이라.'고 한정시킵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 갖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

    첫째, 겐그리아에 있는 그 교회는 바로 '휘비'의 집에서 모였다. 그 교회가 자립해서 한 건물을 소유할 때까지 그 여자가 그 교회를 위하여 숙소들을 제공하였다.

    둘째, 겐그리아는 고린도 보다는 해안에 가깝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고린도를 출입하는 한 성읍이었다. 그리하여 '휘비'는 겐그리아의 항구를 출입하는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자기 집을 개방하였고, 여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필요들을 돌보면서 자기 집을 일종의 숙소로 제공하였다.

    셋째, 하나님을 섬기는 여자들이 그리스도를 보필하였듯이, '휘비'도 사도 바울의 필요들을 돌보아 준 것이니, 곧 바울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였고, 그가 필요한 물질을 제공하였다.


여하튼 휘비는 '여자 집사'(deaconess)요 '돕는자'(a helper)로서 알려졌습니다. 그 여자는 부유하였으며, 바울의 사역을 '보필했습니다'(helped support). 그 여자는 존경을 받았으며, 초대교회 때 교회내에 여자의 역할이 막중하였음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살았던 마을 겐그리아(Cenchrea)는 고린도로부터 10Km에 위치한 고린도 동쪽항구였습니다(그림 오른쪽). (Life Application Bible: King James Version, Tyndale House Publishers, p.1990).

바울이 로마에로 가기를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로마서>가 이미 2년전에 보필자 '휘비'를 통하여 로마 안에 전달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그 곳에 복음을 갈망하는 성도들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에 확신함으로써, 3차 전도여행을 다녀온 후 죄인의 몸으로 가이사랴에서 2년간 옥중에 갇혀 있다가 주후 59년 10월에(사도행전 27:9) 로마에로의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이 로마여행의 견인차 역할을 한 분이 바로 휘비였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사역자 휘비는 <로마서>를 전달한 자에 불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전도사역을 위임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사역자였습니다. <로마서 16:2>입니다:

    '그 여자(휘비)가 무슨 일에서든지 너희를 필요로 하면, 너희는 그 여자를 도우라.'

위 본문에서 '무슨 일에서든지'라 함은 아주 막중하고 신중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말씀증언'(saying)을 가리켜서 'business' 혹은 'thing'(사도행전 5:4 참조) 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휘비'는 단순히 <로마서>를 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고, 바울이 2년 후에 로마에 도착하기 까지, 바울에게서 보고 들은 바 <로마서>에 관하여 로마 안에 있는 형제 자매에게 증언했을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휘비'는 바울의 보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됩니다. 주후 60년에 로마에 도착한 지 3일 후에 로마 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모아, 자기가 로마에 오게 된 연유를 해명하는 중에, 그들은 바울에 관하여 전혀 들은 바도 없고 아는 바도 바도 없다고 말합니다(사도행전 28:17-21). 그렇다면 휘비는 이미 2년전에 로마에 와서 과연 누구에게 <로마서>를 전달했을까요? 아무튼 휘비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귀하게 쓰신 복음전도의 도구로서, 로마를 출발점으로 하는 세계 선교의 교두보 역할에 일조한 숨은 일꾼이었습니다. 이것은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휘비는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후 2년간 머물면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그 왕국을 선포한 후에, 주후 63년에(사도행전 28:30) 4차 전도여행(로마-->그레데-->밀레도-->골로새-->드로아-->빌립보-->고린도-->니고볼리)을 떠나기 전까지 바울을 보필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주후 66년에 5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 안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투옥됩니다. 여기서 그는 <디모데후서>를 기록합니다(디모데후서 2:2). 그리고 그 후 얼마 안 있어(주후67년) 그는 순교당합니다(디모데후서 4:6). 바울의 4차, 5차 전도여행에 관해서는 차후에 기회가 주어지면 밝히고자 합니다.

다시 결론으로 돌아와서 언급합니다.

특히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 안에서 바울은 로마에로의 전도여행을 결심하였습니다. 고린도로부터 로마로 직행함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들렸다가 로마로 가기로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9:21> 입니다:

21

이 일들이 끝난 후에,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쳤을 때,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영 안에 작정하여, 말하기를,  '내가 거기에 들른 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였다.

After these things were ended, Paul purposed in the spirit, when he had passed through Macedonia and Achaia, to go to Jerusalem, saying, After I have been there, I must also see Rome.


이처럼 자신의 확고한 계획아래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로마서>를 써서 보필자 '휘비'를 통하여 로마교회에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고린도에서 로마로 직행하지 아니하고, 시간적으로 거리상으로 3배나 더 걸리는 로마여행을 계획하였을까요? 이는 단언할 수 없지만, 자신의 사적 입장에서 보다는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의 공인된 환송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견해는 자칫 성경을 오해할 여지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바울은 '영 안에 매임바 되어'(bound in the spirit) 예루살렘으로 가며,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다만 3차례 전도여행을 통해서 깨달은 바는, '결박들과 고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bonds and afflictions abide me)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22-23>입니다:

22

그리고  이제 보라. 내가 영 안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노니, 거기에서 내게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없도다.

And now, behold, I go bound in the spirit unto Jerusalem, not knowing the things that shall befall me there:

23

그러나 다만 성령님께서 각 성읍 안에 증거하사, 결박들과 고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Save that the Holy Ghost witnesseth in every city, saying that bonds and afflictions abide me.


그리하여 바울은 그의 로마전도여행의 꿈은 실현되긴 했으나, 자유의 몸이 아닌 천신만고 끝에 '죄수의 몸'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바울의 선교의 열정을 배워야 합니다. 그가 소명받은 이래(사도행전 13:1-4), 그렇게도 줄기찬 박해에도 굽힐줄 모르고, 3차례 전도여행을 통해서 거둔 그 눈부신 업적은 '그의 속사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심'이라는 이 한 마디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사도행전 20:22-24 참조). 지금도 우리 속사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시면, 여하한 고난과 어둠을 파헤치고 나올 수 있으며, 두려움이 없어지며, 담대하게 주님의 복음을 증언하게 됩니다.

과연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과연 바울처럼 선교, 즉 순교의 열정을 가지고 사역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요? 이 나라가 이렇게 혼돈 속에 빠져가는데도, 교회는 잠자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전하셨고(요한복음 10:12-13), 바울이 예견하였던 것처럼 교회 안에 누룩과 이리들이 득실거리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0:29). 우리 화중광야(시편 119)의 <르빠우오> 곧 <바울의 배>는 바울이 로마로 가서 순교하였듯이, 이 나라 마지막 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작은 불꽃'이 전국 방방 곡곡에 번져서 참하나님의 말씀(킹제임스성경)으로 죽어가는 혼들이 소생하고(창세기 45:27. 시편119), 깨닫는 회개와 각성이 일어나도록 주님이 맡기신 복음전도사명을 다하겠습니다.

1998년 2월 20일 한국 개봉을 통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영화가 있습니다. 제작비 2억 8천만불에다,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영화 '타이타닉'(TITANIC)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필자가 이 영화를 인용하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20세기 영국이 세계적으로 안전성을 뽐내며 자신만만했던 초호화 여객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배가 첫 출항 후 얼마 안되어서 파선되었고, 수 천명의 목숨을 침몰시킨 인간 교만과 자랑의 극치가 보여준 산물의 교훈이 되어서 잠시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1912년 4월 15일 새벽 2시 20분. 승선자 2,223영중 1,512명이 대서양 속으로 수몰된 아수라 장면이 연상됩니다. 공기 탱크 3개가 있어서 한 개만 있어도 전혀 가라앉지 않으리라 자랑하였던 타이타닉! 그러던 그 배가 수 많은 호화 부유층 승객들을 싣고서 4월 14일 밤 11시 40분! 그 배는 빙산(氷山)에 부딪치고 맙니다. 이 부딪침이 공기 탱크의 측면을 갈라놓고 말았고,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곳의 철판의 구조물이 제대로 혼합되지 못하여(영화 '타이타닉 어떻게 만들어졌나' /1998. 8. 30 EBS 방영) 수압을 견뎌내는 내구력이 약해져서 그 철판이 갈라짐으로 해서, 배 안에 물이 스며들기 시작하였고, 그 수압을 이겨내지 못한 배는 끝내 사고 약 2시간 40분 만에 대서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보다 극한 상황에서도 구원받았습니다. 바울이 떼어준 그 빵,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듣고, 그대로 믿은 바, 목숨을 잃기 직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외관상으로 이 배는 알렉산드라의 배요, 선주와 선장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배를 '바울의 배'라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을 싣고서, 생명을 싣고서 떠난 배였습니다. 사탄이 '바람'을 이용하여 아무리 가로 막고 방해했어도, '바울의 배'는 주님이 보호하셨고, 인도하셨기 때문에, 목적지인 로마에 무사하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7:24>입니다: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너는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들 모두를 네게 주셨느니라.

Fear not, Paul; thou must be brought before Caesar; and, lo, God hath given thee all them that sail with thee.


이 배의 선장은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이 배는 무겁지 않습니다. 이 배는 가볍습니다. 무거운 세상의 짐! 음식, 곧 세상의 곡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에서 비롯된 육적인 소욕을 완전히 내던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38>입니다:

38

그들이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후, 배를 가볍게 하려고, 곡식을 바다 속에 던지더라.

And when they had eaten enough, they lightened the ship, and cast out the wheat into the sea.


모든 세상의 짐! 그 어떤 풍랑이 닥쳐도 능히 견뎌 냅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 볼 때, 백부장 율리오가 선주와 선장의 의견을 따른것은 당연합니다(사도행전 27:11).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의도대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배는 바로 '죽음의 배'였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의미는 깨달을 수 없지만,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직접 항해하는 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이사랴를 출항 할 때의 배는 '아드라뭇데노'라는 배였습니다. 그리고는 아시아 해안을 따라 출발하였고, '무라'에 도착하였을 때, 로마로 항해하는 배를 발견하고는, 백부장이 일행을 모두 그 배 안에 태웠습니다. 역풍, 즉 맞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 불어오는 역풍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강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가기를 원하는 방향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사탄의 방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 선포됨은 자명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3:11). 바로 이 바람이 우리의 길을 완전히 바꿔놓고 맙니다. 그런데 그 배는 바로 '알렉산드라에서 온 배'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어떤 영적인 의미일까요? '변질'의 근원지를 상징합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도한 후, 주후 1세기 전후해서 성경이 본격적으로 기록됩니다. 그런데 사탄이 이것을 방치할 리 없습니다. 주후 185년에 사탄은 오리겐(Origen)을 내세워, 알렉산드리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변질'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불러서 선포케 하신 '안티오크' 교회가 전해 온 '그 성경'을 보존해오고 계십니다. 전자를 가르켜 '알렉산드라계열'이요, 이것은 '짧을수록 믿을만 하고, 오래된 것 일수록 권위가 있다'(shorter the better, older the better)는 원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소수사본계열'이라 칭합니다. 그리고 후자를 '다수사본계열'이라 칭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두 뿌리'(사진 왼쪽/박만수. 안티오크. 1992)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자는 UBS(연합성서협회)를 중심으로 해서 'NIV'가 앞에 나서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 나라 100여년의 번역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글개역본>이 이 알렉산드리아계열에 속해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물론 <킹제임스성경>은 '안티오크계열'의 다수사본계열에서 그 뿌리를 찾게 됩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역사적 사실은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밝힐 예정입니다.

이처럼 이미 사탄은 알렉산드리아의 배를 이용하여서, 바울을 통해서 세계 중심지 로마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선포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감지 한 후, 어떻게 해서라도 그 참복음을 '혼란'시키려고 성경을 '변질'에 대한 예표가 주어진 현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보존하신 바(시편12:7), 지금도 참성경인 <킹제임스성경>은 계속 읽혀지고 있으며, 파헤쳐지고 있습니다(요한복음 5:39).

저희 <화중광야 가족>은 이 <참복음전도 문서사역>을 계속하겠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가 참 성경신자는 아닙니다. '킹제임스성경 유일론'(KJV Onlysm)에 빠진 자들이, <킹제임스성경>을 마치 '만병통치약'으로 겉포장식으로 퍼뜨려 놔서, 우리 같이 오직 <참말씀>을 파헤쳐서 풀어 전하고 있는 '화중광야'에는 그들이 여간 방해되는 '암적'(?)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12년간의 인고 끝에 빛을 보게 된 <킹제임스성경 창세기 한글번역>도 '간사한 마귀의 속임에 넘어간 한 형제'의 배도로 인하여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올바른 성경 번역의 사역을 중단시키지 않으셨고, 계속해서 용기와 담대함을 주셨기에, 성경번역 사역은 계속됩니다.

어째서 나쁜 사건은 잘들 기억하고, 좋은 소식을 파헤쳐서 바르게 전해주는 데는 보고 듣고 깨달음이 그리도 둔하고 부정적인지 모르겠습니다. 툭하면 '이단'이니, '사이비'니 내뱉는 그들의 독설(혀)를 주님이 어찌 방관하시겠습니까? 아주 극단론적인 이 민족성이 지니고 있는 이 못된 악습으로 인하여, 말로써 얼마나 죄를 짓고, 말로써 얼마나 살인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핍박입니다. 독설로써 살인하는 시대입니다. 아는 자가 배도하고 배반하기를 밥먹듯이 하는 시대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믿을 자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진정 가짜가 진짜마냥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의 설 자리는 핍박받으며 비록 좁을지언정, 실망하지 아니함은 <참말씀>을 주님이 보존해 오셨고,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그 무시무시한 암흑의 종교핍박 중에서도 이 참성경은 보존되었고,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습니다. 사탄의 음모를 더 이상 감추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만들도록 허락하셨고, 지금은 옛날에 숨겨져 왔던 모든 위조되고 날조되어 온 인간 역사가 하나 하나씩 벗겨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탄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 한 예가 미국대륙을 컬럼버스가 발견했다는 역사가 위조된 것임이 밝혀진 사실입니다. 본 주제글 첫페이지에 보시면, 존 카봇(John Cabot)이 발견한 것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서 다시 오실 때가 멀지 않음을 감지한 사탄은 근래에 들어와서 최후로 발악하고 있습니다. 이 때를 위해서 우리 주님은 미혹에 빠지지 말도록 경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26>:

26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너희를 향하여 말하기를, '보라, 그가(그리스도가) 광야 안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그가 밀실 안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Wherefore if they shall say unto you, Behold, he is in the desert; go not forth: behold, [he is] in the secret chambers; believe [it] not.


그래서 우리 화중광야 가족은 좌절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보고 '기운을 내라!'는 사도 바울의 외침을 들었기 때문입니다(사도행전 27:25):


<고린도전서 2:2> 입니다:

2

이는 내가 너희 중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이 그 나무에 달리신 것 이외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다.

For I determined not to know any thing among you, save Jesus Christ, and him crucified.


이처럼 사도 바울의 전도 열정이 식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당신도 사도 바울처럼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르빠우오> 곧 <바울의 배>는 저희 <화중광야 가족> 모두의 믿음의 간증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출항합니다. 저 멀리 뵈는 본향을 향하여 <유리바다>를 향하여 항해하겠습니다. 저희 <화중광야의 가족>이 한데 모은 시가 곧 작곡되어서 우리의 입술로 불리워지어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샬롬!!



위 간증시를 중심으로 해서 <유리바다>가 작곡되어, <르빠우오>(바울의 배) MR BGM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작곡과 연주는 주님의 사역자 다니엘 정이 수고했습니다.
[앨범명] '광야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The Story from The Wilderness)에도 본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1부/돌아가기] [제2부/돌아가기]

[다음주제예고] 사도 바울의 복음전도여행은 과연 몇 차례 이루어졌는가요? 일반적으로 'Bible Study'에서는 3차까지 이루어진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그러나 그 이상의 복음전도여행이 있었음을 필자는 성경기록을 통하여 밝혀낼 것입니다!! (2009.11.7)



<Created/20031117> <Modified/20060314> <Updated/200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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