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장막 ㅡ 카인과 아벨의 진실

글/ 안연숙


So Satan answered JEHOVAH and said 'skin for skin, yes, all that a man has will he give for his life.' (Job 2:4).

그리하여 사탄이 예호바에게 당당하게 대답하기를, '피부를 위해 피부를 바꾸오니, 진실로 사람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목숨(혼=네피쉬)을 위하여 주겠나이다.' 하였도다. (욥기 2:4, 엘로힘말씀 정재선역)

[미니풀이] 본 구절은 루시퍼(사탄)가 예호바에게 도전하면서 사람이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모든 것을 바친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피부를 위해 피부를 바꾸오니'란 성경 표현법상 <수사학>의 하나인 <제유법>(提喩法)으로 풀어진다. 예를 들어, 'sail'로 'ship'을 나타내듯 일부로 전체를, 전체로 일부를 나타내는 비유법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피부'(skin)는 몸체(body)를 나타내는 표현법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마치 사람이 '장애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그 장애물을 해(害)칠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을 피해서 돌아갈 것인가에 의해 많은 갈등을 하게 됩니다.

'범죄수사극' 들을 보면 참 무섭고 잔인하지만 한가지 얻게 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사람의 생명도 경시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여서 얻은 재물은 자신을 위해 써지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거나 범죄 당한 가족의 끈질긴 복수로 인하여, 결국 그 범죄자도 똑같이 목숨을 잃는 참 비극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범죄적인 전쟁들과 사고들로 인한 죽음은 그 주체인 범죄자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단지 피해자만 있을 뿐입니다.

피해자인 <아벨>은 있으나, 가해자인 <카인>이 부재하거나 잡히더라도 진정한 두목은 잡을 수 없는 원통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내전으로 인한 수많은 난민들과...정체 모를 사상으로 인하여 이 땅에서 이루어졌던 <6.25 동란>, 그 때 흘린 무고한 피들은 이 땅의 한으로 서려있습니다. 한민족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파병되었던 많은 젊은이들의 피들도 함께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해(害)쳐서 얻는 소득은 결국 함께 멸망하는 길로 가는 길입니다. 내가 무엇을 얻고자 하여 다른 사람을 심판할 권리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심판은 예호바께서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호바는 악인인 <카인>마저도 심판하지만 살려두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창세기 4:15 참조). 자신의 질투심 때문에 화가 나서 동생인 <아벨>을 죽였지만, 그는 털끝만한 뉘우침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단지 그 사람에게는 동생이 자신의 인생에 장애물이자 걸림돌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불가(佛家)에서 수행함은 이 못된 치솟는 악을 누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자신의 <업보>를 씻는다며 항상 회개합니다. 이 치솟는 악은 먼저 자신의 몸을 치며 타인을 해(害)칩니다. 그러기 위해 항상 소일을 하며 머리를 비웁니다.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라 하신 예호슈아님의 그 말씀처럼 모든 번뇌를 잠재우기 위해 자신을 혹독하게 다룹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그 번뇌를 잠재우기 위해 애를 쓰면 오히려 더 크게 저를 짓누르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만큼 죄란 함께 하면 즐거우나 그 즐거운 것이 결국은 나와 타인을 해(害)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호바의 그 말씀에서 얻는 즐거움이 산 속 옹달샘 같은 맑은 느낌이라면, 죄악의 즐거움은 달짝지근한 탄산음료일 것입니다. 전 그것을 동시에 느끼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며 행복한 마음을 느끼지만 계속 보고 있노라면 그 우울함은 어떻게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호바의 그 말씀은 한 구절만 읽어도 맘의 평안을 누립니다. 텔레비전은 먹고 마시고 즐기고, 타인을 해(害)치거나, 퇴폐한 문화를 우리에게 즐기게 합니다.

작금의 이 시대적 흐름을 보노라면, <창세기>에서 <카인>에 의해 살해된 <아벨>의 그 피가 그 <카인>의 피가 섞여있을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로 인해 <카인>의 팔자에 소위 <역마살>이라는 것이 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호바의 얼굴을 피해 온 땅을 유리하는 평안함이 없는 삶>이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땅에서 무엇을 해도 소득이 없이 다 깨어져 버리고 맙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업보>라고 말하죠.

    4:11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earth, which hath opened her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 from thy hand; 4:12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her strength; a fugitive and a vagabond shalt thou be in the earth. (Genesis 4:11-12, King James Version)

    4:11'그리고 이제부터 너는 네 손으로부터 네 형제의 피를 취하려 자기 입을 벌려 놓은 그 대지로부터 저주를 받는다. 4:12네가 그 대지를 경작하여도, 이제부터 그것이 너를 위하여 효력을 주지 않을 것이니, 곧 너는 그 땅 안에 한 도피자요, 한 방랑자가 될지라.' 하셨다. (창세기 4:11-12, 킹제임스성경 정재선역)


그 상태에 놓인 것을 바로 죄악의 땅이라 일컬어지는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 죄악의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23:9Also thou shalt not oppress a stranger: for ye know the heart of a stranger, seeing ye were strangers in the land of Egypt. (Exodus 23:9, King James Version)

    23:9또 너는 결코 어느 나그네이든 압제(압制)하지 말지니라. 이는 너희가 애굽의 그 땅 안에서 나그네들 된 이후로 너희가 나그네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도다. (출애굽기 23:9, 엘로힘말씀 정재선역)


그러나 애굽땅에서 이방인들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예호바가 준비해 두신 땅이 있었으니 그 곳은 바로 '카나안 땅'이었습니다:

    23:20Behold, I send an Angel before thee, to keep thee in the way, and to bring thee into the place which I have prepared. (Exodus 23:20, King James Version)

    23:20보거라, 내가 네가 행하는 그 길에서 너를 보호해주려고 네 앞에 한 사자(使者)를 보내어, 너를 내가 마련해 둔 그 곳으로 너를 데려오려 하는도다.(출애굽기 23:9, 엘로힘말씀 정재선역)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위에서 <아벨> 한 사람만 죽었겠습니까?? 한 사람만 죽어도 그 대지가 생명력을 잃고 마는데, 지금 온 지구상에는 <아벨>들의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죄악이 얼마며 그 업보는 우리가 다 지고 갈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 유리 방랑함을 보호할 한 수단을 주셨으니, 바로 천막(장막=Tabernacle)입니다.

자, 이제 이방인 되었던 애굽에서 막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가 볼까요??

불뱀과 전갈들이 가득한 물이 없는 메마른 모래의 땅, 광야를 향해서 말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저 마녀의 무리 그 손에 독잔을 든 키르케(Circe=Church)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 신들을 믿고 따르는 그 애굽의 이집트로부터 빠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신들은 예호바께서 완전히 심판하셔서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그 신들을 처단함이 목적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오직 예호바 자신께로만 오기를 바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바랐던 모든 것들이 다 허상이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12:12For I will pass through the land of Egypt this night, and will smite all the firstborn in the land of Egypt, both man and beast; and against all the gods of Egypt I will execute judgment: I am the LORD(YEHOVAH).(Exodus 12:12, King James Version)

    12:12따라서 내가 그 밤에 애굽의 땅 전역을 다니겠고, 사람(인류)이나 짐승이나, 애굽의 땅 안에 있는 모든 첫태생은 모두 절멸(絶滅)시키겠도다. 애굽의 모든 신들에 대해서도 내가 심판들을 집행(執行)하겠도다. 나는 예호바이도다. (출애굽기 12:12, 엘로힘말씀 정재선역)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가증한 '키르케'(Circe)의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키르케'(Circe)를 어원으로 둔 것이 지금 우리가 번역해서 말하는 '교회'(Church)라 합니다. 그들은 이제 예호바의 교중(Eklesia, Congregation)이 된 것입니다. 이 탁월한 용어를 번역하신 분에 대해 '정재선목회자'님이 조사하셔서 글을 쓰셨습니다:

    <에클레시아>의 성경적 용어풀이 - <교회>(敎會)가 아니라 <교중>(敎衆)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자세히보기>

    <에클레시아>의 성경적 용어풀이 - 한국교회는 왜 이 용어 <교중>(敎衆-CONGRETATION)을 회피해 왔는가?? <자세히보기>


<가르칠 교(敎)에 모일 회(會)를 쓰지 않고 왜 가르칠 교(敎)에 무리 중(衆)으로 번역하셨을까??>에 대해 심도있게 써놓으셨습니다.

그 천막(장막=Tabernacle)에 거하는 <교중>(congregation) 중에 예호바의 종 '모세'를 부르셔서 예호바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예호바의 가르침을 전하십니다:

    1:1And the LORD(YEHOVAH) called unto Moses, and spake unto him out of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saying, (Leviticus 1:1, King James Version)

    1:1예호바가 모세를 향하여 부르셨고, 그 교중(敎衆/회중)의 장막으로부터 그를 향하여 전하시기를, (레위기 1:1, 엘로힘말씀 정재선역)

    ◆[편집자/미니풀이] 위 본분은 히브리원어성경(1931년 영국 발행) <레위기 1장>이다. <1장 1절>의 첫 단어 <부르셨다>(called)=<카라>(qara/H7121)에서 마지막 철자 <알렙>은 본래 고대에서 사용하던 가장 힘센 짐승인 황소(수소)의 머리모양을 딴 철자로서 <힘>(strength)을 의미한다. 그런데 위 본문에서 <카라>의 마지막 철자인 소문자 <알렙>은 그 정반대의 뜻을 이룬다. 간단히 말해서, 예호바가 한 사람을 부르실 때, 그 한 사람은 작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밥팀례자(Baptist) 요안의 고백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분'(에호슈아)이 강해지시려면, 내가 약해져야 한다.' (마태오복음 3:11 참조).


<창세기 4:12>에서는 그 땅이 더 이상 카인을 위해 생산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예호바가 준비해 놓으신 <카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기 23:26>에서는 네가 만약 언약의 예호바 너의 창조주 예호바를 섬기면 더 이상 섬기는 이스라엘의 땅에서 소출이 나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카나안 땅의 전 주인들의 신상들을 부셔야 했습니다:

    23:24Thou shalt not bow down to their gods, nor serve them, nor do after their works: but thou shalt utterly overthrow them, and quite break down their images.

    23:24너는 그들의 신들에게 무뤂꿇지(절하지) 말고, 그들을 섬기지 말고, 그들의 행실을 따르지(본받지) 말지니라. 그대신, 너는 그들을 완전히 쳐부시고 그들의 주상(柱像)들을 부숴버릴지니라.

    23:25And ye shall serve the LORD(YEHOVAH) your God(Elohim), and he shall bess thy bread, and thy water; and I will take sickness away from the midst of thee.

    23:25너는 너의 엘로힘 예호바를 섬겨야 하니, 그리하며 그분이 너의 먹을 것과 너의 물을 공급해 주시겠도다. 그리고 내가 너의 가운데서 아픔(질병)을 없애겠도다.

    23:26There shall nothing cast their young, nor be barren, in thy land: the number of thy days I will fulfil. (Exodus 23:24-26, King James Version)

    23:26너의 땅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낙태하는 자가 없겠고 잉태하지 않는 자가 없겠으니, 곧 네가 너의 날들의 완전수(完全數)을 살도록 내가 보증해주겠도다. (출애굽기 23:24-26, 엘로힘말씀 정재선역)


자, 그러면 예호바의 그 <교중>은 원래 어디에 머물던 사람들인가요?? 카인의 죄에 머물며 방랑자,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여신 키르케의 독주에 취해서 자신들이 이스라엘인지도 가물거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불교에서 수행(득도)하시는 분들은 광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아직 불완전한 장막속에 거하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불완전한 제사와 불완전한 속죄로 인하여 그 죄가 더 증가되는 늘 갈증에 허덕일 수 밖에 없는 생활입니다.

그 불완전한 장막, 성전을 거두어가시고 우리 주 나사렛 예호슈아님께서 친히 우리의 장막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하십니다.
아벨이 흘린 그 피의 저주로부터 도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사람의 피는 사람밖에 대신 할 수 없으며, 어쩌면 사람으로도 대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죽는다 하여 먼저 간 그 피해자의 생명을 되살릴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 반복되는 증오와 복수의 고리를 끊으사 더 이상 이 땅에 전쟁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이지만 <새예루살렘> 그 장막이 이 땅에 덧입혀 진다면 더 이상 영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온 만상이 예호바의 그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 말씀은 이 세상이 끝나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그 말씀으로 창조된 이 땅이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피부가 우리의 모든 연약한 장기들을 보호하여 보존하듯이 예호슈아님께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덮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9:11>에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9:11But Christ being come an high priest of good things to come, by a greater and more perfect tabernacle, not made with hands, that is to say, not of this building; (Hebrews 9:11, King James Version)

    9:11그러나 오신 그 메시야는 다가올 선한 말씀들에 속한 한 대제사장이셨도다. 그리하여 그분은 인류의 손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고 이러한 창조물(건물)이 아닌 더 크고 완전한 장막 속으로 들어오셨도다. (히브리서 9:11, 에호슈아유언 정재선역)


그렇다면 그 천막(장막=Tabernacle)은 무엇일까요?? 몸을 쌓고 있는 피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피부는 방수역할을 합니다.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역할 같이 말이죠. 그래서 전 그 장막을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독관련자료/요안계시록 4:3 우기(雨器)/자세히보기>.

<예호슈아 크리스투>께서 친히 우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시겠다고 합니다. 우리의 혼이 담긴 피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그 땅에 쏟아지지 못하도록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소멸되지 않도록 지키신다 합니다:

    3:22It is of the LORD's mercies that we are not consumed, because his compassions fail not.

    3:22우리가 소멸되지 않음은 주님의 자애(慈愛)들(lovingkindnesses)로 인함이니, 이는 (진실로) 그 분의 불쌍히 여기심이 끊어지지 않음이라. (말라키 3:6 참조).

    3:23They are new every morning : great is thy faithfulness. (Lamemtations 3:22-23, King James Version)

    3:23그것들(자애들)이 아침 마다(항상/계속) 새로워지니, 주님의 신실하심이 크나이다(풍성하나이다). (이사야 33:2 참조). (예레미야 애가 3:22-23, 킹제임스성경 정재선역)


그 어떠한 유전자조작과 사이보그 인간으로 사람들을 유린할지라도, 예호바가 그렇게 우리가 이 땅에서 소멸되지 않도록 우리가 엘로힘의 그 형상으로 남아있을 수 있도록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를 돌보신다 하십니다.

지금은 <네필림>(디지털化) 이 온 땅에 가득하여 엘로힘의 형상들까지 위협받던 그 <노아>의 그 때와 같기에, <인류의 그 아들>(The Son of Man)이신 예호슈아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다고 생각이 듭니다.

    17:26And as it was in the days of Noe, so shall it be also in the days of the Son of man. (Luke 17:26, King James Version)

    17:26노에(노아)의 날들 안에서와 같이, 인류의 그 아들의 날들 안에도 그리 될 것이도다. (루카복음 17:26. 킹제임스 정재선역)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예호바의 그 구원의 말씀을 들어서, 예호슈아님의 그 완전한 장막에 들어가지 못하여 겪는 그 피흘림을 죽음을 겪지 마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자와 거지(원뜻은 가난한자) 나사로의 비유처럼 말입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 죽은 나사로를 자신의 친족들에게 보내 자신이 겪는 이 지옥의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기를 청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단호히 말합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7:31And he said unto him, If they hear not Moses and the prophets, neither will they be persuaded, though one rose from the dead. (Luke 17:31, King James Version)

    17:31아브라함이 그를 향하여 말하기를, '만일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바록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사람이 있을 지라도, 그들은 설득을 받지 아니하겠도다.' 하였도다. (루카복음 16:31, 킹제임스 정재선역)


<2014.5.13>

 
 

<Created/20140513> <Updated/20140514><201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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