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광야구국캠페인] 불어라, 삼파람! [5] 한국 복음화의 그루터기 ㅡ 우리의 간도!!

일제가 팔아먹은 우리 땅 간도(間島)를 되찾아야 한다!!

글/ 정재선 목회자


무릇 인간 역사상에서 벌어진 전쟁의 원인은 영토문제. 종족문제, 종교문제, 이념문제, 자원문제 등 실로 복잡 다양하지만, 거의 모든 전쟁이 '영토'(領土) 문제에 귀결된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구태여 주권 국가의 '영토고권'(領土高權/territorial supremacy)을 들먹일 것도 없이 영토란 것이 얼마나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 인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민족의 북방영토란 우리 민족 삶의 터전이며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였으나, 과거 청나라와 일제에 의해 빼앗긴 연해주와 간도지역으로서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그 일례를 들어, 현재의 백두산은 평안도 묘향산으로 추정되며, 실제 백두산은 중국 하얼빈 동북쪽 만주평야에 있는 핑딩산(平頂山·1429m) 일대라고 한다. 우리 선조가 잃어버린 북방영토의 넓이가 69만㎢로서 한반도의 3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세히보기>.

1905년 11월 17일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 된 을사늑약을 근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해 간 일제가, 남만주 철도 부설과 탄광채굴권을 얻기 위해 1909년 9월 4일 대한제국의 동의나 허락없이 대한제국 영토인 간도일대를 청국에 팔아넘긴 조약이 이른바 '간도협약'(間島協約)이다.

오는 9월 4일이면 日-淸간에 '간도협약'이 체결 된지 만 100주년이 되며, 이 날을 지내고 나면 국제법적 관례상 자동적으로 중국영토로 확정되어, 우리 대한민국은 간도영유권을 영원히 주장할 수 없게 됨으로, 우리가 간도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날이 1주일 밖에 남지 남았다.

1905년 을사늑약(보호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은 이미 입증이 된 바이며, 무효의 조약을 근거로 대한제국 영토를 일본제국이 청국에게 팔아넘긴 간도협약 역시 무효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드디어 일제는 을사늑약 이후 실질적 통치권을 상실했던 대한제국은 곧 일본에 편입되기에 이른다. 일본은 1910년 8월 22일,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을 통과시킨다. 그리고 8월 29일, 이 조약이 공식적으로 표명됨으로써, 조선은 27대 왕조와 519년간 존속을 끝으로 사라졌으며,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다.

한편, 중국은 漢나라의 고조선 멸망, 唐나라의 고구려침공, 元나라의 고려지배, 淸나라의 병자호란 등 끊임없이 정복을 노리던 침략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6.25전쟁에 불법개입, 통일의 기회를 앗아 갔는가 하면, 21C 문명시대에도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우리 한민족의 역사를 도적질하는 나쁜 이웃이기도 하다.


왜 필자는 '간도'를 논하는가?

양인(洋人)을 도와주면 사형에 처해지는 19세기의 조선 국법 때문에 성경번역을 도와줄 협력자를 얻기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1877년부터 시작된 성경번역은 이응찬과 서상륜이 가세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응찬은 1883년에 콜레라로 사망하고 말았지만...

1882년 초에 <누가복음>과 <요안네복음>(요한복음)을 시발로 하여, 1883년에는 두 복음서의 개정본과 <말코복음>(마가복음)과 <맛대복음>(마태복음)이 발행되었다. 1884년에는 <말코복음>(마가복음)과(아래 왼쪽 이미지), <누가복음>과 <데자행적>(사도행전)이 간행되었고, 1885년에는 <로마인셔>(로마서) <코린도전후서> <가라탸셔>(갈라디아서), 그리고  <요안네복음>(요한복음)과 <이비쇼셔>(에베소서)가 합본으로(아래 오른쪽 이미지) 간행되었다. 드디어 1887년(광셔 십삼년)에 이상의 쪽 성경들의 합본인 신약전서 <예수셩교젼셔>가 심양(瀋陽/선양) 소재 '문광셔원' 활판본으로 간행되었으니, 이를 '로스역본'(Ross Version)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예수셩교젼셔>는 한국 최초의 성경의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 역자들 또한 한국 최초의 위클리프(Wycliff)가 되었다.
(金秉喆, '韓國近代飜譯文學史硏究', 서울: 乙酉文化社, 1988, p.38-40.)

필자의 스승이신 김병철 교수님은 이렇게 적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필자가 일부 오류를 지적해 낼 수 있으나(자료 부족으로 야기된 것이기에), 그 당시 1970년대에서는 스승님의 작품 <韓國近代飜譯文學史硏究>은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이 작품을이 성공할 수 있도록 귀한 자료들을 제공해주신 '한국학연구소장' 김근수(金根洙) 박사님과 그 분의 연구를 조력하셨던 심한보(沈漢輔/현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장) 교우님이 이따금 떠오른다. 심 선생 뵌지도 퍽이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The Korea Mission Field>(9권/영인본/30만원?)를 필히 구해야 하기에 필히 만나야 하는데...만나면 실비를 해 주실턴데...혹여 이 글을 보면 얼마나 반가워할까...

 
◆로스역본 - 마가복음 표지(1884) (필자소장본)  

◆로스역본 - 요한복음/에베소서 합본 표지(1885) (필자소장본)


한편, 1885년부터 한국의 닫힌 빗장 문이 열리자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개신교의 선교사들이 입국하였고, 1887년에는 '성서번역위원회'가 새로이 조직되어, 국내에서 성서번역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므로, 로스 선교사님은 구약성경의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다.

아무튼 '로스역본'인 <예수셩교젼셔>는 1900년에 국내에서 '성서번역자회'의 <신약젼셔>가 나와서 <예수셩교젼셔>를 대신하게 될 때까지 이르는 약 18년 동안 '서간도'(西間島) 조선인촌(朝鮮人寸)은 물론 국내 전국에 보급되었으니, '대영성서공회' 조선지부의 사업통계에 보면, 1883-1899년 사이에 198,658권의 우리말 성경이 보급되었다. 레이놀즈(William Davis Reynolds) 선교사는 <로스역본>이 한국교회와 그 후의 한글성경번역에 끼쳐준 영향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이 책은 참말로 한국초대교회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얄팍한 구식 장정의 불완전한 번역의 로스 역본()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오늘의 이 아름답고 훌륭한 성경은 실상은 저 존귀한 로스 선교사님과 메킨타이어 선교사가 신앙과 열성으로 심그고 가꾼 조그마한 묘목으로부터 성장된 것이었다.

    (William Davis Reynolds, 'Bible Translation In Korea', The Korea Mission Field, 1912, Vol.VIII, p.212).
    金秉喆, Ibid., p.39-40.


한국 '모임'(교회)의 전초기지는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선교가 시작되기 이전에 만주 지역 곧 '우장'(牛莊)과 '봉천'(奉天)(심양/瀋陽)과 '서간도'(西間島) 일대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한국인 예배공동체였다:

    '우장'(牛莊)은 한국 '모임'(교회)의 최초 신자를 낳은 곳이요, 최초의 한글성경을 번역한 곳이다.

    '봉천'(奉天)(심양/瀋陽)은 최초의 한글성경을 출판한 곳이며, 최초로 한인 전도자를 선택하여 한국 안으로 파송한 곳이다.

    '서간도'(西間島) 조선인촌(朝鮮人村)은 최초로 한국인 '모임'(교회)이 세워진 곳이다.

    (김양선, 한국의 성서번역사, '성서한국', 대한성서공회, Vo.2, No.2, 1956, p.23.)


간도지역은 '한국 복음화의 그루터기'이다!!

본글의 주제가 '간도'(間島)이기 때문에, 필자는 간도지역이 한국 복음화의 전초기지였음을 약술하고자 한다.

초창기의 성경 번역 과정은 한국인 번역자들이 로스(羅約翰)와 메킨타이어(馬勤泰) 두 선교사들과 함께 한문성경 '문리역본'(文理譯本/Wenri Version)을 읽고 나서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면, 선교사는 그것을 다시 헬라어 원문(Alford 역본)과 대조하여 될 수 있는 대로 헬라어 원문에 가깝게 다듬는 방식이었다.

1878년까지 로스 선교사와 이응찬(李應贊), 김진기(金鎭基), 백홍준(白鴻俊) 공역으로 <누가복음> 초역이 완료되면, 이것을 다시 맥킨타이어가 이들 한인 번역자들과 함께 원문에 가깝게 재수정을 가했다. 성경번역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1879년 5월 로스 선교사가 안식년을 떠날 때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로마서> 원고를 지니고 갈 수 있었다.

1881년 안식년을 마치고 만주로 돌아오기전 까지 영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로스 선교사는 레그(James Legge)와 교류를 갖는다. 1881년 영국에서는 고등비평이론을 적용하여 1611년도 '공인본'(Authorized Version/AV)80)인 <킹제임스성경>을 개역한 세 종류의 '개역본들'(Revised Version)들이 출판되었다 ㅡ Oxford's Reviser's Readings, Cambridge Revised Version, 그리고 Westcott-Hort's Edition. 레그가 로스에게 선사한 개역 헬라원어성경이었다.
<Edwin. Palmer, The Greek Testament with the Readings Adopted by the Revisers of the Authorized Version> (Oxford: Clarendon Press, 1881):

    제 번역본의 저본은 옥스포드의 레그 교수가 친절하게 보내준 개역판 헬라원어 역본입니다. 예전에는 개역본 보다는 시내사본 읽기에 많이 의존했지만, 지금은 옥포드판만을 '전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이 개역본에 수많은 학문과 지혜와 경건을 쏟아 부었으므로,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전에 좋아하던 것을 버리고, 이 저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제 생각에 한글 역본은, 출판되자마자 레그 교수가 제게 보내준 헬라원어와 영어 '개역본'을 저본으로 한 최초의 번역본입니다.

    (John Ross's letter to W. Wright on March 28, 1889. Vol. 24, in The Editorial Correspondence Books, Inwards, 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1880-1897; 옥성득, 이만열(편역), '대한성서공회사 자료집', 제1권, p.132-133.). <안성호, 19세기 중반 중국어 대표자역본에서 발생한 '용어논쟁'이 초기 한글성서번역에 미친 영향 (1843-1911), p.232-233.> 인용.


이처럼 번역 과정에서 헬라원어 성경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인 조력자들이 중국어 성경 '대표자역본'을 가지고 한글로 번역하면, 로스와 맥킨타이어는 헬라원어 성경 및 영어 성경과 대조하여 수정하고, 헬라원어 성경사전 및 주석을 참고하여 어휘의 통일을 기한 후, 수정된 원고를 헬라원어 성경과 대조하여 읽어가면서 마지막 수정 작업을 진행해 나아갔다. 이와 같은 번역과정은 1882년 7월, 로스가 보낸 본국 선교회에 보낸 보고서(United Presbyterian Missionary Record, 1880)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문제[성경 번역]와 관련해서 내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방법을 소개하겠다. 과거 고향의 행정관서에서 서기로 있다가 아편 때문에 해고당한 조선인 학자 한 사람이 최신 중국어 문리성경(文理聖經)을 가지고 번역하고 있다. 나는 그가 번역한 것을 헬라원어 성경영어개역성경을 가지고 자자구구(字字句句) 대조한다. 이 일을 돕는 또 한 사람 조선인 학자가 있는데, 그는 이미 수년 전부터 번역인으로 우리와 함께 일한 사람이다. 중국어를 알 만큼 알았고 번역인으로서 그 번역 실무에 능숙하게 되기는 하였으면서도, 수칭(數稱) 개념이라든지 존칭(尊稱) 개념, 또는 도치법 같은 것들은 명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다. 때론 절이 바뀔 때가 있고, 의미가 뒤바뀐 것도 있으며, 때론 행(行) 전체가 삭제되어야 될 것도 있었다. 이런 식이 되어 처음 번역된 원고는 마치 마마(곰보병)를 앓은 사람 얼굴처럼 되었다. 이렇게 수정된 원고를 다시 깨끗이 정서했다. 그 다음 어휘의 통일을 기하기 위해 헬라원어 성구사전을 가지고 헬라원어를 번역함에 가장 적당한 조선어가 무엇인지를 결정해 나갔다. 그러나 축자적(逐字的) 번역(literal rendering) 보다는 의미와 조선식 관용어구를 채택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조선어에서는 바늘에 귀(耳)는 있어도 눈(目)은 없는 것과 같은 것이 예이다. 이같은 과정이 끝나면 번역 원고를 또 한번 수정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신중하게 헬라원어 성경과 대조하며 읽어 나간다. 이 일을 함에 있어 앨포드(Alford) 편 헬라원어 성경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면, 영어개역성경은 대단히 큰 도움을 주었고 마이어(Meyer)의 주석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Heinrich August Wilhelm Meyer, Critical and exegetical to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1873) <필자주/ 마이어는 신약성경을 각 책별로 주석을 풀이하였다. 따라서 책별로 발행된 연도가 각각 다르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1873년 <갈라디아서>부터 발행하였다.

     
    ◆로스 선교사가 성경번역 처음에 사용한 동류의 헨리 앨포드가 편찬한 헬라원어 신약성경(1856)  

    ◆로스 선교사가 성경번역 중도에 사용한 동류의 웨스트콧트-홀트가 번역한 신약성경 개역(1881)


    헨리 앨포드(Henry Alford)는 저명한 헬라원어 성경학자이다. 그의 헬라원어 신약성경과 영역본이 로스 선교사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하는데...이는 로스 선교사의 큰 과오가 아닐 수 없다. 로스 선교사는 1879년부터 1881년까지 본국에 안식년차 머무는 동안,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전에 좋아하던 것을 버리고, 이 저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라고 고백한 것 처럼, <킹제임스성경>을 버렸다는 증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신약역본인 <예수셩교젼셔>에 이은 구약번역을 막으셨나 보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아니었으면, 그의 구약번역도 발행되었을 터인데...말이다. 아무튼 로스 선교사는 안식년을 마치고 만주로 돌아오는 길에, 웨스트콧트와 홀트가 <킹제임스성경>에 도전하여 개역하였다는 <개역본>(Revised Version/RV)을 가지고 대조작업을 하였다니...웨스트콧트와 홀트가 누구인가?? 필자가 이미 밝힌바 대로, 그들은 예수회 꼭두각시들이었다. 로스 선교사가 사용한 번역 저본인 중국어 성경 <대표자역본>은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그 성경을 저본으로 하여 조선인 조력자들이 그대로 번역해가는 중에...1879년 안식년에 영국에 갔다가...옥스포드 레그 교수와 교제한 것이...(??)어찌하여 그 동안 아내도 죽고, 자식도 죽는 등...그토록 타국에 와서 어려운 역경을 겪어가면서..성경을 조선어로 번역하는 중이었는데...그리고 안식년 마치고 돌아가면 곧 바로 '쪽성경'부터 출간할 계획이었다는데...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전에 좋아하던 것을 버리고, 이 저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오, 맙소사!! 어찌 이럴 수가...필자가 그토록 의혹(?)을 품었던 점이 일순간 풀리는 것이었다. 19세기 중에 서양인 선교사들이 선교차 소지하였던 성경들이 거의 다 <킹제임스성경>이었는데...필자가 1992년부터 유독 존 로스 선교사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기록가운데서는 <킹제임스성경>이란 말을 좀처럼 찾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1998년부터 스코틀랜드 현지로 찾아가서 추적할려고 10년이 넘도록 기도중이었건만...주님은 아직도 필자에게 스코틀랜드 문을 열어주지 않으신다. 과연 존 로스의 정체는 무엇인가?? 앞으로 계속 파헤쳐내야 할 필자의 사명(?)인 것 같다!! 설마, 그럴리(?) 없으시겠지...

 


<누가복음> 최종 번역원고가 완성되어 인쇄에 들어가려고 할 즈음 조선사절단 동지사(冬至使)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돌아가는 길에(위 지도 참조) 봉천소재 '동관교회'(東關敎會)에 들렸다. 이때 로스와 맥킨타이어가 그 원고의 교정을 부탁해, 그가 원고를 서울로 가지고 가서 교정을 완료한 후에는 다른 동지사 편에 그것을 돌려보냈다. 이 사실은 1890년 로스가 이때를 회고하면서 <누가복음>이 출판되기 전 이미 동지사 일행에 의해 '번역원고가 한국의 수도에서 교정되었다'고 밝히면서 알려졌다. 이 사실은 곧 동지사 일행에게 알려졌고, 이 일을 계기로 많은 동지사 일행들이 봉천소재 '동관교회'에 들러서 한글성경의 출판 상황을 견학하게 되었다. 존 로스에 의하면, 이름을 알 수 없지만 그 중의 한 사람은 말과 행동이 매우 민첩하여 한글성경 간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서간도 조선인촌(朝鮮人寸)에 뿌려진 '그 복음의 씨앗'

김청송(金靑松)이란 사람이 있었다(김송청/金松靑이란 설도 있다). 1882년 봄에 그는 식자공일을 하던 사람인데 그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매서인(賣書人=권서인(勸書人) 자격으로 고향인 만주 즙안현(輯安懸/평안북도 강계에서 압록강 건너에 있는)에 있는 조선인 마을로 돌아가 전도하였다. 그는 6개월 동안에 수천권의 한글 복음서와 전도문서를 그곳에 있는 교포들에게 팔았다. 그가 뿌린 성경과 전도문서를 읽은 일단의 사람들이 로스 선교사를 찾아오는 일이 생겼다. 그들은 임오군란 때 변경으로 좌천된 군인들로 즙안현 조선인촌으로 망명한 자들이었다. 그들이 한글복음서와 전도문서를 읽고 믿음이 생겨 찾아왔다는 것이다. 김청송은 봉천(심양)으로 로스 선교사를 찾아가서 그 사실을 보고하였고, 그들에게 밥팀례(세례)를 베풀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서간도 조선인촌(朝鮮人寸)에 이미 많은 신자가 생겼고, 그들은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들의 보고에 크게 충격받은 로스 선교사는 곧 그 곳을 향하여 출발하려 하였으나, 우기()라서 도로가 불편하므로 얼마 기다렸다가 웹스터(Webster) 선교사와 함께 1884년 11월 이 마을을 찾아가게 된다. 영하 20도의 추위를 무릎쓰고 두 주간에 걸쳐 찾아간 그 곳에서 그들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선교사도 찾아간 일이 없는 그 곳에, 한글성경과 전도문서만이 들어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기쁨에 찬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이 비록 한국 땅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조선인촌 공동체였는데, 1884년 75명의 조선인이 밥팀례(세례)를 받았고, 후에 25명이 더 밥팀례(세례)를 받아 주님의 '모임'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金良善, 'Ross Version과 한국 Protestantism', 白山學報, 제3호, 1967/ 김정현, '羅約翰(John Ross): 한국의 첫 선교사', 계명대학교출판부, 1982, p.106-109)

한편, 매서인(賣書人=권서인(勸書人)이란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용어이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이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성경중심적'이고 '자발적 복음 수용'이라는 한국 그리스도교의 특색을 나타내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김청송과 백홍준 같은 개척적인 매서인으로서 전도인들의 활약으로 외국인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만주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 몇 곳에 그리스도인의 '모임'(신앙공동체)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이 뿌린 '그 복음의 씨앗'은 계속적으로 열매를 맺어 훗날 평안도 일대가 상당기간 동안 한국복음화의 중심지가 되는 초석을 놓은 것이다. 특히 1907년에 일어난 평양 '대각성운동'은 그저 우연히 발생된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지역은 어떤 모습인가? 개인의 우상화 최고 지역으로서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붉은 무리들이 북한의 복음화를 막아 버렸다. 이제는 그 닫힌 문의 빗장이 열리게 된다.
아무리 저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을 차단하고 많은 순교자들을 처형하였을지라도, 그 잘라낸 그루터기의 뿌리 만큼은 뽑아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머지 않아, 저 위로부터 '삼파람'(회오리 바람)이 불어 올진데, 거라지들은 날라가 사방으로 흩어져 버릴 것이요, 알곡들 만이 남게 되는 마지막 때가 이를 것이다. (이미지/화중광야 제공). 그러기 때문에, 사탄은 자신의 종말의 비극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영적으로 세계의 중심지가 되는 한반도를 자기 손 안에 넣고 통제할려고 별이별 음모/공작/모사를 다 꾸며봐도 지금껏 100% 성공한 적이 없다. 지나 온 우리 한국의 역사가 이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조선(대한제국) 땅을 통채로 삼켜 버릴 속셈이었던 예수회의 앞잡이 일본제국!! 1907년 예기치 못하였던 영적 대각성운동이 영적 예루살렘 '평양'(평안의 땅/Yerusalaim) 안에서 용원의 불길 같이 일어나자, 일제는 그 발원지가 바로 '서간도' 지역임을 간파하고는, 청 나라에게 남만주 철도건설을 허용받는 조건으로 1909년 9월 4일에 '간도협약'을 맺은 것이다!! 국제법상 100년이 지나면, 그 효력이 자연히 소실된다 하니, 앞으로 1주일이 지나면, 저 간도 우리 땅은 영원히 중국의 동북공정 공작으로 중국의 땅으로 예속되는 '바람 앞의 등잔' 같은 초위기에 놓여 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이 한민족의 애환은 감히 '간도협약'을 무효화시키려는 노력은 없었는가? 어찌 독도는 '우리 땅'이라 하면서 노래도 나오고 해외에다 비싼 돈 주고 광고까지도 하면서...유독 '간도'만은 찬밥처럼 무심한 처지로 변해 버렸는가? 이번엔 이명수 국회의원이 '간도협정 무효화'를 발의한다는 소식이다. 지금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필자의 눈 앞에는 1993년 5월에 백두산(장백산) 인근 마을 안도면을 다녀오면서 보았던 간도지역의 그 풍경들이 아른거려 온다.

이번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을 토로하겠다. 한국 초기 교회사와 관련된 글들이 '신화'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다시 써야 할' 곳이 많다. 저자가 직접 일차 자료로 검증하지 않은 내용은 재생산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전의 역사를 다시 쓰려면 한국교회사의 소위 대가들의 글을 의심하고 비판하고 충실한 사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안목으로 다시 쓰기 바란다. 역사는 책상에 앉아서 기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샬롬.

지금은 세상이 온통 바벨사상에 젖어서 혼란의 연속에서도 멈추질 않는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가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을 찌르고, 세상따라 가지말라고 경고하시는 그 말씀은 무시하고, 이념적 사상인 사탄마귀 미혹의 공산-사회주의 사상과, 타락한 문화 속에서 마귀의 사상을 전달하는 '3S'(Sports/Screen/Sex)를 통해서, 젊은이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영적인 타락으로 인해 육적인 쾌락주의가 만연해있는 현실이다. 하나님 보시기엔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함을 보시고, 그 분은 온역(전염병)과 전쟁과 기근과 지진의 심판을 준비하고 계신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100여년전에 이 땅에는 타국 안에서 번역된 한글성경이 있었다. 이 한글성경 도입은 그 당시 세대에게는 '새로운 생명'(New Life)이었으며, 그 성경의 번역은 자못 관심을 일으키는데, 그 첫 번째 노력은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장로회 선교회 소속의 존 로스 박사와 그의 조력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존스(George Herber Jones) 선교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It should be borne in mind that the Bible is a recent introduction into Korea. It belongs to the new life of the present generation. The history of its translation is of interest. The first effort was made by Dr. John Ross and his associates of the Scotch Presbyterian Mission in Manchuria.

    (George Herber Jones, The Bible In Korea: Or The Formation Of A Nation, Centennial Pamphlet No.13, New York: American Bible Society, 1916, p.6).


이렇게 뿌려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의 씨앗'이 마침내 1917년에 '동간도'에서 싹을 트고 발아하였으니, 그가 바로 한민족의 영원한 시인 윤동주였다!! 어찌 마귀의 집단 일제가 무서워 떨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윤동주는 아무도 모르는, 오직 주님 만이 아시는 그 환경 속에서 1945년에 순교를 당한 것이다. 일본의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해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SBS가 8월 15일 방송한 '그것이 알고 싶다 - 윤동주, 그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에서 일본인 문학평론가 고노 에이지 씨는 '윤동주가 맞았던 주사가 생리 식염수를 수혈하는 생체실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론과 추정 일 뿐이다. 마지막에는 윤동주 기념관 설립운동 분위기로 이끌어가면서 그의 죽음을 '미화'시키는 고도의 얄팍한 일제의 후손들이다. 필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면, 윤동주 시인의 작품 속에 심겨진 그 비밀, 곧 저 혹한의 간도지역에서 '새로운 생명'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의 샘물'을 파내고 싶다!! 그리하면 어찌하여 일제가 그를 비참하게 죽였는지...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겠는가!! 최초의 한글성경 <예수셩교젼서>의 반포가 이렇게 중대한 영적 기초를 다졌음을 특히, 한민족 젊은 세대는 깨닫기를 바란다!! 샬롬!!

◆ (이미지/George W. Gilmore, Corea Of Today, London: Thomas Nelson, 1894. p.101.)

오늘날 젊은 세대에는 생소한 장면이다. 그러나 필자는 어린 시절에 함께 호흡하였던 현장이다. 불과 100여년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은 이리도 어려웠었다. 역사는  흐른다. 역사는 자칫 망각의 강(江)을 이룬다. 그러나 그 흘러내린 흔적은 오늘날 우리 곁에 생생히 남아서, 우리들을 향해 어제를 이야기하고, 오늘을 증언하며, 내일의 비전을 가능케 해준다. 2009년!!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광복 65년을 훌쩍 넘었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99년!! 내년이면 100년을 맞는다. 잊고 싶은 역사이지만, 그냥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임에 틀림없다. 우리 한민족의 가슴에다 비수를 꽂았던 그  잔인한 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역사요, 우리 조국의 소중함을 알고 이를 지켜나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세월이었다. (아래 이미지/ The Bank Of Chosen, Pictorial Chosen And Manchuria, Chosen: Seoul, 1919, p.27).


 

◆일제 한일병합 조인 당사자/초대 통감(統監)  자작(子爵) 데라우찌(1910-1916)

 

◆2대 통감(統監) 자작(子爵) 하세가와 (1916-1919).


이를 위해 국가적으로는 과거사를 제대로 바로잡고 이를 기록으로 공식적으로 남기면서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작업을 해야할 것이다. 여기에는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NHK에서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일병합 100주년 특집>을 작년부터 준비했다고 전해 진다. 이런 움직임에 우리도 국가적으로 그리고 국민적으로 대항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준비를 해야할 텐데...이를 위해 우리 개개인은 우리 역사를 다시 익히고 배워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난 24일 일본 아사히 TV가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 방영했다고 전한다. 분명 저 간사한 일본인들을 무언가 이 한반도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버리지 않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비록 나약한 필자이지만, 저 일본인들이 지난 날 우리 조국에 저질렀던 '강탈음모'는 필자의 손가락을 통해서 반드시 밝혀지고 말 것이다!!


또 다른 고향 - 윤동주(尹東柱)

 

촌 예배당 - 김현승(金顯承)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짖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깊은 산골에 흐르는
맑은 물 소리와 함께
나와 나의 벗들의 마음은
가난합니다

主여 여기 함께 하소서.
밀 방아가 끝나는
달 뜨는 水曜日 밤
肉松으로 다듬은 당신의 檀 앞에
기름불을 밝히나이다

主여 여기 임하소서.
여기 산 기슭에
잔디는 푸르고
새소리 아름답도소이다.

主여 당신의 장막을 예다 펴리이까
나사렛의 主여
우리와 함께 여기 계시옵소서.



[참고관련자료]

1. 간도되찾기 운동본부 (보기)

2. 이명수 의원, 간도협약 원천무효 결의안 국회 제출 (
보기)



<Created/20090814> <Updated/20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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